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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그는 사진가다

by 장돌뱅이. 2013. 6. 25.



작년 태국 여행 길에 사진가 김윤기님을 만날 수 있었다.

방콕에 살고 있는 지인을 통해 단편적인 소식을 전해 듣던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왜소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예를 들자면
옛날 고우영만화 수호지를 보신 분이라면 기억하고 있을 무송의 형이자 반금련의 남편으로 나오는
무대 같은 인상... (김윤기님 죄송^^.)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일반인들은 대낮에도 출입하기에 위험하다는 방콕 최대 빈민가
끌롱떠이(KLONGTOEY)를 수시로 드나들며
그곳 주민들을 마음대로 촬영할 수 있을 정도의 유대관계를 맺은 사람이라면
정신력이나 의지가 말투와 몸에서 드러나는 강인한 인상의 사내일 것이라는 선입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에 선한 인상의 사람이었다.
그는 끌롱떠이에서 찍은 사진들을 내게 보여주었다. 특별히 나를 위해 가져나온 것이 아니라 늘 지니고 다닌다고 했다.

끌롱떠이에 대한, 혹은 사진에 대한 그의 생각은 그의 홈페이지에( http://yoonki.net/ ) 나와 있다.

   70 RAI는 방콕 최대의 슬럼지역인 끌롱떠이의 중심지역을 일컫는 지명이다.
   외부인들은 가난과 마약의 판매지나 소비지로, 고아와 버려진 아이들로,
   HIV나 다른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로 그리고 각종 범죄들로 70 RAI를
   떠올리겠지만 나의 관심은 단순히 가난에 있지 않다.
   나는 오히려 최악이라고 할 만한 그곳에서 어떤 행복을 찾고 싶었다.
   경제적인 상황이 아닌 삶의 측면 - 활력이 넘치는 공동체로서의 70RAI 사람들이
   만드는 일상 - 을 보고자 했다.

  (70 Rai is the name of place. Its the heart of Klongtoey slum - one of the biggest
   slum in Thailand.
   To outsiders, "70 Rai" associates the words -  Poverty, Drug (both - consuming
   and selling), orphan and deserted children, HIV and other diseases', dying old
   persons, Crimes.
   However, my point is not Poverty.
   I rather like to see happiness there, even in the worst situation.
   I want to see the aspect of living from the angle something different
   from financial status.
   The daily living of the people of 70 Rai, of its energetic community.)

그날 내가 본 끌롱떠이 사람들의 사진은 어떤 극적인 순간을 노린 것이 아니었다.
호사스런 전시회 화랑에 걸어, 여유있는 자의 주머니를 엿보려는 의도는 애초부터 없어 보였다.
그저 끌롱떠이라는 '특별한'(?) 곳에 사는 가족이나 주름진 얼굴의 노인, 혹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평범한 순간이었다.
그와(혹은 그의 사진과) 대상이 되어준 사람들과의 어떤 끈끈하고 진득한 유대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사진첩의 제목은 “PORTRAIT”였다.
그에 걸맞게 사진 속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나는 사진가니까요.”
“사진은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니까요.”

그는 사진에 나오는 모든 사람에게 직접 사진을 인화하여 한 장씩 나누어 준다고 했다.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저마다의 추억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그는 그냥 간단히 “사진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했다.

김윤기님의 끌렁떠이 사진


가난에 대해 분노한 적이 있었다.
가난은 사람들의 무능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모순의 결과일 뿐이라고 목청을 세우면서,
“가난은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영혼을 갉아 먹는 죄악이라고 규정하면서,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운운하는 '돼먹지 않은 아가리들에 '꽃병'을 쳐 넣어야 한다’고 가파르게 흥분하던 젊은 시절이었다.

지금도 나는 자선이나 기부만으로 세상은 좋아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의 어느 한 곳에서 자신의 몫을 겸손하게 감당하고 있는 김윤기님 같은 분을 만날 때마다 
나는 구체적인 행동 없이 설익고 거친 주장만 남긴 그 시간을 부끄럽게 떠올리곤 한다.

김윤기님이 사람들에게 건네주는 사진 한 장에는 세상과 삶의 어떤 근원을 흔드는 힘이 있어 보였다.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메마른 주장이나 이념으로 무장하는 것이 아니라
폭 넓고 따뜻한 감동을 동반한 실천이라는 것을 그와 그의 사진과 끌롱떠이 사람들의 관계가 보여주는 듯 했다.

*위 사진 : 선물로 받은 김윤기님의 사진


사진 한 장은 고단한 삶을 사는 그곳 사람들에게 잠시라도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결정적으로 인생을 역전시키는 ‘한방’은 될 수 없겠지만
행복한 기억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최소한 자신과 삶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야말로 가난한 사람들이 꾸는 꿈이 한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근원적인 힘이 되고
가난도 정말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다.


김윤기님.
그는 내가 담기 힘든 세상을 태연스레 자신의 일상 속에 넣고 산다.
30년 넘게 방콕의 빈민가를 지켜온 미국인 JOE MAIER 신부님이 운영하는 끌렁떠이 내 머시센터 MERCY CENTRE 에서
에이즈 환자와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고, 마약에 중독된 청년을 병원으로 보내고,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힘 없는
노인의 활동보조기구를 사주며 지낸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진솔하게 카메라 속에 담아낸다.

*위 사진 : JOE MAIER 신부님이 끌렁떠이에 관해 쓴 책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치열하게 고민하며 작고 겸손한 목소리로, 그러나 당당하게 세상에 풀어놓는 사람은 소중하다.
자리를 옮겨가며 밤 늦게까지 이어진 술자리에 나는 행복했다.
부디 건강하시라.

(20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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