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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터어키

우연한 터어키 여행15 .- 성소피아사원.

by 장돌뱅이. 2005. 3. 28.

나는 원했던 일정대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침 일찍 프랑스항공을 찾아 갔다.
그러나 나의 티켓은 일자나 시간의 변경도 환불도 불가능한 티켓이었다.
애초 내가 티켓팅을 한 것이 아니라 모 단체에서 내게 무료로 제공해 준 티켓이었는데 가장 싼 티켓이었던 모양이다.

실로피 SILOPI 에서 전화를 했을 때 이미 알고 있던 사항이었다.
그래도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하면 어떤 해결책이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 것인데 우려한 대로였다. 
기존의 티켓에 일정 변경으로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면 지불하면 되지 않느냐고 끈질기게 매달렸더니
난감한 표정의 여직원은 본사에 메일로 문의를 해보겠다며 이튿날
 아침에 다시 오라고 한다.
변경 허락이 떨어진다고 해도 좌석이 가능한 날짜는 5일 뒤에나 된다고 덧붙이면서.
이튿날 혹시나 하는 기대로 찾아갔지만 결론은 불가 판정이었다.

터어키 항공의 한국으로 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는 이틀 뒤에 있었다.
그러나 그 비행기의 좌석 역시 만석이었다.
터어키 항공과 공동으로 운행하는 아시아나에 전화를 하여도 대답은 마찬가지였다.
양쪽 모두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나니 오전이 지났다.

호텔로 돌아와 마르딘에서처럼 종업원의 도움을 받아 일요일까지의 이스탄불 관광 일정을 짰다.
막상 일찍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자 이스탄불에 남게 된 것이 행운처럼 느껴졌다.
돌아가는 날까지 우연히 내게 주어진 시간을 흡족하게 보내고 싶었다.

이스탄불의 첫 관광지로 호텔 직원은 성소피아 성당과 불루모스크를 꼽았다. 
그것은 각각 비잔틴 제국과 오스만투르크,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상징하는 건물이었다.


먼저 간 곳은 성소피아사원이었다.

537년에 완공되어 1453년 오스만투르크에 점령 당할 때까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블의 옛 이름)의
대성당으로 사용되었던 유서 깊은 건물이다.

오스만투르크의 점령 이후로는 이슬람사원으로 개조되어 사용되었다.

1935년 이를 다시 박물관으로 개조하기 위하여 벽면의 칠을 벗겨내자 그 속에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로 된 예수상과 가브리엘 천사등 수많은 성화들이 손상되지
않은 채 드러났다고 한다.

  “이슬람의 관례는 적군의 성을 함락시키면 통상적으로 3일간의 약탈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나 마호멧트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고 난 다음 바로
   이 소피아 성당으로 말을 몰아 성당의 파괴를 금지시켰습니다. 다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성소를 파괴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리고 이제부터는 이곳이 사원이 아니라
   모스크라고 선언하고 일체의 약탈을 금지시켰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오스만터키가
   그들보다 앞선 유럽문명의 정화(精華)를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의지라 할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내게는 이슬람의 그러한 관용이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슬람의 이러한 전통이야말로 오늘의 이스탄불을 공존과 대화의 도시로 남겨
   놓았습니다. 동(東) 과 서(西), 고(古)와 금(今)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스탄불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대륙과 아시아대륙에 걸쳐있는
   실크로드의 종착지입니다. 터키는 스스로 앗시리아,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 비잔틴,
   오스만투르크 등 역대의 장구한 문명을 계승하고 있는 나라로 자부합니다.
   카파도키아, 에페소스, 트로이 등지에는 지금도 그리스 로마의 유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터키를 모자이크의 나라로 불리기도 합니다.
   소피아 성당도 이슬람 사원인 블루모스크와 마주 보고 서 있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공존하는 모습입니다.”

                                             -신영복, ‘더불어숲’ 중에서-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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