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오늘 아침에...

by 장돌뱅이. 2013. 5. 9.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다시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습니다.

아직 상징적인 행위만으로 감동을 받을 수 있고
또 그것 자체가 실질적인 성과인 남북관계의 수준입니다만,
가슴 떨리는 큰 일 앞에서는 늘 옛 지혜를 빌어 위로를 삼습니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모든 국민의 꿈과 여망도 함께 그 노란선을 넘어갔을 것입니다.
분단의 서러움보다는 통일을 향한 자부심을 심어도 좋을 아침입니다.

     짐짓 사랑을 확인한 여자가
     스타킹을 벗듯이
     단풍전선이 내려간다
     등뼈가 깊이 굽어 있어
     머리카락이 다도해에 젖었는지도 모른다
     준평원과 강줄기가 분명해질 것이다

     개마고원은 벌써 웃통을 벗어부치고
     머리맡 한랭전선을 저지하고 있다
     국경 철길이 끊겨도 좋았다
     청천강 깊은 데까지 단호하게 얼고
     삶아놓은 감자국수 불어터져도 좋았다
     폭설이 처마 끝까지 쌓여도 좋았다
     대륙에서 실패한 유민의 아들이어도 좋았다
     콜라에 중독된 식민지의 딸이어도 좋았다

     알몸으로 살 작정을 한 것이다
     헐벗은 겨울 마음껏 헐벗기로 한 것이다
     부어오른 정수리로 국경을 치받으며
     시린 발로 공해와 영공을 냅다 걷어차며
     움켜쥘 것 없는 두 손으로
     두 손 움켜쥐며
     이 한 겨울 우리는 헐벗기로 한 것이다

      짐짓 사랑을 확인한 남자가
     스타킹을 신겨주듯이
     땅 끝에서 화신이 올라올라 올 때가지
     겨우내 우리는 죽어라고
     헐벗은 우리는 죽어라고
                     - 이문재의 시, 「남북상열지사」-

(2007.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