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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슬픔을 희망으로

by 장돌뱅이. 2013. 7. 16.


노무현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아 아내와 딸아이가
지금 야간교통편으로 봉하마을로 내려가고 있다.
아마 새벽녘에 도착하여 낮동안 묘소 참배를 하고 추모행사에 참석하게 될 것이다.
시간이 나면 부엉이바위를 포함 노대통령의 생전에 자취가 묻어있는 장소를 돌아볼지도 모르겠디.
그리고 저녁 늦게 서울로 돌아올 것이다.

뒷날 아침에 출근을 해야하는 딸아이는 다소 버거운 일정임에도 보통의 가족여행때처럼 힘들다고 
좀 과장된 엄살을 피우는 대신에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정으로 무덤덤히 다녀오겠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충격이었던 작년 노대통령의 죽음이었지만 딸아이에게는 그 강도가 남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처음에는 노무현에 대한 연민에서 시작되었겠지만 곧 대통령으로서 그가 하고자 했던 일과
노무현이라는 정치적, 역사적 '아이콘'이 감당해온 고통에 대한 관심으로
그리고 거기에 무관심했던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지면서 한동한 격렬한 정신적 몸살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더불어 노대통령에게 죽음이라느 극단적 선택을 강요한 우리 사회의 모순과 그런 사회를 만든 역사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된 듯 하다.

아내는 (나와 생각이 같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말하자면) 87년 김대중-김영삼 간의 단일화가 양대세력의 집권욕으로 
실패하여
국민들의 피땀으로 일궈낸 6월항쟁의 결과를 허무하게 군부세력에게 다시 넘겨주고 난 뒤부터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향한
주체로서 '보수야당' 세력들의 역활과 진실성을 믿지 않게 되었다.
더불어 갖가지 논리와 구호를 내걸고 그 정당들에 진입한 이른 바 '재야인사'들의 역활에도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인사들이 입당 후에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대부분 '그 나물에 그 밥'이 되고 말았다.

한국사회의 지역적 갈등을 고착화 시킨 김영삼과 노태우그리고 김종필의 '3당야합'에 반대하여 자신의 안정적인 정치적 기반을 
뿌리치고 나온 노무현조차도
그의 개인적인 진실성과는 별도로 결국 같은 길을 걷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아내와 내가 그를 기억하는 것은 그가 김대중 휘하에 들어가 부산의 한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했다가 
당연히(?) 떨어지고 난 뒤부터였다.
"농부가 밭을 탓할 수는 없다"라는 그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 
낙선자의 수사적인 표현이라기에는 스스로 역경 속으로 걸어들어간 그의 행보가 진실되어 보였다. 

그는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서 전라도 광주시민들의 놀라운 결단으로 바람몰이를 하여 민주당의 후보가 되고 
마침내 대통령을 되었을 때
아내와 나는 광화문에서 환호를 했지만 그것은 그에 대한 열렬한 지지라기 보다는
김대중에 이어 또 한번 '군사독재세력의 잔당'들이 돌아오는 최악의 상황을 면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대통령 재임기간동안의 노무현에 대해 '좌파' 운운하는 말처럼 비논리적인 평가가 있을까?
아내와 내가 보기에 그는 온건한 우익이었고 실제로도 한미FTA나 중동파병, 평택미군기지 이전 문제에서 보듯
우회전 깜박이를 켜고 정상적으로 우회전을 한 정치가였다.
문제가 있다면 다른 나라의 상황에 비해 너무 우편향된,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틀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정책 때문에 아내와 나는 대통령인 그에게 그다지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사족을 붙이자면 저들은 '좌파' 자체가 마치 죄인양 말을 하지만 설혹 '좌파'라 하더라도 존재 그 자체가 죄가 될 수 없다.
공산당이 하나의 정당으로 존재하는 선진국도 있지 않은가.
시비를 한다면 그 '좌파'가 시행한 정책에 대한 논리적 비판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런저런 말들이 있겠지만 아내와 나로서는 결론적으로 한가지,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수많은 개인과 수많은 조직과 단체들이 수많은 논리로
수많은 길을 걸었지만  그만큼 정면으로 사회의 기득권층과 대면해서 지속적으로
맞서는 상황을 경험하고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사회적으로는 물론 자신의 집권당 내부에서도 기득권층과 싸워야 했다.

그런 그에게 원론적인 논리만 들이대고 심정적으로나마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그의 죽음 이후에야
아내와 나는 오래도록 눈물로 반성을 했다. 그리고 그는 해방 이후 우리가 가졌던 지도자 중에 유일한
'우리 부부 마음 속의 대통령'이 되었다.

작년 그의 죽음으로 딸아이와 우리 부부처럼 우리 사회는 스스로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사회 곳곳에서 '시국선언문'이라는 이름의 반성문이(?) 뜨겁게 터져 나왔다.
어느 것이나 대동소이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중에 서강대학교교수님들의 선언문으로
아내와 나의 반성문을 대신한다.

한국에는 오늘과 내일 비가 온다고 한다.
촉촉한 비가 그의 무덤가에 풀들을 무성하게 키워 좀더 그를 따뜻하게 감싸주었으면 좋겠다.
그의 명복을 빈다.
더불어 나의 '몫'까지  전하고 오겠다는 아내와 딸의 봉하마을행이 뜻깊은 여정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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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슬픔을 희망으로 바꿔야 합니다.

국민들의 축복과 염원 속에서 출범한 이명박 정부가 1년을 조금 넘긴 오늘,
우리는 어렵게 획득한 민주주의가 다시 피폐해 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잠시 연구실에서 읽던 책을 덮고 목소리를 내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입니다.
하지만 그 분의 죽음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산 소고기 전면수입으로 촉발된 기나긴 촛불의 행진을 청와대 뒷산에서 바라보며
자성했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러나 촛불의 염원을 전하고 물러선 우리 시민에게 되돌아 온 것은 성숙한 시민에 대한
온당한 대우가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었습니다. 슬프게도 우리의 민주주의는 속도전, 돌격전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상식을 넘어서는 공격에 너무나 큰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촛불시위 관계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사법처리 등 집회의 자유에 대한 억압, 미네르바의 구속으로 상징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 오랜 세월 동안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혀온 연세대 오세철 명예교수 등
사회주의노동자정치연합 등에 대한 사법적 조치들이 보여주는 사상의 자유에 대한 탄압,
YTN 노조위원장 구속과 MBC PD수첩 관련자들에 대한 체포조사로 상징되는 공적 담론에 대한 불신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사상, 표현, 집회, 언론의 자유가 송두리째 위협받고 있습니다.
특히 용산참사 현장에서 이루어진 기자회견까지 신고하지 않은 불법집회로 간주해 국민의 목소리를
법의 힘으로 억압하는 행위를 보면서 우리는 걱정을 넘어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나아가 민주주의의 절대가치인 참여와 자유를 박탈해 버릴 소위 ‘MB 악법’을 강행하려고 하는 모습에서는
지난날의 악몽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뿐 아닙니다. 월스트리트발 경제위기를 계기로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정책을 반성하고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고자 하는 전세계적인 역사의 전환기를 도외시하고, 이명박 정부는 부유층에 대한 대대적인 감세 등
신자유주의정책을 더욱 심화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양극화 해소에 힘쓰기는커녕 양극화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가뜩이나 낙후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왜 용산에서
성실히 살아온 이웃이 참사를 겪는 꼴을 목격해야 하며, 우리가 왜 우리의 발이 되어 열심히 살아 온
택배화물 노동자의 죽음을 무기력하게 바라만 봐야 합니까?


우리 이웃의 죽음을 애도하고 수습하기도 전에 우리는 노무현 전대통령의 죽음이라는 전대미문의 비극마저
감내해야 하는 지경에 내몰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전직 대통령이라고 법 위에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또 노무현 전대통령을 둘러싼 의혹은 불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왜 하필 지난해 7월 수많은 기업인 중
유독 노전대통령의 후원자였던 박연차 씨와 강금원 씨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사찰이 시작되어 결국 노전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로 이어지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보면 ‘정치 보복적 표적수사’라는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공과에 대해서는 논쟁이 가능하지만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업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왕적 대통령제와 검찰, 국세청으로 상징되는 ‘사정 권력기관’을 정권의 시녀로 삼던 관행과 단절하고
대통령의 탈권위주의화를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명박 대통령은 이 같은 역사의 발전을 되돌려
국세청과 검찰을 다시 권력의 시녀로 만들려고 하고 있고, 또 국회와 여당 위에 군림하는 제왕적 대통령으로
돌아가려는 듯 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말 우려스러운 것은 노전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국민이 보여준 슬픔과 분노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가
별다른 자성의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오만에 다름 아닙니다. 그 같은 오만은 결국
정권과 국민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가져다줄 것임을 이명박 정부는 명심해야 합니다.


이을 것은 이어야 하고 고칠 것은 고쳐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미덕을 계승하고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대통령을 바랍니다. 이에 우리는 다음 세 가지 사항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하나,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표적수사에 대해 사과하고
‘사정 권력기관’의 중립화를 위한 제도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하나, 이명박 대통령은 그간 일방적으로 국정을 운영해 왔고,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해 왔습니다.
그 모든 정의롭지 못한 행위를 중단하고 국민과 소통하고 화합하는 정치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쟁점법안을 합의하여 처리할 것을 국민에게 엄숙히 약속해야 합니다.

메마른 대지에 비가 오기 전에는 타는 목마름이 있기 마련입니다. 대지가 촉촉이 젖어서 생명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을 볼 때까지 우리의 소망은 이어질 것이며, 외침은 커져만 갈 것입니다. 손과 발을 묶어도 소망은
결코 속박할 수 없고, 입을 막아도 목소리는 새어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과오를 깨닫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며 보다 나은 미래를 향한 행진에 국민과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2009년 6월 7일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서강대학교 교수 45인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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