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고해성사

by 장돌뱅이. 2013. 7. 25.


*위 사진 : 집 근처에 있는 CORPUS CHRISTIC CATHOLIC CHURCH

천주교 신자들은 최소 일 년에 두 번, 부활절과 성탄절을 앞두고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 그것은 천주교 신자로서의 의무사항이라고 한다.

아직 신자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에 좀 쑥스러운 내게 고해성사는
매우 힘든 통과의례이다. 아무리 비밀이 보장되는 신부님 앞이라고 해도
나의 잘못을 사실대로 드러내기에는 좀 ‘거시기’하여 발설해도 좋을 만한
잘못들만 애써 찾아내고 포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작 용서를 빌어야 할 커다란 잘못은 이미 스스로 잘 알고 있는 터라
“이밖에 미처 알아내지 못한 다른 잘못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편리한 문구에 무임승차 시켜 흘려버리곤 한다.
아예 안한다고 뭐라 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런다고 안하기는 좀 걸쩍지근한 의무...
일테면 천주교신자가 된 이래 내가 여러 번의 고해성사를
매우 형식적으로 치러왔다는 이야기겠다.

다시 부활절과 함께 그 ‘계륵’(?) 같은 의무의 이행기간이 다가왔다.
요즈음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낸다. 조용한 저녁이면 책을 읽다 문득문득
지난 시절 내가 아내와 딸아이에게 저지른 잘못들이 떠오르곤 한다.
그럴 때마다 자책을 하게 되고 종종 그것들은 날카로운 칼끝이 되어
가슴을 파고든다.

그때는 논리적이라고 생각했으나 지나고 보니 터무니없는 일들도 있고
아예 처음부터 함부로 저지른 일들도 있다. 후자의 경우가 더 많지만
전자 역시 아예 처음부터 논리나 애정은 없었다는 게 맞다.
있었던 것은 다만 옹졸함이거나 절제 되지 않은 감정의 폭발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앞선 몇번의 고해성사처럼 대충 그런 말을 하고자 했을 뿐인데...
어느 순간 콧날이 싸해지면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내 음성이 눈물과 비벼지고 있었다.
잠시 사이를 두며 시간을 벌어야 했다.
'뭐야 이거?'
예기치 않았던 감정을 당황스럽게 수습하며 서둘러 고해성사를 마쳤다.

작년인가 고해성사를 마치고 나온 아내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와아! 눈물씩이나. 이젠 본격적으로 당신도 '예수천당 불신지옥'으로 가는가 보네.”
나는 아내를 놀렸다.
“나도 몰라. 그냥 갑자기...”
아내는 겸연쩍게 웃으며 눈가를 훔쳤다.
이 글을 보고 아내가 놀리면 나도 같은 말로 대꾸할 수밖에 없겠다.

가족이며 겨레붙이란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보듬어주는
가장 진솔하고 큰 위로의 선물이지만 자칫 가까움과 편안함의 경계를
넘어서면 남들에게는 무시로 할 수 있는 행동도
아픈 상처가 되어 남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아버지와 지아비로서의 부실함 속에서도
딸아이는 밝은 따뜻한 성품으로 자라 성인이 되었고
아내는 우리가 함께 살아온 세월에 대해 내게는
과분한 자부심과 행복함으로 회상하곤 한다. 
누군가의 보살핌이 있지 않고서야 가능한 일이 아님을
부끄러우나 고마운 마음으로 고백할 수 밖에 없겠다.

(2011.3)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프마라톤 코스 사전답사  (0) 2013.07.25
(퍼온글) 오만한 과학, 돈에 눈 먼 민영화...  (0) 2013.07.25
욕 권하는 사회  (0) 2013.07.25
'에쵸티'에 관한 추억  (0) 2013.07.25
그는 별일 없이 산다  (0) 2013.07.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