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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기타

뉴질랜드 여행4

by 장돌뱅이. 2013. 8. 16.

테아나우 TE ANAU 를 거쳐 밀포드사운드 MILFORD SOUND를 가는 날.
하늘은 어제보다 구름이 많이 벗겨져 본래의 맑고 파란 색깔을 드러냈다.
퀸즈타운을 벗어나 한참을 달려도 창밖으로 호수의 풍경이 이어졌다.
하늘을 가득 담은 호수는 산과 산, 골과 골 사이를 채우며 오래 우리를 따라왔다.
와카티푸는 뉴질랜드에서 3번째로 큰 호수라고 했다. 그 거대한 크기를 각인시키는 풍경이었다.

호수가 끝나자 초록의 풀밭 속에 점점이 흩어져 풀을 뜯는 양떼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하늘의 흰 구름과 먼 산 꼭대기에 남아 있는 흰 눈과 함께
어울린 양떼들은 소박하고 정감어린 풍경을 만들어냈다.
아침 냉기는 햇빛에 풀려 나른하게 몸을 감싸왔다. 평화로웠다. 편안했다.
어느 샌가 딸아이는 뒷좌석에서 잠이 들었다.
아 우리는 여행 중이다!

   아주 편안한 걸음으로 해 지는 서편으로 걸어갈 수 있다면
   풀피리 소리 잔등이나 이마 쪽에서 천천히 풀어지고
   양떼 사이로 흐르는 강을 따라 침엽수 무성한
   모래밭에 발자국 남길 수 있다면
   발자국이 아주 오래도록 남아 있어
   적은 양의 빗물도 고이게 하고 풀잎들을 물에 지치게 하고
   가장 가까운 계곡을 찾아내 스스로 흘러나가게 하고 
   양떼 염소떼 하늘로 올라가 구름의 형상으로 자라나
   저것이 양떼 구름이야 염소떼 구름이야 하고
   지상의 슬픈 민족들이 신기해하거나 즐거워할 수 있다면
   나는 양떼 염소떼 수천 마리 이끌고 어떤 종교의 발생지처럼
   죽는 곳을 죽을 때까지 가꾸어놓을 수 있다
                                    -이문재의 시, “양떼 염소떼”-



테아나우 TE ANAU는 뉴질랜드 남섬 남서부에 있는 피요르드랜드 FIORDLAND
국립공원 중 유명한 밀포드사운드 MILFORD SOUND 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와카티푸 호수보다 크고 깊은 호숫가에 자리잡고 있다. 호수의 이름도 테아나우다.

호수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고양이수염’ CAT'S WHISKERS 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이름 속 고양이 대신에 숙소에는
늙은 개 한 마리가 주인 곁에서 어슬렁거렸다. 아침식사까지 제공되는 숙소였다.

체크인을 하고 밀포드사운드로 가기 전 샌드플라이 SANDFLY에서 점심을 먹었다.
론리플래닛을 비롯한 여행안내서마다 이곳의 커피를 테아나우 최고로 꼽았다.
커피와 함께 먹는 버거의 맛도 좋았다.

식당 이름으로 쓰인 샌드플라이는 이곳 남섬 서부해안에서 악명 높은 곤충이다.
한번 물리면 그 가려움이 지독하고 자국이 몇 개월이나 간다고 한다.
‘뉴질랜드 100배 즐기기’에는 샌드플라이를 ”우리가 상상하는 모기,
그 이상의 모기“라고 했다. 혹 샌드플라이에게 물리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밀포드사운드를 다녀오도록 우리 가족은 공격을 당하지 않았다.

포드사운드는 빙하에 의해 깎인 급경사의 산들이 도열 하듯 우뚝 서서
좁은 만(灣)을 이루며 바닷물을 끌어들인 절경의 피요르드 지형을 말한다.

그러나 테아나우와 밀포드사운드를 잇는 119킬로미터의 길 주변이 그에
못지않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푸른 들과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들꽃과
맑은 시냇물이 그랬고 까마득한 절벽을 타고 수십 갈래로 떨어지는 눈 녹은 물이
곳곳에 입 벌어지는 장관을 만들어냈다.
우리는 그대로 지나칠 수 없는 풍경에 어쩔 수 없이 자주 차를 세워야했다.

목적지인 밀포드사운드에 닿기 전 찻길을 살짝 벗어나 산길을 걸었다.
‘바위구멍길’ THE CHASM 이라 이름 붙여진 왕복 20여 분의 짧은 길이었다.
우거진 숲과 바위에 구멍을 낼 정도로 거친 물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목적지인 밀포드사운드.
우리는 오후 4시에 출발하는 크루즈를 탔다.
퀸즈타운 등에서 당일치기로 다녀가는 관광객들이 빠져나간 크루즈선은 한가했다.
그 때문에 일부러 마지막 시간대의 배를 잡은 것이다.

우리는 배 안팎을 돌아다니며 여러 각도로 오랜 세월 빙하가 조각해낸 지형들을 감상했다.
산에 눈이 좀 더 많았으면 더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었겠지만 폭포와 수직의 절벽이
만들어내는 풍경만으로, 그리고 이곳까지 오는 동안의 풍경만으로 충분한 것이었다.
절정의 순간은 황홀한 것이겠지만 무엇이건 지나친 것은 모자람만 못하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우리가 지나처 온 길과 시간에 만족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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