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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주유소에서 기름 넣기

by 장돌뱅이. 2013. 5. 9.




몇 해 전 한국에서 친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던 중이었다.
강남 신사동 부근을 지나다 기름을 넣기 위해 무심코 한 주유소로 들어갔다.
그런데 주유소에 들어서며 우리는 예사롭지 않은 풍경에 우리는 ‘어? 뭐지?’ 하며
긴장을 하게 되었다.

바닥부터가 달랐다. 마치 SF영화에 나오는 우주정거장처럼 불빛이
번쩍거리며 차량을 유도하고 있었다. 주유기 앞에 차를 멈췄을 때는
‘어서 오십쇼!’ 하는 나이 어린 알바생들이나 약간 굼뜬 동작의 조선족
아저씨들이 아닌 예쁘고 늘씬한 아가씨가 다가왔다.
차창을 내리자 ‘얼마를 넣을까요?’ 하는 정형화 된 물음 대신에
미소를 머금은 아가씨가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리터에 2천원이 넘는 건 알고 계시죠?”
(몇 년 전이니 아마 일반 주유소에서는 리터에 1500원 미만이었을 것이다.)

억! 나는 경악을 했다.
아마 친구도 속으로는 놀랐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평소의 태도처럼 서둘지 않는 목소리로 침착하게
“10리터만 넣어주세요” 라고 대답을 했다.
‘가득 채워주세요’가 원래의 대답이었을 것이나 그도 속으로는 뜬금없는
가격에 놀랐음에 분명했다. 주유소의 아가씨는 우리에게 서비스로 음료수를
건네주고 기름을 넣어주었다.

기름을 넣는 동안 친구와 나는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런데 이 화장실로 가는 길이우리를 또 놀라게 (혹은 기죽게) 만들었다.
주유소 건물의 2층에 있던 세련된 분위기의 라운지를 지나야 갈 수 있었다.
라운지 안의 붉은색 소파에는 의자에는 젊은 청년들이 몇 명 있었다.
주유소 안에 주차 되어 있던 늘씬한 외제승용차들의 주인인 듯 했다.
인터넷과 레이싱 장면을 감상할 수 있는 대형 모니터, 그리고 골프퍼팅 시설까지 준비되어 있다는 후문이다.
국내에 수입된 웬만한 초고가 차량은 모두 한번씩 다녀간 곳이라고.

그제서야 우리는 깨닫게 되었다.
이른바 전국에서 가장 비싼 기름값의 주유소에 우리가 잘못 들어왔다는 것을.
주유소 직원 그 누구도 우리가 소형 승용차를 몰고 왔다고 해서 차별을 두지는
않았지만그들의 첫 물음에 기름값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는데서
그들 역시 우리의 ‘실수’를 눈치 채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모든 상황을 일찍 파악하고 10 리터만 주문을 한 친구의 순발력 있는
강심장(?)도 남달라 보였다. 나라면 체면 상 태연한 얼굴을 가장하고
‘가득 넣어주세요’라고 말한 후 십 미터를 못가 서 가슴 쓰려 했거나,
‘안 넣을랍니다’ 하고 얼굴을 붉히며 줄행랑을 놓았을 것이다.
금가루가 첨가된 휘발유도 아니고 도대체 애 비싼 것인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미국에서 주유소는 그런 미녀들의 서비스는커녕 알바생들은 힘찬 목소리도
들을 수 없다.미국생활에 모르는 것도 많으나 우선 차에 기름 넣는 방법도
배워야 했다.남의 손을 빌리면 같은 기름도 비싸질뿐더러 번거로워진다.

기름탱크의 주입구를 열고 주유기를 끼워야 한다.
그것조차 미국에서 오래 산 직원이 능숙하게 했다.
한국에서는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다보니 나는 서너 번을 덜그럭거린
후에야 장착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주유소카드를 지시된 방향으로 그은 후 기름의 종류를 선택해야 한다.
기름이 주입이 완료된 후에는 영수증을 발급하겠다는 ‘YES’ 를 눌러야 한다.
대중교통으로는 살 수가 없는 곳이니 차와 관련한 문화에 익숙해져야 할뿐
다른 도리가 없다.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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