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금강산을 찾았던
남쪽 관광객이 어둠 속에 군사구역에 들어갔다가
북쪽 초병의 총을 맞고 숨진 사건이 있었다.
그 죽음을 두고 갖가지 추측과 의견이 있었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분단이다.
그리고 그런 비극의 재발을 방지할
대안 역시 이미 나와 있다.
통일이다.
분단의 과정을 이해하고
통일의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복잡하고 지난한 일이 되겠지만
문제와 해법을 보는 시각의 방향만큼은
간단할 수 밖에 없다.
중언부언은 다른 꿍꿍이의 표현일 뿐이다.
"해연이 날아온다"를 지은 시인 이기형은
1917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나 함흥고보를 졸업하고
도쿄 일본대학 예술부에서 수학했다.
1947년 정신적 지도자로 모셔온 몽양 여운형 선생 서거하자
일체의 공적인 사회생활을 중단하고 칩거하다가
33년만인 1980년부터 시작활동과 함께
재야 민주화 통일운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의 시에는 매끈한 묘사나
기발한 상징이나 은유가 없다.
담백하고 단호하게 '통일'을 말한다.
영화 '넘버3'에 나오는 송강호가 말하듯,
'그냥' 통일이다.
이기형 시를 읽으며
시의 완성도을 운운하며 서운해지려는 사람은
멀쩡한 바닷가에 그어진 선 하나 넘으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세상의 생경함과
어처구니 없음을 먼저 고민해야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그런 세상을
편안함과 아름다움으로 포장하려는
화려한 '시적장치'에 대한 기대는
어쩌면 퇴폐적인 환상일 뿐알지도 모르겠다.
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분단이 풀리지 않는 한
늙지도 죽지도 않겠다
통일시만 쓴다
- "조국 시 사랑" 중에서 -
시
시인
사랑
혁명
통일이
사라진 시대에
시
시인
사랑
혁명
통일을
부릅니다
노래합니다
- "내가 노래하는 것은" 전문 -
지난 10년간 남과 북이 가까스로 쌓아온
해빙의 소중한 기운은
이제 새로운 정권 1년 동안의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적 정책'으로
'동작그만'과 '원위치'가 되고 있는 느낌이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 같은
분단 반세기만에 이룩한 성과라기엔 너무 초라해 보이는
상징적인 성과마저 그 존립이 위태로워 보인다.
그 다음에 우리에게 다가올 것들이 자꾸 두려워진다.
'때려잡자!'와 '쳐부수자!', '무찌르자!' 식의 구호만 난무하는
증오와 분노의 아수라...
우리가 가난해지는 것은
비단 달러보유고가 적어지거나
주식이 폭락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태백산맥』을 지은 작가 조정래가 그의 문학관 개관식에서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지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이 배우기보다 옳게 알고 이를 실천할 때
비로소 지성이 된다. 80년대 수많은 사람들이 독재 타도를 위해 희생했고, 그래서
국민의 뜻에 따라 대통령을 뽑은 지 4번째가 된다. 많이 배우며 사는 우리는 더
나아져야 한다. 그것은 문화적으로 더 발전돼나가야 한다는 의미인데,
그 발전 속에는 남북 분단의 문제도 포함된다.
우리는 이미 중국과 수교했고 베트남과도 수교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증오해
마지않던 공산주의 정부 소련과도 수교를 했다. 그렇다면 5000년을 같이 나눈
동족은 어찌 해야겠는가? 6·25 전쟁은 미국과 소련이 우리를 점령함으로 시작된
원치 않던 전쟁이다. 그런데 그 증오를 그렇게 오래 가지고 있어야 하겠는가?"
하긴 자신이 힘들게 번 큰 금액의 돈을 주위를 위해 말 없이 내놓은
어린 여배우의 상큼한 선행조차 그녀의 외할아버지가 빨치산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들어 빛바랜 색깔로 덧칠하려는 광기어린 야만이
아직도 어깨에 힘을 주고 버젓이 행세를 하는 세상이니...
(2009.2)
*몽영 여운형의 비서를 지내기도 했던 시인은 2013년 6월12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현역 최고령 시인이었다. 9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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