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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한국

절 이야기1 - 화엄사와 화암사

by 장돌뱅이. 2013. 2. 1.

 


*위 사진 출처: 화엄사 홈페이지

아내와 함께 자주 절을 찾아 여행을 떠나곤 했다.


진리와 하나된 마음으로 일주문을 지난 적도 없고
세심교를 지나며 세속의 욕망을 씻어거나 털어내 본 적도,
오체투지로 부처님 앞에서 스스로를 최대한 낮추어 본 적도 없으면서
그냥 사찰 금당(金堂)의 부처님을 향해 오르는 길을 자주 걸었다.

연록 새싹이 귀여운 새의 부리처럼 쫑긋거리며 돋아나는 이른 봄과
소리 높여 계곡을 지나는 맑은 물에 짙은 녹음이 흔들리는 여름,
아득한 하늘 아래 투명한 햇살이 가득한 쏟아져 내리던 가을과
청정한 기운의 맨 몸으로 꼿꼿이 서있는 나무숲의 겨울
- 길을 오를 때마다 계절이 그냥 왔다가 저절로 가는 것이 아니 듯이
우리도 우연히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는 어려운 가르침을
가볍게 떠올려 보기도 
했다.
 
저장 파일 속에 남아 있는 몇몇 절의 사진을 짧은 메모와 함께 정리해본다.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슷하거나 같은 이름을 가진 절들이다.


구례 화엄사(華嚴寺)
지리산 자락의 구례 화엄사.
설명이 필요 없는 절.
아니 내가 섣불리 설명할 수 없는 절이라는 표현이 더 맞겠다.

백제 성왕 22년(544)에 인도에서 온 연기스님이 세웠다고 한다.
인도에서...연기스님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이 먼 곳까지 오게 된 것일까?
그보다 약 2백년 쯤 뒤에 "왕오천축국전"을 쓴 신라의 혜초스님이 10년을 걸려
인도를 다녀왔다고 하던데 연기스님도 그쯤 걸렸을까?
10년의 여행.
아마 삶을 걸었을 것이다.

스케일이 장대하다.
우리는 너무 작게 사나?
내겐 이곳까지 온 연기스님의 발걸음 발걸음이 넘을 수 없는 '화엄'이다.

화엄사의 사진을 현재 가지고 있지 않아 화엄사 홈페이지에서 빌려왔다.
시 한편도 빌려와 온 세상과 우주를 향해 '들숨 날숨'으로 통해 있는
우리들의 존재를 생각해본다. 화엄을 생각해 본다.

   화엄이란 구멍이 많다
  
구례 화엄사에서 보았다

  
절집 기둥 기둥마다
  
처마 처마마다
  
얼금 송송
  
구멍이 뜷려 있는 것을

  
그 속에서 누가 혈거시대를 보내고 있나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개미와 벌과
  
또 그들의 이웃 무리가
  
내통하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화엄은 피부호흡을 하는구나
  
들숨 날숨 온몸이 폐가 되어
  
환하게 뚫려 있구나

  
그날 밤 누군가 똑똑 창문 두두리는 소리에
  
잠을 털고 일어나 문을 열어 젖혔다

  
창문 앞 물오른 나무들이
  
손가락에 침을 묻혀
  
첫날 밤을 염탐하듯 하늘에
  
뚫어놓은 구멍,
  
별들이 환한 박하향을 내고 있었다

               -손택수의 시, "화엄 일박" -



완주 화암사(花巖寺)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우리나라의 절.
영주 부석사, 승주 선암사, 부안 내소사.
거기에 완주의 화암사를 더한다.
작지만 야무져보이는 절. '꽃바위' 같은 절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추어둔 복된" 절.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숙하며 봉우리들은 비스듬히 잇닿아 있으니, 사방을 둘러보아도 길이 없어
   사람은 물론 소나 말의 발길도 끊어진 지 오래다. 비록 나무하는 아이, 사냥하는 사나이라 할지라도
   이르기 어렵다. 골짜기 어귀에 바위벼랑이 있는데 높이가 수십 길에 이른다. 골골의 계곡물이 흘러
   내린 길이 나 있으니 폭은 겨우 한 자 남짓이다. 이 벼랑을 부여잡고 올라야 비로소 절에 닿는다.
   (절이 들어선) 골짜기는 넉넉하여 만 마리 말을 감출 만하며, 바위는 기이하고 나무는 해묵어 늠름
   하다. 고요하되 깊은 성처럼 잠겨 있으니 참으로 하늘이 만들고 땅이 감추어둔 복된 곳이다.

15세기에 쓰여진 “화암사중창기”에 묘사된 길과 절의 모습이라고 한다.
지금의 모습과 거의 다를 바 없다는 점이 화암사의 매력이기도 하다.
한국문화답사회의 안내 책자에도 멋진 안내가 나와있다.

   화암사에는 문이 없다. 옛 절이라면 어느 절에나 있기 미련인 일주문이 여기에는 없다.
  
사천왕문, 금강문, 해탈문, 불이문......, 그 어떤 문도 없다. 이런저런 문을 세울 여백도
   마땅치 않았겠지만, 그보다는 진입 공간이 충분히 드라마틱하여 굳이 문들을 만들어야
   할 이유도 없었으리라. 그래 그런지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는데도 하나도 이상치 않다.
   굳이 인공적 장치가 아니라도 우리는 그저 옛길이 인도하는 대로 길을 걸으면서 자연스레 ‘
   절로 가는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차원 높은 구조가 거기에 숨어 있는 것이다. 과정이 생략된
   채 단숨에 중심에 다가서는 그런 구조이지만, 실은 아무것도 생략된 것이 없는 미묘한 진입부를
  
화암사는 보여준다. 

 


*꽃 같은 비? 비 같은 꽃? 둘 다 아름답다.

몇 해전 아내와 갔을 때 절에 공사가 있어서 한적한 맛을 한껏 느낄 수 없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우선 찾아 볼 장소 중의 하나다. 
많이들 찾아가지 마시라.^^
여기만은 절 입구에 파전과 동동주집 생기면 안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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