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은 불편했다.
한국에 다녀온 아내와 오래간만에 오붓한 분위기로 보내려 했던 시간엔 허전하고 억울한 감정과 부끄러운 자책이 자꾸 끼어들었다. 반복해서 듣는 옛 노래의 가락과 가사들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서럽다 뉘 말하는가 흐르는 강물을
꿈이라 뉘 말하는가 되살아 오는 세월을
가슴에 맺힌 한들이 일어나 하늘을 보네
빛나는 그 눈 속에 순결한 눈물 흐르네
가네 가네 서러운 넋들이 가네
가네 가네 한 많은 세월이 가네
마른잎 다시 살아나 푸르른 하늘을 보네
마른잎 다시 살아나 이강산은 푸르러
딸아이가 소식을 전해주었다. 아내와 나는 프리웨이를 달리고 있었다.
운전을 하는 나를 대신해 전화를 받은 아내는 내게 떨리는 목소리로 "노무현 대통령 서거"라는 참담한 소식을 전해주었다. 나는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아! 아니지. 정말 이건 아니지......"
아직 그의 죽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헤아려지지도 않는데 서러움 같은 것이 먼저 앞서와 서울 시청 앞 시멘트 바닥에 조문을 하는 사람들의 동영상을 보며 울컥 눈물을 훔쳐내기도 했다.
이른바 '민주세력의 정치세력화', 혹은 '전위들의 권력장악'이라는 거창한 논리와 명분으로 요란스레 기존의 정치판으로 입성한 수많은 인사들이 오래지 않아 자취를 찾을 수 없이 '평준화' 되어버리는 세태 속에서 '우리가 남이가' 라는 지역감정에 맞서기 위해 안전하게 보장된 자신의 정치적 자리부터 내던졌던 그는, 지역구에서 낙선을 한 뒤에도 자신을 지지해주지 않은 주민들에 대해 "농부가 밭을 탓할 수는 없다"고 겸손해했던 그는.....
스스로에게만은 못내 엄격했던가.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할수록 사랑하는 주위 사람들을 힘든 상황으로 내몰게 되는 비극적인 상황과 그와 함께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불명예를 끝내 용서할 수 없었던가 보다.
그의 우직함과 단호함이 눈물겹다.
설익은 진보의 논리를 들어 그에게 날을 세웠던 몇 번의 기억이 도리어 나를 향해 아프게 찌른다.
그가 다른 사람이 아닌 노무현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라고 이기적인 변명이라도 늘어놓고 싶다.
'나는 그의 피에 대해 책임이 없다'며 오만한 자세로 서울광장을 에워싼 경찰버스의 뒷그늘에서 손을 씻을 이 땅의 더러운 '빌라도'들이 떠오르지만 지금은 참담한 충격을 수습하기에도 벅차다.
아니 참담함을 오래 간직해 두어야겠다.
그의 명복을 빈다.
(2009.5. 미국에서 노무현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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