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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지난 국토여행기 21 - 충북 영동 영국사

by 장돌뱅이. 2013. 1. 22.

 

 

 

충북 영동에는 양산팔경 (陽山八景)이라 불리는 8곳의 아름다운 경치가 있다.
영국사는 그중의 한 곳이다. 늦은 오후 시간이 되어서야 충북 영동의 천태산
기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댄 후 아내와 둘이서 산 중턱에 있는
영국사로 향했다.

뺨에 부딪는 공기는 차가웠지만 쨍한 청량감이 상쾌했다.
등산객들이 다 내려온 탓인지 절로 오르는 내내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흐르던 물도 하얗게 얼어있어 계곡엔 밀도 높은 적막이 가라 앉아 있었다.
바람도 잦은 산길엔 아내와 나의 발자국 소리만이 작은 파장을 만들었다.

가파른 언덕을 하나를 숨을 몰아쉬며 올라서자 깊은 산중에 있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던 넓은 평지가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면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절 앞에는 거대한 은행나무 한그루가 팔을 벌리고 서 있었고, 저녁 이내가
푸르게 깔린 그 한쪽 끝에 천태산을 배경으로 영국사가 들어서 있었다.

얼마 전에 새로 지었다는 만세루를 지나 요사채의 저녁 짓는 연기와 불내가
향기롭게 깔린 경내를 천천히 돌아, 언덕의 부도 탑과 망탑봉의 삼층석탑을
보고 어둑해져가는 산길을 걸어 내려왔다.

많은 말을 건네지 않았어도 무언가를 나누고 공유했던 것 같은 시간.
아내와 겨울 천태산의 영국사로 오르내리는 길이 그랬다.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산과 산 사이로 낮게 구름이 흘러가고
     바람 속을 종 소리 대신
     소똥 묻은 새가 울고 간다

     스님은 심장을 드러내고 계곡 물 소리를 듣는다
     서로 가는 것을 묻지 않고
     길이 끝나는 곳으로부터
     소리들이 되돌아와 발 디디는 곳 마다
     종을 울린다

     물은 흘러 가는 것을 묻지 않고 계속 흐른다

     마음 속의 관음
     종소리 아닌 종이 운다

     절 밖
     아름드리 은행나무
     큰 울음 나뭇등걸 속에 내장(內藏)한 채
     하늘을 떠받들고 서 있다
              - 양문규의 시, 「영국사에는 범종이 없다」-

시처럼 영국사에 범종이 실제로 없는지 모르겠지만
울리는 종소리가 번뇌로부터 벗어난 깨달음을 세상만물에게
주기위한 것이라면 영국사에서는 바람과 구름, 새소리와 물소리,
저녁 이내와 불내 혹은 적막함과 고요함이 종소리를 대신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영국사에는 일주문도 금강문도 없었던 것 같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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