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5월 31일 명동성당 들머리 미사에서 발표된 선언문이다.
공공재를 사유화하는 약탈정부
1. 임기 절반동안 이명박 대통령이 야심차게 벌인 사업들은 하나같이 공유자산을 약탈하다시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었다. 검역주권을 포기하면서까지 문제의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강행한 일부터 방송장악과 우격다짐으로 통과시킨 미디어법, 시국선언교사 징계, 노동계 탄압,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등은 지난 수십 년간 피눈물로 마련한 상식과 순리의 가치들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무참한 짓이었다.
그 와중에 남북의 화해와 신뢰마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고 보면 숭례문 화재는 그가 벌일 일들의 예고편이었다. 급기야 국민대다수의 반대와 양심의 목소리들을 조롱하고 비난하면서 불철주야 4대강을 파괴하고 있다. 역사상 그 어떤 권력자도 이보다 무서운 죄악을 저지른 일이 없었다.
대통령이라고 하지만 결국 5년짜리 비정규직공무원에 불과한 그가 영영세세 공동의 유산으로 삼아야 할 선악과에 손을 댔으니, 장차 에덴의 금수강산에서 쫓겨나야하는 우리 모두의 불행은 끔찍하기만 하다.
인간성의 타락과 강의 파괴
2.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4대강의 참상은 망가질 대로 망가진 인간성을 폭로하고 있다.
인간본연의 심성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하는 일은 아예 없었을 것이고, 파괴를 ‘살리기’라고 우기는 파렴치한 언동은 처음부터 용납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종교의 책임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뿌리가 썩지 않고서는 나무가 이 모양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천주교회 주교회의를 필두로 개신교, 불교, 원불교 등 주요종단이 4대강사업 반대를 천명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으나 선언에 그쳤을 뿐 소수의 헌신을 제외하면 대부분 강의 붉은 눈물을 외면하였다.
사랑을 말하되 도무지 사랑하지 않는 것이 한국사회 종교들의 냉정한 현실이며 얼굴이다.
지방선거와 천안함의 의미
3. 이번 지방선거는 국책사업과 정부의 주요정책을 평가하고 여론을 수렴하는 훌륭한 기회였다.
그러나 정부와 한나라당은 선거관리위원회를 앞세워 4대강사업을 우려하는 목소리 일체를 물샐틈없이 봉쇄하였다. 여론의 불만이 거세어질 즈음 원인불명의 군함사고가 터졌다. 가엾은 사병들만 수장되었고 그 운명을 나눈 지휘관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책임을 북쪽에 돌리는 주장을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대통령은 이 엄청난 과오에 대하여 머리를 조아리고 용서를 구해야 했으며, 지휘관들은 상응하는 처벌을 달게 받아야 옳았다. 그런데 적반하장으로 대통령은 국민의 안보불감증을 꾸짖었고, 이른바 ‘조중동’은 민주정부 십년의 화해정책을 멸시하면서 전쟁불사를 외쳤다. 그들은 남북관계의 파탄으로 온 국민이 불안에 떠는데도 이를 국가정상화의 완결로 여기며 매우 흡족한 표정이다. 그 와중에 선거와 정치는 왜곡과 파행으로 치달았고, 집권세력은 또 다시 북풍몰이의 수혜자가 되었으니 우리는 다시금 천안함의 진실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평화와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시민의 몫
4. 정부가 의혹투성이의 증거물 하나를 들고 와서 일촉즉발의 위기를 조성한 이유는 분명하다. 지방선거의 승리를 발판으로 4대강사업을 신속하게 완결하려는 것이다. 겨레 전체의 생사를 쥐고 도박을 서슴지 않는 모습에서 우리는 4대강사업에 참여하는 자본권력의 이해가 얼마나 엄청날지 가늠해본다.
유권자들이 바로 이 점을 꿰뚫어보지 않으면 4대강뿐 아니라 민주주의와 통일의 미래는 영영 암울해지고 말 것이다. 공생공락과 상쟁공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힘은 아직 국민의 손에 달려 있다.
이틀 후의 지방선거는 파국과 재앙을 모면할 최후의 합법적 기회이다.
탐욕에 대한 성찰
5. 하늘의 섭리, 사람의 도리가 망가지고 선악미추의 기준도 사라진 광란의 시대다.
각자의 욕심부터 다스리자. 고라니, 남생이와 나눠 마시다가 바다로 흘려보내야 할 물을 저 혼자 마시겠다고 보와 제방을 쌓는 저 잔인한 탐욕을 뉘우치지 않는 한 강자들의 약탈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오만과 독선의 괴물은 우리의 타락한 마음에서 잉태되었다. 부디 약자와 병든 사람을 배려하는 착한 마음으로 돌아가자.
6. 앞으로도 사제와 수도자들의 기도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실례(失禮)를 복례(復禮)로 바꾸기 위해 순교자의 정신으로 모든 정성을 다 바칠 것이다.
2010년 5월 31일 복되신 동정마리아의 방문축일에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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