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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법정스님의 『인도기행』

by 장돌뱅이. 2013. 6. 22.



1989년 11월부터 3개월동안 불교성지를
중심으로 인도를 여행 한 법정스님의 여행기이다.
맑고 깔끔한 문체의 수필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스님의 글은 여행기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옛 성자들이 거닐던 길을 걷고 있으면 유성처럼 영감이 스치고 지나간다.
   목젖에까지 말 뒤에 숨은 뜻이 차오르는 것 같다. 의식이 새벽하늘처럼
   투명해진다.

여행기 중에 법정스님이 한 말이지만
스님의 글에서 나도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좋은 글은 "새벽하늘처럼 의식을 투명"하게 하는 정화제가 된다.

   모든 종교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생겨난 것이라고 볼 때, 종파적인 편견은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옹졸한 마음의 소산이다. 하나의 진리를 가지고 현자들이
   여러 가지로 말했을 뿐이다. 그 지역의 특수한 풍토와 문화적인 환경, 역사적인
   배경에 의해, 그와 같이 표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겉으로 표현된 말에 팔리지
   않고 뒤에 숨은 뜻을 따른다면, 자기가 믿지 않는 종교라고 해서 무조건 배격하거나
   역겨워할 것은 조금도 없다.
   어떤 종파를 물을 것 없이 광신(狂信)은 그 자체가 독성을 지닌다. 인간의 이성을 잃고
   맹목적인 열기에 들뜨면, 종교의 보편성을 망각하게 된다. 마치 한쪽 가지만을 붙들고
   오로지 그것만이 나무 전체라고 고집하는 것과 같다. 더 직선적으로 말한다면, 진정한
   종교인은 종교 그 자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 우리는 날마다 죽으면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만일 죽음이 없다면 삶 또한 무의미
   해질 것이다. 삶의 배후에 죽음이 받쳐 주고 있기 때문에 삶이 빛날 수 있다. 삶과 죽음은
   낮과 밤처럼 서로 상관관계를 갖는다. 영원한 낮이 없듯이 영원한 밤도 없다 낮이 기울면
   밤이 오고 밤이 깊어지면 새날이 가까워진다.
   이와같이 우리는 순간순간 죽어가면서 다시 태어난다. 그러니 살 때는 삶에 전력을 기울여
   뻐근하게 살아야 하고, 일단 삶이 다하면 미련 없이 선뜻 버리고 떠나야 한다.
   열매가 익으면 저절로 가지에서 떨어지듯, 그래야 그 자리에서 새로 움이 돋는다.
   순간순간  새롭게 태어남으로써 날마다 새로운 날을 이룰 때, 그 삶에는 신선한 바람과
   향기로운 뜰이 마련된다.

다음과 같은 글은 재미있다.
날씨 소식만으로도 반가운 것이 고향이란 것인가?
그래서 고향 까마귀란 말도 있는가 보다.
한편으론 수양을 통하여 보통사람들과는 다를 것 같은 스님의 마음도
우리와 발반 다를 것이 외로움을 타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다. 우리보다 더 절실한 외로움이 있어 스님이 되었던가?

   우연히 서울에서 온 우리 동포 두 사람을 만났다. 사이클 경기를 하기 위해 뉴델리에 온
   코치라도 했다.
   "서울은 춥지요?" 라고 인사말을 겸해 물었더니.
   "올 겨울 날씨는 아직 춥지 않더군요" 라고 했다.
   "서울은 춥지 않다"는 이 한마디가 정다운 고국 소식이었다.
   두 달 만에 듣는 서울의 날씨 소식. 나는 숙소로 돌아오면서 "서울은 안 춥단다. 서울은
   안 춥단다",  이 한마디를 아름다운 음악처럼 몇 번이고 중얼중얼 되뇌었다.


한 가지 더.
책 속에 "코카콜라가 발 붙이지 못한 강한 자부심" 이라는 소제목의 글이 있었다.
그 대신 자국산 캄파콜라를 마신다고 했는데,
인도에는 정말 그 당시에도 혹은 아직도 코카콜라가 없을까?

(20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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