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흔치 않은 상점.
문득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이 났다.
어느 날 명절에 서울 본가에 들렸더니 난데없는 강아지 한 마리가 현관까지 달려 나와
제법 맹렬하게 짖어댔다. 나는 “웬 강아지예요?” 라는 뜻으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릴 적 집 마당에 ‘누렁이’를 키운 것 이외에는, 나처럼, 어머니 역시 강아지를 집안에
들인 적이 없음을 잘 아는 나로서는 의아해질 수 밖에 없었다.
“모르겠다. 애들이 어디서 데려다놓았는데 온 집안에 개털이 날려 죽겠다.”
애들이라 함은 당신의 손주들이고 나한테는 조카들이었다.
나는 개를 좋아하지만 어릴 적 경험 때문인지 마당에서 키우지 않고 집안에서 키우는
희한한 모양새의 강아지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던 터라 나에게 짖어대는 강아지에게 우선
꿀밤을 한 대 먹이는 것으로 기세를 꺾어놓았다.
조카아이들은 마치 자기들을 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기겁을 하였지만
어머니는 내 편을 들어 “시끄러. 이놈의 새*끼야.” 하며
조카의 품에서 여전히 이를 드러내고 있는 강아지를 나무랐다.
나는 ‘악동’ 삼촌으로 조카아이들을 더욱 기겁시키는 말을 덧붙였다.
“너 자꾸 짖으면 냄비에 물 끓인다. 라면 하나 풀면 부대찌개 되는 거 몰라?”
강아지의 이름은 “셈”이었다.
품종은 요크샤테리어(?)라고 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당신 평생에 없던
강아지와의 낯선 동거에 질색을 하셨던 어머님은 점차 셈과 가까워지셨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낮 동안 집안 식구들이 모두 출근(등교)을 하고 나면
셈을 돌보는 일은 어머니의 차지가 되었던 것이다.
조카아이들은 셈의 버릇에도 나쁘고 건강에도 나쁘다고 말렸지만
어머니는 식사와 후식 시간에 당신의 음식을 셈에게 나누어 주었다.
셈도 자신에게 잘 해주는 사람을 알고 있어서 언제나 어머니 곁에 앉아있길 좋아했다.
어머니 덕분에 셈은 급기야 커피 맛까지 알게 되었다.
셈이 집에 들어오면서 어머니는 당시 내가 살던 울산으로 오시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오시더라도 예전처럼 오래 머물지 않으셨다. “거리가 멀어 힘들어서...”라고 말씀하셨지만
언젠가 “낮에 셈이 집에 혼자 있으면 어떻게 하니. 저번에는 가보니까 혼자 무서워서
짖었는지 목이 쉬어 있더라. 그 쪼그만 게. 불쌍하잖냐.”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나는 “개도 목이 쉬나?” 하고 의아해 했을 따름이다.
셈은 점차 식구들과 잠자리까지 함께 하기 시작했다. 가끔씩 서울집을 찾는 내게
어머니는 그런 셈의 ‘개인기’를 자랑 하듯 보여주셨다. 밤 10시만 되면 셈은 자리를
펴라고 이불장의 문을 앞발로 두드렸고, 누군가 “개 팔아요” 하는 소리만 내면 마치
알아 먹기라도 하는 듯 사납게 짖어대기도 했다.
어머니는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셈에게 특별한 관심이 없고,
마치 셈이 애물단지인양 말씀을 하셨지만
실제로는 셈 때문에 외출조차 자제를 하시고 대신에 친구분들을 집으로 부르셨다.
셈이 커피를 배운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세에 비해 정정하시던 어머니는 어느 날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중환자실을 경유하여 일반 병동으로 옮겼지만 노인인 관계로 수술도 불가하신
어머니는 점점 정신이 흐려지셨다. 그 가운데서도 어머니는 환청으로 셈의 목소리를
들으셨고, 셈의 식사를 걱정하셨다.
그때 의사가 말했다. 어머니와 같은 환자는 시간(계절)에 대한 기억부터 희미해지기
시작하여 장소에 대한 기억이 없어진다고.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가족에 대한
기억이라고.
어머니도 그러셨다.
어머니가 끝까지 붙드신 기억은 군대에 있던 손자와 셈에 대한 기억이었다.
어머니의 기억 속에 셈은 가족으로 자리 잡았던 것이다.
멀리 울산에 있던 무심한 아들보다 어쩌면 셈이 더 살가운 자식 노릇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건강하던 셈 역시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단 이틀을 앓다가 죽었다.
15살 이상을 살았으니 애완견으로서는 장수를 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평균치와 상관없이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셈이 더 오래 살았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애정과 사랑은 미물인 짐승에게도 보약이 된다.
조카들의 만류에도 어머니와 나누었던 커피와 사람들이 먹는 온갖 음식조차 셈에게 그랬던 것처럼.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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