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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눈길의 계룡산

by 장돌뱅이. 2013. 7. 10.

그곳에 있어 오른다는 산.
외국에서 거주하다 잠시 방문을 한 내겐
'늘' 그곳에 '변함없이 ' 있는 산이어서 좋다.

그런 산을 닮은 옛 친구들과 계룡산을 올랐다.
계절이 겨울의 끝을 지나고 있는데도
능선에는 하얀 눈이 가득했다.
눈길을 걷는 산행 -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게룡산이라는 이름은 정상인 천황봉에서 연천봉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닭볏을 쓴 용과 같다고 해서 생겨났다고 한다.

자연을 해석해내고 표현해내는 능력은 요즈음 보다 옛 사람이 뛰어난 것 같다.
선조 때 정여립은 계룡산의 지세와 형국을 일컬어
"약마경편세(躍馬驚鞭勢)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이라 말했다고 하던가.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는 지세"에
"용이 몸을 돌려 자신의 꼬리를 보는 형국"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뜻풀이에 계룡산엔 무언가 우렁찬 기운이 있어보인다.
그래서 옛 사람들이 이곳을 자주 새로운 세상의 도읍지로 거론했나보다.

능선길을 걸으면서도 종내 달리는 말이나 거대한 용틀임의 모습을
읽어내지 못한 나의 옹색한 시야와 소양으로서는
그런 옛 사람들 덕분에 눈을 뒤집어 쓴 용의 등허리를
밟고 걸어간다는 상상을 해볼 수 있으니 고마울 뿐이다.

토요일 오후에 시작한 산행은 동학사 주차장에서 큰배재와 남매탑을 거쳐 삼불봉 -관음봉
-동학사로 내려오는 4시간 정도의 코스였다. 

들머리 시설지구의 편의점에서 물과 막걸리를 사서 넣고 산행을 시작했다.  

 

능선에 가까지워자 질척이던 흙길은 눈길로 변해갔다.
나로서는 오래간만에 보는 눈이었다.
 

남매탐 앞에서 '입산주'를 나누었다.
요즈음은 막걸리가 대세라고 하지만 산행길에선 예전부터 대세였다.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는 능선길에선
고개만 들면 구비치는 산줄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하산길에 만난 은선폭포.
눈이 많았던 올 겨울이라 그런지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길은 하산길에도 이어져 평지에 가까운
동학사까지 내려와서야 비로소 아이젠을 벗을 수 있었다.
 

 

 

그리고 웃고 떠들며 밤 늦도록 이어진 '세미나'.
동그란 원탁테이블에서 간만에 만난 옛 친구들이 할 수 있는
'세미나'가 사실 무엇이 있겠는가?
호텔 측에 테이블 준비를 해달라며 친구가 즉흥적으로 지어낸 말이었다.
우리는 학창시절로 돌아가 킹과 퀸과 자니와 에이스가 나오는 '그림감상' 을 했다.
'낙장불입' "오랄금지" 등의 고사성어를(?) 동원하기는 했지만.  

(요즈음 경기도 좋지 않은데 나는 태평양을 건너온 시차라는
핸디캡을 극복하지 못하고 신나게 '터지고' 말았다.
젠장할,)
 

 

뒷날 아침 속풀이 해장국을 끝으로 해산을 했다.

초로의 50대에 접어든 친구들.
내가 그렇 듯 그들도 저마다 크고 작은 고민들을
끌어안고 부대끼며 살아가리라.
산다는 게 우리가 걸었던 산길처럼 늘 구비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우리가 처음 만났던 학창 시절의 그 모습으로
기죽지 않고 꿋꿋하기를.
그리고 건강하기를......

음식점 앞 화단에 솜털을 달고 피어난
작은 꽃몽오리가 봄이 가까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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