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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호두를 까는 주말 아침

by 장돌뱅이. 2013. 8. 11.

간밤에 주말 아침 음식으로 무슨 죽을 원하느냐고
아내에게 물었더니
“견과류죽!”이라고 했다.
아몬드와 땅콩, 그리고 잣과 호두를 갈아 넣은,
몇 주 전에 만들었던 죽을 말함이다.
인터넷이나 책을 참고하지 않고 그냥 집에 있는
재료들을 모아
짬뽕으로 만든 ‘창작품’인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이미 글로 쓴 것처럼 이 죽을 만드는데 가장 성가신 일은  호두껍질을 벗기는 일이다.
끓는 물에 식초를 한두 방울 넣고
데쳐내듯 삶아서 이쑤시개처럼
끝이 날카로운 도구로 주름진
호두의 골과 골 사이를 쑤시며 달래듯 살살 벗겨내야 한다.
성미가 급한 나로서는 갑갑증이 솟는 일이어서 아내에게 협조를 부탁했다.

특별한 미식가가 아니고선 혼자만의 한끼 식사를 위해
결코 주말 아침에
호두를 다듬지는 않으리라.
함께 산다는 건 한 그릇 죽을 나누기 위해
꼼꼼히 호두껍질을 벗기는 일과 같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아서 서로의 늦은 손놀림을 타박해가며 킬킬거렸다.
커튼을 열어놓은 창에 파란 하늘이 가득한 아침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나누는 커피 한잔도 향기로웠던.

추가로 지난 이삼 주 동안에 만들었던 음식 몇 가지를 올려본다.

해산물덮밥과 두부덮밥.
내가 녹말가루를 풀어서 만들어본 첫 음식들이다.
마치 처음으로 화학약품의 변화를 지켜보는 초등학생처럼
녹말가루가 끈적해지는
과정이 자못 신기했다.

 

그리고 새우탕.
호박과 무에서 우러나온 맑은 국물이 시원했다.
청양고추 대신에 넣은, 이곳에서 흔한 할라피뇨(jalapeño)의 칼칼한 맛도 스며있었다.

하루 반나절이 더 남은 주말 휴일.
뭘 만들어볼까? 책속의 조리법과 냉장고 속의 재료들을 자주 비교해 본다.
아내에게 음식만들기는 30년 가까이 해온 노동이지만 아직 내겐 즐거운 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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