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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꼬막에 소주 한 잔

by 장돌뱅이. 2013. 5. 28.




일 년 전 그가 내게 제시한 조건이었다.
나의 홈페이지를 고쳐주면서
내가 미안해 하자
그가 말했다.
"정 그러시다면 겨울 꼬막에 소주 한잔으로 하지요."

지난 여름 그는 급작스럽게 세상을 뜨고 말았다.
시대표 배구선수로 다져진 그의 건장한 육체로는
믿어지지 않는 말기암.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네요."
내가 들은 그의 마지막 목소리였다.

아내와 그의 무덤이 있는 고향마을을 찾았다.
남도의 끝.
그의 집 마당에서 갯펄이 내다 보였다.

가계부에 보험료를 '봄뇨'로 기록한다는
어머니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만으로 무너져 내렸다.

저녁해에 길게 끌린 그림자를 뒤에 두고
아버지는 차마 자식의 무덤 앞에 서지 못하고
저 멀리서 등을 돌린 채로
텅 빈 논에 말 없이 눈을 주고 서 계셨다.

반년 만으론
아니 그의 백배가 지나도 결코
평온해 질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식은 그렇게 부모의 가슴 속에 남아 있었다.

그의 고향 갯펄에서 나왔을
겨울 꼬막 앞에
술잔을 부으며
나도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잘 가시게, 친구.
그리고 편히 쉬시게.
.....
.....

아내는 피울음을 토하는
그의 어머니를 두 팔로 안고 있었다.

(20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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