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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샌디에고 걷기 28 - SYCAMORE CANYON

by 장돌뱅이. 2013. 7. 18.

 



휑한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트레일 초입에 들어서자 능선을 따라 길에 뻗어나간 길이 보였다.
초록의 잡목숲을 이발 기계로 밀어버린 듯한 누런 흙길을 보며 걷다가 문득 김기림의 글이 떠올랐다.
  

 

 "은빛 바다가 보이는 언덕길...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간
나의 소년시절...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잊어버린 내 첫사랑...
노을에 자줏빛으로 젖어 돌아오던..."
제대로 외우고 있지 못한 탓에 이런저런 구절들이 두서 없이 떠올랐다.

 

 걷는 내내 생각나는 구절만 반복해서 읊조리다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냉장고 속의 맥주를 꺼내 마시며
서둘러 글을 찾아 읽었다. 

     나의 소년시절은 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잊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러고 어두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지를 모른다는 동구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애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 준다.
                                                       -김기림의 글, "길" -

 

길은 능선을 지나 언덕 아래로 내려가며 좁아졌다간 평지로 들어서며 넉넉하게 넓어졌다.
계곡에 갇힌 공기는 더웠고 거칠 것 없이 퍼붓는 햇살은 눈을 시리게 했다.



오고가는 사람 하나 없는 옛 목장 터의 그늘에서 물을 마시고 머리에도 부었다.
그리고 다시 길을 나섰다.
길은 다시 좁은 산길을 따라 오르내렸고 메말라 퍽퍽했다.

이런 날 같이 걸었다면 좀처럼 땀이 잘 나지 않는 아내의 등에는
제법 물기가 베어나왔을 테고  불그레해진 얼굴에도
이슬 같은 땀방울이 송송 돋아났을 것이다. 

(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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