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일을 결심하거나 하고자 할 때 사전에 주위에 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을 내세우거나 자랑하자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알림으로써 준비와 실행에 좀 더 철저해지고자 하는 뜻입니다. 일테면 금연을 시작하는 사람이 주변에 자신의 금연결심을 알려서 혹 약해질 수도 있는 자신의 의지를 굳건히 세우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 방식을 흉내내 봅니다.
4월17일 하프마라톤에 나가갑니다.
미국에 와서는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10킬로미터를 달린 이래 두 번째 출전입니다.
10년 전에 한국에서 세 번 정도 하프마라톤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모두 잠실구장을 출발하여 한강변의 포장도로를 뛰었습니다만 이번 코스는 호수를 낀 산비탈의 비포장 도로를 달리게 되어 있어 흥미롭습니다.
그동안 퇴근 후 집 아파트 헬쓰장의 러닝머신에서 혹은 집 주변의 도로를 뛰며 준비를 해두었습니다.
한국에서는 2시간 10분 정도에 뛰었던 것 같은데 10년이라는 시간과 비포장 길이라는 조건을 감안하여 이곳에서는 10분 정도 늦추어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속도의 의미보다는 컷오프 시간(3시간) 내의 완주라면 만족하려고 합니다.
오늘 오후에 탐사차 보름 후에 달릴 코스를 걸어보았습니다.
샌디에고 북쪽 란초버나드 공원(RANCHO BERNARD COMMUNITY PARK)에서 출발하여 인근의 LAKE HODGE 가장자리의 북쪽과 서쪽 트레일을 왕복하는 코스입니다.
정확하게 하프마라톤 코스보다 0.3마일(5백 미터) 정도가 더 길다고 주최 측에서 알려주며 "COOL DOWN" 거리라고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만 잠실 주 경기장 트랙을 한 바퀴 도는 그 마지막 거리를 넘어서야 비로소 몸을 식힐 수 있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요즈음 샌디에고도 바야흐로 봄으로 접어드는 계절입니다.
겨우내 내린 비를 머금은 산과 들은 초록이 싱싱하고 수많은 꽃들이 맹렬하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사막 기후의 건조한 곳이다 보니 오래지 않아 없어질 초록이고 꽃들입니다.
짧아서 그런지 이곳의 봄은 색감이 강렬합니다.
어제까지만해도 날씨가 맑고 기온이 높았습니다만 오늘은 구름이 끼고 트레일을 걷는 동안 바람까지 제법 불었습니다. 그래도 온 대지가 새로운 기운에 들썩이며 피워내는 봄기운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인간의 대지』에는 겨울 안데스산맥에 비행기와 함께 추락하였다가 극한의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내고 살아 돌아온 조종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걷는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내 아내는 생각하겠지. 만약 내가 살아 있다면 걸을 거라고. 동료들도 내가 걸을 거라고 믿을 거야. 그들은 모두 나를 믿고 있어. 그러니 걷지 않는다면 내가 나쁜 놈인 거야."
내게 달리기는 조종사의 경우처럼 생사의 문제가 아닌 여가 선용의 즐거움입니다만 언덕길을 오르며 숨이 턱끝에 걸릴 때 이 사전공개로 인해 나의 달리기를 알고 있는 분들을 생각하며 한걸음을 더 길게 내딛도록 하겠습니다.
(2011.4)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살아와줘서..살아가줘서.. 고맙다.. 127시간 (딸아이의 글) (0) | 2013.07.26 |
---|---|
레이크호지스 하프마라톤 (0) | 2013.07.25 |
(퍼온글) 오만한 과학, 돈에 눈 먼 민영화... (0) | 2013.07.25 |
고해성사 (0) | 2013.07.25 |
욕 권하는 사회 (0) | 2013.07.2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