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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요한묵시록

by 장돌뱅이. 2013. 7. 31.

 

올 1년 동안 성경을 한번 읽었다. 성서 공부 교재와 함께 했다.
그러다보니
지난번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을 한 것이 아니라
교재에 주제와 참고문으로 나와있는 대목을 위주로 읽었다.

우리나라의 모습이 성경 속의 옛 이스라엘의 모습과 비슷해 보였다.
갈라진 국토와 외세에 밟히고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과 그런 외세에 부응하는 권력,
도그마로 변한 정책과 이념과 교리, 거기에 갇힌 종교지도자.....

야고보서의 말처럼(2장) 그들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
형제 자매에게 그들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근엄하게 찌껄인다.
육신과 영혼을 분리하고 교리를 추상화하고 개인화 한다.
현실과 역사를 하느님의 나라와 따로 둔다.

아직 내가 믿음이 약하거나 아예 없기 때문에 드는 생각일수도 있다.
그렇다. 성전 앞에 주름 하나 없는 제복을 입은 분들껜 불경스럽게 보이겠지만
주어진 현실의 각박함 때문에 솔직히 나는 자주 하느님의 현존을 의심한다.
그의 무능을 함부로 성토할 때까지 있다.

그러나 내가 신앙인이건 아니건 하는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내가 이미 그에 의해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당에 다니면서 내가 유일하게 긍정하는 부분이다.
달리 나의 기원을 설명할 수도 없지 않은가!)
원하거나 안 하거나 이미 내가 '정체 모를'  그 누군가의 손안에 있음이
성가실 때도 있고 위안이 될 때도 있다.

자축의 '책씻이'를 하는 날,
마지막으로 읽은 요한묵시록의 구절대로 빨리 세상에 마징가제트처럼 정체를 드러내시라고
마음 속으로 또 한번 생떼를 써보았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요한묵시록, 21장3절 -4절-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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