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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주말 오후

by 장돌뱅이. 2013. 7. 18.

  

 

 

 

 

 



주말 오후 아내와 바닷가로 나갔다.
작은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에 자리를 폈다.
음악을 들으며 아내는 책을 읽었다.
나는 아내의 옆에서
햇볕 가득한 푸른 바다와 초록의 잔디, 그리고
오고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쉬임없이 재잘거리며
잔디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자주 들려왔다.

한대수가 노래로 만든 행복의 나라에는
춤추는 산들바람과 가벼운 풀밭,
편안한 공상과 노는 아이들 소리가 있었던가?

그런 풍경들 속에서
아내도 나도 또한 풍경이 되며
세워져 있는 자전거처럼 편안했던 오후였다.

   비 긋자 아이들이 공 차며 싱그럽게 자라는
   원구 초등교 자리, 카토릭 대구 교구 영해 수련장
   현관 앞에 서 있는 향나무
   선들바람 속에 짙은 초록으로 불타고 있다.
   나무들 가운데 불의 형상으로 살고 있는 게 바로 향나무지,
   중얼대며 자세히 살펴보면
   몇 년 전 출토된 백제 금동 향로 모습이 타고 있다.
   선들바람 속에 타고 있다.
   혹시 금동장(金銅匠)이 새로 앉힐 향로의 틀을 찾다
   향의 속내를 더듬다
   저도 몰래 향나무 속으로 들어간 것은 아닐까?
   아이들이 금 밖으로 흘리는 공을 되차주기도 하며
   운동장을 몇바퀴 돌고 나무 앞에 선다.
   아이 둘이 부딪쳐 나뒹굴어졌다 툭툭 털고 일어난다.
   이 살아 불타고 있는 향로 앞에서
   이 세상에 태울 향 아닌 게 무엇이 있나?
   속으로 가만히 물어본다.
                       -황동규의 시, "향(香)"-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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