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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덤벼들거들랑

by 장돌뱅이. 2013. 7. 2.

 

한해가 가고 또 한해가 시작되었다.

돌아보면 지나간 시간은 늘 그렇다.
행복했던 시간과 슬펐던 시간이 있고 즐거웠던 순간과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
내가 먼저 사과를 했어야 했던 (그러나 자주 하지 않았던)  옹졸함과 함께
내게 사과를 해야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누군가에 대한 이기적인 욕심이  있다.
그때는 만족스러웠다고 생각했으나 시간이 지나 마지막 날에 생각해보니
이것도 저것도 온전치 못한 것 투성이인 것으로 남아있기도 한다.

아내와 함께 송구영신의 미사에 참석하여 제단의 벽에 걸린 십자가를 바라보며
침묵 속에 그런 기억들을 끄집어 내보았다.

내 자신의 행동과 세상이 던져준  아쉬움에 대하여 해결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스스로 수용하거나
위로받을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주는 그 사색의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졌던 한해였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라고 대나무 숲속에 말하는 동화 속의 이발사처럼
나는  두서 없이 내 즐거움에 대한 감사와 어려움에 대한 하소연을 일요일 낮이면 성당의 제단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풀어놓았다.
그리고 그것을 나만의 기도로 생각했다.

그것은 마치 아내와 성경을 읽는 것과 비슷한 일인지도 모른다.
작년 하반기동안 아내와 매일 조금씩 성경을 읽었다.
31일 저녁, 요한묵시록22장을 읽는 것으로 신약성경을 마쳤다.

읽으면서 감동을 받기도 했고 부끄러워지기도 했으며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았다.
그러나 성서적 의미가 주는 그런 결과보다도 나는 아내와 함께 성경을 읽는
고즈넉한 저녁의 시간,
그 자체가 좋았다.
어쩔 수 없는 초보신자의 모습이겠다.
두번을 읽은 야고보서가 기억에 남는다.

    모든 사람이 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분노하기도 더디 해야합니다.
    사람의 분노는 하느님의 의로움을 실현하지 못합니다.
                                                - 야고보 서간 1장 19절 -

새해라 하지만 삶은 늘 '덤벼드는' 것들과의 실랑이일 것이고
나는 또 내년 이맘 때쯤 같은 기억 속을 더듬는 미욱함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벌써 수십 년간 늘 그렇게 해왔으니까.
그래도 아프리카 민요처럼 또 한해를 아내와 알콩달콩 지내며 우직한 희망으로 살아내고 싶다. 

   자칼이 덤벼들거들랑 하이애나를 보여주고,
   하이애나가 덤벼들거들랑 사자를 보여주고,
   사자가 덤벼들거들랑 사냥꾼을 보여주고,
   사냥꾼이 덤벼들거들랑 뱀을 보여주고.
   뱀이 덤벼들거들랑 막대기를 보여주고,
   막대기가 덤벼들거들랑 불을 보여주고,
   불이 덤벼들거들랑 강물을 보여주고,
   강물이 덤벼들거들랑 바람을 보여주고,
   바람이 덤벼들거들랑 신(神)을 보여주어야지
              - 아프리카 민요, "덤벼들거들랑"  -

보잘 것 없는 저희 집을 찾아주시는 모든 분들도 또 한해를 행복하게 지내시길 기원드립니다.

(2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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