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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터어키

우연한 터어키 여행14. - 이스탄불로.

by 장돌뱅이. 2005. 3. 14.


*오랜 연착 끝에 도착한 항공기

마르딘 공항엔 바람이 세게 불고 있었다.
푸른색이 없는 황토색 평원의 한 가운데 들어선 공항 주변은 마르딘 시 자체가
그렇듯 메마르고 황량해 보였다.
거칠 것 없이 활주로를 쓸고 지나가는 바람은 비행기의 착륙마저 차단하였다.

출발은 지연되고 있었다.
터어키어 이외의 안내 방송은 없었다.
옆에 앉아 있던 여성의 설명을 듣고서야 내가 할 일이란 기다리는 일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바람이 잦아들어 비행이 취소되지 않기 만을 빌면서.
마르딘에 착륙 예정이던 비행기는 근처 다른 도시에 착륙하여 대기중이라고 했다.

노트북을 꺼내어 이런 저런 생각을 적어 보았다.

- 마르딘 앙카라 이스탄불 비행기 삯은 터어키 돈으로 158,500,000 리라이다.
  미국 달러로는 115불 정도가 된다.
  비행기 삯이 이 정도이니 그보다 가치가 큰, 일테면 빌딩의 가격 등을 말할 때
  터어키 사람들은 얼마나 길게 말을 해야 할까?
  말을 할 때면 편의 상 동그라미 몇 개를 생략할 수 있겠지만
  정확을 기해야 하는 기업의 회계장부 등의 기록에 나타나는 숫자는 얼마나 클까?
  또 그런 식으로 화폐 단위가 크기 때문에 생기는 사회, 경제적인 손실은 얼마나 될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그 화폐 단위만으로도 그간의 터어키 경제가 결코 순탄치
  않았음을 짐작하게 된다.
  터어키가 미군의 자국 통과를 거부하던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다시 이라크 파병을
  결정한 데는 경제적인 지원을 미끼를 던진 미국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터어키도 작년 월드컵에서 우리처럼 4강의 신화를 이룩한 나라이다.
  아직 깊은 경제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우리나라처럼,
  시쳇말로 월드컵 4강이 밥 먹여 주는 것은 아닌가 보다.
  두 나라에게 그 영광과 자부심의 축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겠지만.

- 내가 지나온 마르딘과 실로피를 포함한 터어키의 동부 지역은
  
90년대 중반까지 무장 쿠르드족의 활동으로  살벌한 지역이었다고 한다.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 독립(?) 무장 단체들은 밤 사이 산맥을 타고
  국경을 넘
나들며 터어키군들과 일전을 벌였던 것이다.  

  특히 외국인 납치도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그동안 만나본 쿠르드 족의 얼굴에서 읽어내기 힘든 끔찍함이지만
  음식을 만들 수 없을 때 칼은 무기가 되는 법 아니겠는가?


세 시간이 지나서야 바람이 잦아졌는지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가 도착했다.
결항이 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나는 회교도처럼 마음 속으로 “인샬라”를 읊조려 보았다.


*위 사진 : 이스탄불 공항

앙카라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이스탄불에 도착하니 이미 늦은 밤이 되었다.
공항을 걸어 나와 시내로 갈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실로피와 마르딘과는 달리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고 아무도 나를 재키찬으로 불러주지 않았다.
터어키 인구의 4분의 1인 2천만 명이 산다는 거대한 도시 이스탄불에서 나는 흔하디 흔한 익명의 여행자로 되돌아 온 것이다.
갑자기 인기가 떨어진 퇴물 배우처럼 나는 지난 며칠 간 내게 보내준 어린 팬들의 환호성(?)을 그리워해야 했다.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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