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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반론은 영어로만 받겠습니다" (퍼옴)

by 장돌뱅이. 2013. 5. 31.


[기고] "잉글리쉬 몰입 개그, …"  
  
  이제 끝난 얘기인 줄 알았는데, 아침 회의 시간에 "Good morning" 했다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썰렁' 개그를 보다 못해 가볍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인수위에서 아직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을 못 한 것 같다. 자기들의 몰입 개그에 대한 세간의 평이 매우 안 좋게 나오니,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영어 배우기만 해 봐라" 왜 한국말을 못 알아들을까? 일단 인수위를 대상으로 시급하게 국어 몰입 교육부터 실시해야 할 것 같다.
  
  시민들의 비판에 "영어 배우기만 해 봐라"라고 대꾸하는 인수위원장의 반응을 보면, 이 분들과 한국말로 정상적 회화를 하는 게 가능할지 적이 의심이 든다 .어떻게 그 말이 그렇게 요약이 될까? 한국말만 한다면 국내적 망신에 그치겠지만 그 입에 영어를 장착하면 그것은 국제적 망신이 된다. "영어로도 유창하게 무식할 수 있다"는 격언은 이런 경우를 가리킴이다.
  
  국가 경영권을 인수하는 이들의 언어 능력이 제 나라 말로 논점 하나 못 잡는 수준, 참으로 불행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국어로 논점 못 잡는 분들을 위해 분명히 해두건대, 지금 영어 교육 제대로 시키자는 데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누가 거기에 반대하겠는가? 문제는, 영어교육 제대로 시키겠다며 인수위가 내놓은 방안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것. 그게 논점이다.
  
  우랄알타이어의 숙명
  
  영어가 중요하다고 한다. 물론이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것 중에서 영어만큼 안 중요한 게 있을까? 영어의 중요성에 대한 인수위의 인식 수준은 이명박 당선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막연하게 세계를 다녀 보니 영어 잘 하는 나라가 잘 살더라는 것이다. 거기에 발맞추어 <조선일보>에서는 영어 실력과 국내총생산(GDP) 사이의 인과관계까지 설정한다. 그보다는 차라리 인수위 출범과 최근의 주가 폭락 사이에 인과관계를 추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영어 실력과 국가 경쟁력 사이에 직접적 인과관계가 있다는 말은, 영어 못 하면서 경제대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이웃 나라 일본의 예가 반박해준다. 게다가 이들의 말이 옳다고 해둘 경우, 국가적으로 대단히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고 만다. 왜? 한국어는 불행히(?) 인도유럽어족이 아니라서, 국민들이 아무리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도 서구인들만큼 유창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 언어적 숙명을 곧바로 경제적 숙명으로 뒤바꾸어 놓는 걸까?

  영어가 중요하다고 얘기하려면 먼저 상황에 대한 분석이 있어야 한다. 즉 영어 실력의 부족이 다양한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를 낳고 있는지 파악하고, 거기에 대한 솔루션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본과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때문에 그 유한한 자원을 최적의 방식으로 투입하는 것이 일처리의 기본이자 상식이다. 이런 상식이 없다 보니, 일단 전 국민을 대상으로 몰입 교육의 생체실험을 하겠다는 무차별한 접근방법이 나오는 것이다.
  
  인수위의 목표가 무엇일까? 듣자 하니 모든 국민의 영어실력을 간단한 회화가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란다. 거창하게 '대운하'의 경제성을 떠들다가 갑자기 '관광' 운운하던 개그가 생각난다. 물론 6년 영어공부 끝에 간단한 회화능력을 갖춘다면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게 도대체 국가경쟁력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가령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 인수위원들처럼 'good morning'이라고 인사할 때가 되면, 국가경쟁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될까?
  
  언어와 정보, 그리고 경쟁력
  
  영어가 중요한 것은 중요한 정보의 상당수가 영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어를 굳이 경쟁력이라는 관점에서 보려면, '그 정보에 어떻게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접근을 보장 하느냐'의 관점을 가져야 한다. 쉽게 말하면, 과학과 기술, 경제와 경영, 예술과 문화의 영역에서 '경쟁'을 하는 데에 요구되는 외국어 정보를, 신속하게, 효율적으로, 그리고 적절하게, 그것을 필요로 하는 개인이나 집단에게 제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술적, 사회적 공학의 문제다.
  
  혁신은 사유에서 나온다. 인간은 모국어로 사유한다. 아무리 영어에 능통해도 사유는 한국어로 하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일단 자기 언어로 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확장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끊임없이 외국어로 된 최신의 정보들을 입력할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 한 마디로 이는 국어로 된 데이터베이스를 소유한 국어 사용자와, 외국어로 접근 가능한 정보 사이에 효율적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는 문제로 사고해야 한다.
  
  영어로 된 새로운 정보를 검색하고, 정보의 홍수 속에서 중요한 것을 필터링하고, 거기에 접근할 유저 인터페이스를 구축하며, 중요한 자료는 한국어로 번역, 축적하여 모든 이에게 접근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경쟁력은 경제 주체 각각의 능력이 총합되어 나타나는 창발의 현상이다. 그렇다면 한국과 영어의 접점에서 정보의 검색, 선별, 전송을 담당할 기술인력, 번역과 통역을 담당할 어학인력은 얼마나 필요한지, 또 그들을 어떻게 양성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지 않겠는가?
  
  일본의 경우 웬만한 책은 두 세 달 만에 자국어 번역이 나온다. 덕분에 유학을 가지 않아도 될 정도의 자생력을 갖고 있다. 물론 한국어 사용자는 일본어 사용자 수의 절반도 안 되므로, 그저 시장에 맡겨 놓았을 경우에는 중요한 정보의 번역이 제대로 될 수 없다. 그래서 거기에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고, 그거 하라고 국민은 세금을 내고 있는 것이다. 세금은 골빈 머리에 입력시켜 'good morning' 썰렁 개그나 출력하는 데에 쓰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돈이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후퇴했지만, 전 과목 영어 수업이라는 발상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저 그것이 민족 감정을 해친다는 차원에서가 아니다. 한국의 경제를 움직이는 언어는 본질적으로 한국어다. 아무리 영어가 중요하다 할지라도, 한국에서 정보의 생산, 가공, 유통, 축적은 모두 한국어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한국 경제의 '경쟁력'이라는 것을 지탱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서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영어가 아니라 국어인지도 모른다.
  
  가령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인의 고급 문헌 해독 능력이 꼴찌라고 한다. 한 마디로 정작 경쟁력에 가장 중요한 고급 언어능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한국어로 된 고급정보가 있어도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쓸 줄 아는 사람의 비중이 그리 많지 않다는 얘기다. 그것이 한국이 가진 경쟁력의 현주소다. 다른 과목까지 아예 영어로 수업을 하겠다고 했던 인수위의 한때의 주장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몰입 교육과 사교육비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은 이른바 '자율화'를 통해서 학교 간의 경쟁을 강화시키겠다는 것. 이는 대학들 사이에 존재하는 서열 구조가 앞으로 고등학교와 중학교까지 확장될 것이라 예견하게 한다. 초·중·고 학교 간의 경쟁은 당연히 초ㆍ중ㆍ고 학생들 사이에 무한경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중력의 법칙만큼 필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수위가 사교육비를 경감하겠다고 하는 것은 형용모순, 즉 기필코 '둥근 사각형'을 그려내겠다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다.
  
  공교육의 이념은 '우리 아이들, 우리가 함께 잘 교육시키자'는 것이고, 사교육의 이념은 '내 아이의 점수는 남의 아이 점수보다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사교육은 교양의 절대적 질의 문제가 아니라, 점수의 상대적 양의 문제다. 즉 부모들은 자기 아이의 절대적 실력을 높여 국가 경쟁력에 이바지하겠다는 애국심에서 그 엄청난 사교육비의 고통을 감수하는 게 아니다. 출세하지 않으면 억울한 이 더러운 세상에서 그저 낙오만 하지 말라고 시키는 것이다.
  
  학교에서 영어를 잘 가르쳐 절대적 수준에서 모두 영어를 다 잘하게 되어도, 어차피 학생들이 서열 매겨진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에 들어가야 한다. 그 차이를 만드는 실력이라는 면에서는 어차피 학교가 학원을 따라갈 수가 없다. 한 마디로, 교육에 시장 논리를 도입해 무한경쟁의 정글로 만들어 놓겠다는 차기 정권의 교육 노선이 존재하는 한, 사교육 시장은 더 극성스럽게 번창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 이는 물리의 법칙이나 수학의 공리만큼 필연적이다.
  
  기러기 아빠를 없애겠다고 한다. 내가 알기에 기러기 아빠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한 부류는 입시 위주의 한국의 교육에 문제를 느껴 아이를 외국에서 제대로 교육시키겠다는 사람들이다. 다른 부류는 영어에 환장한 사회에서 출세하려면 본토에서 영어를 배우는 게 유리하다는 생각에서 아이를 외국에 보낸 이들이다. 어느 쪽이든, 한국의 공교육이 입시라는 무한 경쟁의 아비규환에 빠져 있는 한, 이 기러기들이 철새에서 텃세로 전향할 것 같지 않다.
  
  영어 수업은 물론 영어로만 하는 게 바람직하다. 누구도 거기에 반대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목표에 이르는 방법이다. 전국의 학교를, 영어 몰입 교육 하느라 1년에 1인당 1000만 원의 학비를 낸다는 사립초등학교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제한된 재원과 인력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어떻게 그 목표에 도달할지 차분한 계획을 내놓아야 한다. 하지만 인수위는 거창한 목표부터 내세워놓고, 여기저기에 드러나는 구멍들을 미봉책으로 부랴부랴 땜질하기에 바쁘다.
  
  전국의 영어 교사들은 실력도 없는 주제에 기득권만 지키려 드는 이기주의자로 만들어 놓고, 부랴부랴 영어 회화가 가능한 사람들을 소집하는 통지서 돌리기에 바쁘다. 기사는 '외국의 교포가 한국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겠노라는 전화가 왔다'는 당선인의 말을 전한다. 한 국가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고작 이런 몇 가지 일화적(anecdotal) 예뿐이다. 이래 놓고서 입시에 영어 듣기 말하기 평가를 반영하겠다고 하니, 당연히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왜 저러는 것일까?
  
  이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당연히 당선인과 인수위원장의 독특한 사고방식에 있다. 그들의 머리를 지배하는 것은 한 마디로 '영어물신주의'다. 도대체 어떤 영어가, 어떤 사람에 의해,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필요한지 구체적인 분석 없이, 그저 '영어=경쟁력'이라는 무차별한 논리를 들이대다 보니,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전 과목 영어 수업을 하겠다는 무차별한 처방이 나오는 것이다. 영어 교육 정책의 토대는 세계의 공사판 돌아다니던 당선자 개인의 일화 밖에 없다.
  
  영어로만 수업을 하는 몰입 교육에도 문제가 있다. 인수위는 문제의 해법을 교육 시스템의 내부가 아니라 주로 외부에서 찾고 있다. 왜 그럴까? 서두르기 때문이다. 정권 출범과 더불어 뭔가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선택된 영역이 바로 영어다. 한 마디로 영어는 교육의 영역에서 청계천처럼 차기 정권의 업적을 과시할 하나의 상징적 영역으로 선택된 것이다. 하지만 교육은 정권의 업적으로 과시되려고 존재하기에는 너무 중요한 사안이 아닐까?
  
  문제가 되자, 당선자는 이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만들지 말라고 요구한다. <조선일보>도 옆에서 거든다. 하지만 지금 인수위를 비판하는 세력은 통합신당이 아니다. 민주노동당도 아니다. 그들은 지금 제 앞가림 하느라 여념이 없다. 인수위 안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당장 입시를 치러야 할 자식을 가진 부모들이다. 그런데 땜질 정책 잔뜩 쏟아놓고 한다는 게 고작 4월 총선 걱정인가?
  
  차기정권의 철학은 '대운하와 몰입 교육으로 국운을 융성케 하자'는 것, 한 마디로 '영어로 삽질하면 선진국 된다'는 것쯤이 되겠다. 사실 운하 파서 국운을 살리는 것은 청동기 프로젝트다. 게다가 "20년 동안 생각했다"는 정책을 일주일 만에 뒤집는 데에는 어떤 처참한 아마추어리즘이 있다. "20년 동안 생각"해서 그런 안을 내놓은 분들에게, 이제 이 나라 교육을 5년 동안이나 맡겨 놓아야 한다.
  
  PS.  
  악다구니 할 '명빠'들에게 한 마디. 인수위의 몰입 교육 정책에 적극 호응하는 의미에서, 이 글에 대한 반론은 오직 영어로만 받겠다. 영어 못하는 명빠들은, 유 아 오브 노 헬프, 국가 경쟁력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존재들이시오니, 잉글시쉬가 안 되면 그냥 입 다물고 계시는 게 애국애족의 지름길이라 사료된다.    
  

진중권/중앙대 교수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에서 퍼옴

(2008.2)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시절 인수위의 누군가가 오렌지를 '어륀지'로 발음할 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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