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라톤(이라기 보단 달리기)이란 것을 처음 접한 것은 울산에서 살 때인 97년 무렵이었다.
그때까지 가끔씩 집 뒤쪽의 야트막한 언덕길이나 학교 운동장을 달려보긴 했지만 달리기만을 목적으로 한 시간 이상을 달려본 것은 군대 제대 이후로는 없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동네 슈퍼에서 우연히 만난 집 앞 헬스클럽의 관장이 경상도 특유의 억양으로 내게 제안을 했다.
"오후에 마라톤 한번 안할랑교?"
나는 놀라 대꾸를 했다.
"마라톤요?! 내가 그걸 어떻게..."
"놀라긴 와 그래 놀라능교? 별 거 아임니더. 헬스 클럽에서 보니 잘 뛰데예. 이봉주처럼 뛰는 게 아니라 천천히 옆에 사람과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정도로만 뛰면 됩니더, 오늘은 한 15키로 뛸라카는데. "
"누구랑 뛰는데요?"
나는 속으로 군대 시절의 구보와 15km를 비교해보며 관심을 보였다.
"다 꼬부라진 영감쟁이들 몇 명이랑 같이 뜁니더. 아마 장돌뱅이님이 훨씬 잘 뛸깁니더. "
시간에 맞춰 옷을 갈아입고 문을 나서는 내게 아내가 만원짜리 한 장을 주었다.
"비상금으로 가지고 가. 뛰다가 퍼지면 택시 타고 와. 다른 사람들한테 민폐 끼치지 말고."
"퍼지긴 누가 퍼져? 나도 한 때는 전방에서 구보로 한 세월 보낸 육군병장 출신이야."
나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돈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난생 처음 달려야 하는 장거리에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던 것이다.
출발점으로 이동하는 봉고 안에서 나는 동행인들을 둘러보았다. 나를 빼고 8명이었다.
관장의 말대로 '다 꼬부라진 영감쟁이들'은 아니었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깡마른 체격에 헐렁한 츄리닝을 걸친 폼이 내가 민폐를 끼칠만한 상대들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오래 전이긴하지만 군대에서 뛴 구보만도 얼만데...... 게다가 등산만 따져도 내가 저들보다는 더했지 않았겠는가.'
나는 난생 처음의 장거리 달리기가 주는 압박감을 나에 대한 괜한 자부심으로 달래고 있었다.
그런데 출발점에 도착하여 그들이 달리기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서는 순간 나의 자부심은 형편없이 위축되고 말았다. 경주용 말다리처럼 군살 없이 필요한 근육만으로 다져진, 강인하면서도 날렵해 보이는 다리 하며 마라톤의 연륜이 묻어나는 경쾌한 셔츠와 팬티, 운동화에서 풍겨나오는 '포스'는 한 눈에 내가 그들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몸을 푸는 방법도 나로서는 처음 보는 생소한 동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군대에서 배운 '악으로 깡으로' 이를 악물고 그들 뒤를 4키로 쯤은 따라붙었으나 숨이 턱에 차오르면서 나는 쳐지기 시작했다. 그들은 점차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뿐만 아니라 어느새 반환점을 돌아 나와 마주 보고 다가왔다. 내 눈엔 중간 반환점은 아직 보이지도 않는데 말이다. 관장이 방향을 바꾸어 잠시 나와 함께 달리며 격려인지 충고인지 모를 소리를 던져 주고는 다시 무리들을 따라갔다.
"천천히 뛰더라도 끝까지 걷지는 마소! 오늘 장돌뱅이 정신력을 한 번 봅시더. 파이팅!"
그는 내가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시쳇말로 자기들의 동호회에 넣기 위한 수작에 나는 낚인 것이다.
'우라질 놈! 왜 편히 쉬고 있는 사람을 꼬드겨서 이 고생을 시키는 거야!'
나는 오전에 그를 만난 우연과 그의 제의를 저주했다. 힘이 드니 저절로 나오는 욕이었다. 속으로 그가 '반환점까지 갈 것 없이 여기서 방향을 돌리라'는 말을 해주기를 은근히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서 악전고투, 천신만고, 기진맥진 15키로를 뛰어 출발점으로 되돌아가자 이미 오래전에 달리기를 마친 '다 꼬부라진 영감쟁이들'이 일렬로 서서 박수로 나를 맞아주었다.
달리기가 끝나고 생맥주 한잔을 마시는 뒤풀이 자리에서야 나는 그들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8명 모두가 마라톤 풀코스 완주 경력이 모두 10회 이상인 베테랑이었다.
"뭐라구요? 그런데 다 꼬부라진 영감쟁이들이라구요?"
나의 볼 맨 소리에 관장은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동호회에 가입을 권유했다.
집에 돌아와 내가 아내에게 한 첫 말은 "이봉주, 돈 많이 줘야 한다"였다.
그 뒤로 서울로 올라와선 한강 둔치를 달렸다. 거기에 서울 주변의 산행을 하며 보강한 체력을 밑천으로 대여섯 번의 달리기 대회에 참가를 해보기도 했다. 물론 풀코스는 해본 적이 없다.
주로 10킬로미터였고 가끔씩 하프를 뛰었다.
미국에 온 이래 처음으로 지난 3월 참가한 대회도 10킬로미터였다.
미국으로 올 무렵 한 후배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로 받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표지 뒤에 다음과 같은 후배의 메모가 있었다.
이 책이 장거리 달리기의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꾸어주길,
그래서 언젠가 함께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그는 최근에 마라톤의 매력에 빠져 하프마라톤을 주파하고 다음 달에는 첫 풀코스 도전을 앞두고 있다.
10km을 뛰면 하프를, 하프를 뛰면 풀코스를 뛸 수 있다고 주위의 유혹이 있었지만, 하프를 뛰고 골인 지점으로 들어올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이만큼을 또 달려야 풀코스가 된단 말인가' 하는 절망감이었다. 아내의 만류가 없었더라도 쉽게 풀코스 도전에 나서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누가 왜 달리느냐고 묻는다면 건강이니 체중 조절이 아니라 골인 지점을 통과한 직후의 기분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달리기를 멈추는 순간에 느껴지는 안도감과 편안함 - 세상은 갑자기 살만 한 곳이 된다. 잠실 주 경기장에서 출발하여 강변길을 뛰는 첫 하프마라톤 내내 나는 강변을 산책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 속으로 "그래! 니들은 걸어 다닐 수 있어서 좋겠다 "는 시기와 부러움을 보내며 달렸던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그랬던 모양이다.
골!
드디어 결승점에 다다랐다. 성취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내 머릿속에는 '이제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좋다'라는 안도감뿐이다.
뛰지 않는 보통의 걸음이 그렇게 행복하고 좋은 것이라는 것을 달리기 전에는 모른다.
흔히 하는 말로 맹물은 갈증을 느끼는 자에게 최고의 맛을 준다고 하지 않던가.
그것의 중독성은 생각보다 강하다.
저마다 사는 이유가 있듯 달리기 또한 그런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그러나 마음으로는 느낄 수 있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미국에 온 이래 나 스스로 정한 운동 일정은 다음과 같다.
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매일 10킬로씩 달리고 일요일 아침에는 5킬로 달리기와 축구 30분을 하기로 했다. 풀코스 거리를 일주일 동안 나누어서 뛰기로 한 것이다. 일요일 오후에서 월요일까지는 휴식이다. 언제 나의 고질병인 의지박약과 게으름이 도질지는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잘 지키고 있다.
(20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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