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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흙으로 빚어낸 사람

by 장돌뱅이. 2013. 7. 10.

 

 

 

 

 

 



아내와 내가 꼭 천주교신자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를 추모하는 자리 한 곳쯤은
찾아봤을 것이다.

그의 선종 직후
말 많은 세상 속
이런저런 말들이 오고갈 때
단호했던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기억한다.
"그만큼만 살아라!"

물론 나로서는 불가능한 '그만큼'이다.
칠팔십 년대의 척박했던 이땅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으면서도
한없이 선하고 인자한 눈매를 잃지 않았던
그는 추기경 이전에 큰 어른이었다.

아내와 그의 사진전이 열리는 명동성당을 다녀왔다.

   1969년 한국 천주교의 첫 추기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쓴 빨강 스컬캡은 신앙에 앞서 명예였다
   그러나 가장 겸허한 사람이었다
   70년대 이래
   그는 한번도 분노를 터뜨리지 않아도
   항상 강했다

   그는 행동이기보다 행동의 요소였다

   하늘에 별이 있음을
   땅에 꽃이 있음을
   아들을 잉태하기 전의
   젊은 마리아처럼 노래했다

   그에게는 잔잔한 밤바다가 있다
   함께 앉아 있는 동안
   어느 새 훤히 먼동 튼다

   그러다가 진실로 흙으로 빚어낸 사람
   독이나
   옹기거나
                       -고은의 시, "김수환"-

(2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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