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추기경이 언론인들과 나눈 대화를 모아
문학평론가인 구중서씨가 편집한 책이다.
책의 출판일을 보니 1981년 12월.
어떻게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던가 기억에 없다.
내가 그 당시 카톨릭신자도 아니었고
특별히 김추기경을 존경하거나
그의 삶을 흠모한 적도 없으니 우연이라면 우연이고
껍데기뿐이지만 내가 결국 세례를 받고
카톨릭의 이름까지 새로 얻었으니 인연이라면 인연이겠다.
연초에 한국에 갔을 때 책장을 둘러보다
이 책이 눈에 들어온 것도 같은 설명을 붙일 수 밖에 없다.
책장은 누렇게 변색되었고 해묵은 냄새가 났다.
다시 이 책을 읽다보니 그 시절 읽을 때의
기억이 더불어 부분부분 되살아나기도 했다.
군부가 정권을 무력으로 찬탈하는 급박하고 잔인한
80년 대 초반의 세상에 비해 질문자도 추기경도
너무 한가로운 이야기를 나눈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김추기경이 어제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고 한다.
언론에선 선종(善終)이란 어려운 말을 써서 뜻을 찾아보니
카톨릭에서 쓰는 말로 "임종 때에 성사를 받아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일" 이라고 했다.
그의 삶에 대하여 여러 이야기들이 오르내릴 것이다.
구체적인 그의 행적에 찬반을 말할 수는 있겠지만
그가 척박한 나라의 종교적 지도자로서
'너와 너희 모두를 위하여'라는 자신의 사목 표어에
충실하기 위하여 진실된 고뇌의 시간을 지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하리라.
불면의 밤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사진 속의 그의 얼굴은 더 없이 순하고 어질어 보인다.
책 속에 한 대담자는 그를 '온유한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사람' 이라는 뜻이겠다.
하늘나라에서는 그에게 평화로운 안식만이 깃들기를
바라면서 위의 책 속의 몇 구절을 인용해 본다.
이 불안에 떠는 겨레를 위해
주여! 진정 당신의 위안과 평화를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의 빛을 하늘에서 가득히
우리 마음에 내려 주소서.
주님, 진실이 무엇인지, 어디 있는지
깨닫게 하여주소서.
목숨 다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도움 없이는 이 역사의 오밤중에
길을 잃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원에의 길을
밝혀주소서
-1972년 김수환추기경의 시, "평화를 위한 나의 기도" 중에서 -
교회의 입장에서는 불의에 대해서 정당한 방법으로 싸우다가 그 불의를 극복하지
못할 때에는 불의 안에서 불의를 감내하면서 수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런 수난의 길을 가셨고, 그러니까 그리스도의 길 그것이 우선 당장 폭력으로 하면 쟁취
할 수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얼마 안가서 폭력의 악순환으로 오래 가지 못하고, 지속성이
없는 것이고, 따라서 푝력적인 수단은 궁극적으로는 참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보다 더
영구적인, 인류 전체 내지 인간 본연의 해방, 즉 구원을 위한, 참된 자유를 위한 그리스도의
길은, 불의이지만 불의에 의해서 수난당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길을 가는 것이고 그것이
인간 자신을 참되게 해방시키는 길이다, 이렇게 봅니다.
- 1975년, 신동아 -
카톨릭이라는 말에는 보편적이다, 즉 유니버설(universal) 하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온 우주를 품는다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세상에 하느님, 다시 말해 성서적인 표현을 빌면
아버지의 사랑을 선포함으로써, 민족이나 인종, 남녀 기타 인위적인 혹은 사회적인 차별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이 이 사랑 속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한형제가 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카톨릭이 이 땅에 주는 메시지라고 하겠습니다.
- 1980년, 조선일보 -
최근에 내가 강조하는 구절이 있어요. "하느님은 사랑이다" 하는 것이지요. 이 구절은 성경
에 나오기도 하지만, 성경 전체가 이 한마디로 압축된다고 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
하시는 분이다, 그 사랑을 위해 우리에게 모든 걸 다 해주셨다. 이 말씀 하나로 오늘날 사는
인간은 인간성을 다시 찾을 수 있고, 참된 사랑을 깨달을 수 있고, 남을 사랑할 줄도 알게
됩니다. 믿음이 뭐냐고 묻는다면, 이 말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고 대답해주고 싶습니다.
- 1981년, 서울신문 -
(20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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