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어릴 적 부족의 구원에 대한 위대한 계시를 받았으나 끝내 그 계시를 이루지 못한
인디언 예언자 검은고라니가 구술한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의 시인 J.G. 니이하트가
검은고라니의 구술을 옮겨『검은고라니의 말』(BLACK ELK SPEAKS)이란 제목으로
책을 펴냈고, 시인 김정환이 이를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인디언의 육성으로 기록된 인디언 멸망사이자 현대문명, 특히 미국 문명세계에
던지는 준엄한 경고장이다. 미국 문명의 진상을 알려면 한번쯤 - 물론 몇 번이라도
괜찮지만 - 은 흑인들의 눈으로, 한번쯤은 주변 약소민족들의 굶주린 시선으로 그리고
한번쯤은 조상대대로 살아온 땅을 송두리째 빼앗긴 인디언들의 고통에 찬 눈으로 바라
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의 영화, 그 네온사인의 휘황찬란한 이면에는 의외로
집밟혀 갈기갈기 찢겨진 약한 자들의 신음소리가 길게 깔려 있다.
- 역자 후기 중에서 -
지니고 있는 책 중에서 미국에 관련된 책을 집중해서 읽어보자는 마음을 먹은 이래
그 첫 번째로 읽은 책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미국으로 가는 기내 영화중에는 백인에
의한 인디언 학살을 다룬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BURY MY HEART AT WOUNDED
KNEE)가 상영되었다. 영화 속에 나오는 동일한 이름의 인물들이 책속에도 나왔다.
동일한 주제에 집중적인 ‘시청각교육’을 받은 셈이다.
이른바 역경을 딛고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부스의 무용담이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실렸던 것을 기억한다.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을 두고 ‘발견’이란
터무니없는 미명으로 포장했던 역사가 우리가 배운 것이었고, 거기에 인디언은
언제나 치유되거나 게리쿠퍼류의 영화 속에서처럼 거리낌 없이 사살되어도 좋을
‘악성 바이러스’ 같은 존재였다. 상대와 장소만 바뀌었을 뿐 미국의 야만에 ‘짓밟혀
갈기갈기 찢겨진 약한 자들의 신음소리’가 여전히 세상에 질펀하다는데서 아직
이 낡은 책을 다시 읽어야 할 의미를 찾는다.
슬픈 역사를 재껴두고 인디언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보면 우선 그 이름이 재미있음을
알 수 있다. 인디언은 ‘아주 구체적인 사물이나 사건의 이름을 그대로’ 자신들의
이름으로 쓰고 있다. “검은고라니”, “서있는말”, “미친말”, “붉은사슴”, “붉은구름”,
“앉은소”, “까마귀코”, 심지어 “곰이노래해”와 “여우허리통”도 있고, “산산조각”이라는
파격적인(?) 이름도 있다.
동물의 이름을 가지면 그 동물이 지닌 힘을 자신들도 가질 수 있다고 인디언들은
생각했다고 한다. 캐빈코스트너가 주연한 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은 영화 속 백인
주인공에게 붙여준 이름이다. 인디언들이 보았을 때 주인공이 들판에서 늑대와
함께 뛰어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12달도 천막 안에 서리가 지는 달(1월), 송아지털이 검붉어지는 달(2월), 눈에 눈이
머무는 달(3월), 풀이 나타나는 달(4월), 조랑말이 털갈이 하는 달(5월), 살찌는 달(6월)
등으로 부르고, 동서남북도 태양이 항상 빛나는 곳(동쪽), 천둥의 정령들이 사는 곳(서쪽),
우리가 항상 바라보는 곳(남쪽), 거인이 사는 곳(북쪽)으로 부른다.
검은고라니의 구술을 통해 우리는 인디언들의 생활방식의 일부나마 들여다볼 수 있고,
필요 이상의 음식과 재물을 탐하지 않는 그들의 초탈함과 자연과 동화된 경건하기조차
한 삶은 백인들과 비교되어 누가 진정 야만인인지를 되묻게 한다.
내가 좀더 나이를 먹었을 때, 나는 그 겨울과 그 다음 여름날의 싸움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가를 알게 되었다. 메디슨 지류 상류 쪽에서 와지쿠(백인을 지칭함)들이 숭배
하는 노란 금속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그것 때문에 와지쿠들이 좋아 날뛰며 그 노란
금속이 있는 곳에까지 길을 내려고 우리 부족을 거쳐 지나가기를 원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부족 사람들은 길이 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렇게 되면 들소들이 놀라서 멀리
도망을 갈 것이고, 또 그 길을 따라 다른 와지쿠들이 홍수처럼 밀려들어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단지 바퀴 두 개가 지나갈 수 있는 자그마한 면적의 땅만 사용하면
된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주변을 둘러보면 그때
그들이 정말로 바랬던 것이 무엇이었던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당신 우리 자신의 땅에서 행복하게 살았었고, 배고파한 적도 거의 없었다. 네 발
달린 것들과 두 발 달린 것들이 한데 어울려 혈육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는
그들에게나 우리에게나 먹을 것이 풍족했었다. 그러나 그 후 와지쿠들이 쳐들어와서
우리들을 작은 섬같이 좁은 땅으로 몰아넣었고, 네 발 달린 것들은 또 다른 좁은 땅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이 좁은 땅은 갈수록 점점 좁아지고 있다. 그 주변에 와지쿠들이
홍수처럼 밀려와 땅을 갉아먹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짓말과 탐욕으로 가득찬
더러운 물결이다.
(...) 어디를 가나 군인들이 우리를 죽이러 왔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땅이었다. 그것은
와지쿠들이 붉은구름과 협정을 맺을 당시에 이미 우리 땅이었고, 협정은 풀이 자라고
강이 흐르는 동안 그 땅은 우리 땅이리라고 못박았었다. 그리고 난 지 겨울이 여덟
번 밖에 바뀌지 않았건만 그들은 우리를 쫓아내고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었고 그들은 잊어버렸다는 것.
- 본문 중에서 -
1890년 12월 19일 5백여 명의 기병대가 운디드니에서 수백 명의 인디안 수우족을 둘러
싸고 무장해제를 시도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나 부녀자와 어린 아이를 포함한
2백여 명의 인디언들이 학살당했다. 여인네들 중 몇 명은 3마일이나 쫓기다 붙잡혀 총살
당했다고 한다. 이 운디느니 학살로 인디안의 무력항거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것은 끝장이 났던 것이다. 얼마나 많은 것이 끝장이 났던가를 그때는
잘 몰랐었다. 이제 이 내 늙은 나이의 언덕 꼭대기에서 되돌아보아도 아직도 그
꾸불꾸불한 협곡을 따라 온통 무더기로 쌓여 있고 널려져 있던 그 살육당한 여인
네들과 어린애들의 시체가 나의 젊을 때 눈에 비치던 그것처럼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나는 그때 피범벅이 된 진흙창 속에서 죽어 눈보라에 파묻혀버린 또 다른
무엇, 한 겨레의 꿈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꿈이었다.
- 본문 중에서 -
(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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