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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by 장돌뱅이. 2013. 7. 2.

나는 누가 울 때, 왜 우는지 궁금합니다. 아이가 울 땐 더욱 그렇습니다.
아이를 울게 하는 것처럼 나쁜 일이 이 세상엔 없을 거라 여깁니다. 짐승이나 나무, 풀 같은 것들이 우는 까닭도 알고 싶은데, 만일 그 날이 내게 온다면, 나는 부끄러움도 잊고 덩실덩실 춤을 출 것입니다.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이 책을 쓴 임길택은 탄광마을과 산골짜기에서 20여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친 초등학교 교사이자 시인이며 동화 작가이다. 93년부터 98년까지는 경남 거창에서 '특수학급'의 교사였다.
그러나 '특수학급'은 제도가 붙여준 이름일 뿐 그에게는 여느 학생들과 다름없는 예쁜 제자들의 교실이었던 것 같다. 그는 “우리 학교 교육이 아홉은 죽이고 하나 길들이는 데에 바쳐지고 있구나” 탄식하며 그 속에서 '죽어가는 자신의 삶을 고치는 방법은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탄광마을) 아이들은 걸음마만 떼면 어른들의 손에서 자연스레 벗어나 저희들끼리 무리를 이루고 시시각으로 놀 곳과 놀이를 바꾸면서 온 마을과 들판을 헤매고 다닐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비록 교과서에 나오는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배우는 데는 더딜지라도, 산에 오르면 금방 더덕 내를 맡을 줄 알고, 들판의 씀바귀와 고들빼기를 가려낼 줄 알면서, 뚜구와 모래무지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에 대해서는 선생인 나보다 더 잘 안다. 교실 안에서는 그리 쓸모없을 듯 보이는 그들에게 점수 따고 공부 말고 내가 가르칠 수 있는 것들은 대체 무엇일까?
운동장 가에는 이른 봄부터 지금까지 수도 없이 손을 보아 정성껏 가꾼 봉숭아, 맨드라미, 백일홍, 채송화 같은 꽃들이 벌써부터 화려하다. 그러나 나는 그 화려한 꽃들에다 결코 우리 아이들을 견주고 싶지 않다. 우리 아이들은 누가 뭐래도 벼꽃이나 옥수수 또는 콩꽃이나 감자꽃이다. 언제 피는지 모르는 사이 열매를 맺는 그 꽃들만이 우리를 먹여 살릴 수 있음을 볼 때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일기 속에 교사로서 작자와 아이들과의 관계가 엿보인다.
주고받는 대화가 우스우면서도 정겹다. 학생들에게 그는 어려워서 다가서지 못하고 거리를 두고 쭈빗거려야 하는 '호랑이선생님'이 아니라 손 잡고 함께 목욕탕을 가는 자애로운 형님 같다.

수동이가 다시 나에게 집을 영어로 어떻게 말하는 줄 아느냐고 물었다. 모른다 하니까 집은 '하우스', 책은 '부', 개는 '나이언'이라 했다. 아주 진지하게 말해서 웃으면서도 계속 들었다. '나이언'에는 '개'라는 뜻 말고도 '사자'라는 뜻이 있다기에, 또 없냐니까 옆에서 수철이가 '호랑이'란 뜻이 있다고 했다. 수동이가 그건 아니라니까 수철이가 게속 우겨 '나이언'에는 세 가지 뜻이 있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수동이가 계속 '의사 선생님'은 '닥털', '닥터래기' 하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아버지는 '마우스 아버지', 어머니는 '마우스 어머니', 할아버지는 '마우스 할아버지'라 하길래, 그럼 동생은 '마우스 동생'이냐니까, 그게 아니라 했다. 중학교에 다니는 누나가 좀 가르쳐 주었는데 다음에 다시 배워다 다시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나는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탄광마을 아이들』이란 작은 시집으로 그의 글을 처음 읽었다.
아이들의 특유의 맑고 순순한 시선으로 탄광마을을 그린 시들이었다.
그 속에서 아이들 나름대로 자기들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 외가 마을 아저씨가 물었을 때 /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기차 안에서 / 앞 자리의 아저씨가 / 물어왔을 때도 나는 낯만 붉히었다//
바보 같으니라구 / 바보 같으니라구//
집에 돌아와 / 거울 앞에 서서야 / 나는 큰 소리로 말을 했다//
우리 아버지는 탄을 캐십니다 / 일한 만큼 돈을 타고 / 남 속이지 못하는/ 우리 아버지 광부이십니다

-「거울 앞에 서서」-

태백산 두리봉 어우실에 그의 시비가 있단다.
언젠가 산행길에 들려 작은 꽃 한 송이라도 놓아주어야겠다.
낯선 곳에 가면 일부러 허름한 식당을 찾아 밥을 사 먹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나그네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 차려 내주셔 참 고맙습니다.' 하고 꾸벅 절을 한다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이른바 '맛집'에 탐닉하곤 하는 나의 여행이 못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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