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과 사진/기타

뉴질랜드 여행5

by 장돌뱅이. 2013. 8. 16.

밤새 비가 창문과 지붕을 두드렸다. 빗소리는 부드럽게 잠을 깨웠고
다시 포근하게 잠을 재워주었다. 아내와 나는 빗소리를 좋아한다.
한옥집 앞마당에 왁자지껄하게 쏟아지는 빗소리나 토닥토닥 텐트의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 그 어느 것이나 감미롭다.
아파트에 살면서부터 빗소리는 듣기 힘든 소리가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는 그쳐 있었다.
 

 

호숫가로 나가 산책을 했다. 구름은 호수와 산, 산과 하늘의 경계를 지우며 가까이
내려와 있었다. 경계가 지워진 호수의 풍경이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으로 보였다.
바람이 없어 호수의 수면은 잔잔했다.
배 한척이 선명한 그림자를 물위에 드리우고 가만히 떠 있었다.
 

호숫가에 동상이 있었다. 1888년에 이곳을 여행한 최초의 유럽인 매킨넌 QUINTIN MACKINNON 의
동상이었다. 그가 동료 한사람과 함께 테아나우에서 밀포드사운드까지 걸어간 길이 오늘날 유명한
밀포드트랙 MILFORD TRACK이 되었다. 걷는 데만 4일 정도 걸리는 이 길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걷기(TRAMPING) 코스라 성수기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야영은 안 되고 오두막(HUT)에서만 자야하므로 예약이 쉽지 않다고 한다.
 

트램핑을 할 것은 아니지만 피요르드랜드국립공원 비지터센터에 가보았다.
단단하게 베낭짐을 꾸린 몇몇의 젊은이들이 길 떠나기에 앞서 정보를 확인하거나
신고를 하며 부산한 아침을 보내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주인장 사내가 준비한 아침을 먹었다.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주인은 과묵하고 조용한 성품의 사내였다. 애완견도 주인을 닮아서인지 으르렁거리거나
과도한 재롱을 피우지도 않았다. 그냥 우리 주위를 무심한 듯 어슬렁거렸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를 옮겼다. 테아나우의 유스호스텔 YOUTH HOSTEL(이하YHA)로 옮겼다.
이제부터 남은 여행의 숙소는 모두 YHA였다. 여행을 오기 전 미리 예약을 해둔 터였다.

아내는 YHA의 공동화장실과 공동욕실을 불만스러워 했다. 아내는 캠핑의 경험도 많은 터라
그런 것쯤은 별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으나 캠핑은 캠핑이고 여행은 여행이라는 주장을 TE ANAU내세웠다.

평소 소탈한 면이 있는데다 학창시절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어 적극적으로 긍정하진
않더라도 최소한 무덤덤하게 넘길 거로 생각했던 딸아이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리후레쉬 휴가를
떠나올 때 친구와 직장 동료들로부터 ‘부모님과 함께 가니 럭셔리한 숙소는 보장되겠다’는 부러움을
받아 잔뜩 기대를 하고 왔는데 이게 뭐냐는 투였다.

사실 나는 식구들에게 여행 전 “이번 여행은 YHA와 함께”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런데 아내와 딸은
지난 동남아 여행의 경험에 비추어 YHA가 무슨 HYATT 비슷한 걸로 생각했는지 반응이 없다가 눈앞에
닥쳐서야 둘이서 함께 공세로 나온 것이었다.
(이 날 이후 여행이 끝날 때까지 나는 밤마다 아내와 딸아이의 숙소에 대한 비아냥과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이 글이 근래 잠잠해져 가는 그 기세에 다시 불을 붙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곱단이님 나 반성 중!)
  

그러나 하루종일 숙소에서 보내는 여행이 아니므로 다행이었다.
YHA에 체크인만 하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우리는 곧 바로 ‘개그콘서트’ 수준의 낄낄거리기를
잘 하는 평소의 우리로 돌아갔다.




테아나우 시내에 있는 시네마에서 피요르드랜드에 관한 짤막한 영화를 보았다.
아이맥스나 3D가 아니어서 화면에 박진감은 없는, 평범한 뉴질랜드공원 안내 영화였다.

 

이 날은 하루 종일 테아나우에서 보내는 일정이었다.
원래 네댓 시간의 근처 트램핑을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높은 건물이 없고 차량 통행도 적은
테아나우 시내와 호숫가를 거닐며 느긋하게 보내는 쪽을 택하게 되었다.
극장을 나와 호숫가를 향해 걸었다. 호수를 끼고 도는 도로변에 트럭을 개조한 이동식 식당
“MAINLY SEAFOOD"가 보였다. 테이크아웃(뉴질랜드에서는 테이크어웨이)만 가능한 작은
식당이었지만 맛은 훌륭하였다. 이번 뉴질랜드 여행 중 가 본 식당 중에서 가장 훌륭한 맛을
지닌 곳이었다. 특히 피쉬앤칲스가 그랬다. 우리는 식당 옆 공원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점심을 먹고 호수 주변을 걸었다. 정해진 바 없는 걸음걸이가 한가하기 그지없는 시간이었다.
걷다가 힘들면 호숫가에 놓인 긴의자에 앉아 쉬었다. 아침에 비해 날은 많이 개었다.
때때로 더위마저 느껴졌다.
 

느긋한 오후를 보내고 저녁 무렵 호수 건너 반딧불 동굴로 가는 배를 탔다.
어린 시절 여름 저녁이면 집 울타리를 거쳐 처마 밑으로 혹은 개울 옆 수풀 속으로
무수한 반딧불이 날아다녔다. 하늘에 별들이 빽빽하게 달려있다면 반딧불은 날아다니는
별이고 밤의 꽃이었다. 고향인 서울 변두리에서도 흔하던 그 반디는 이제는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곤충이 되고 말았다. 먼 나라에 여행을 와서 반딧불이라는 말을 지나치지 못하고
호수를 건너가는 것은 그런 서정어린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이겠다.
배를 타고 가는 동안 구름이 몰려들더니 비가 쏟아졌다. 종잡기 힘든 날씨였다.
숙소 ‘고양이수염’ 의 주인은 지난 2주 동안은 비를 보지 못했다고 했는데......
 

 



하지만 동굴안을 둘러보는 관광이다 보니 날씨는 별무 상관이었다.
거대한 동굴 속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많은 물이 흐르고 있었고 안내자를 우리를
그 물에 놓인 조각배에 태우고 어두운 동굴 속으로 데리고 갔다.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 보이기 시작했다. 배가 멈춘 곳은 완벽한 어둠 속이었다.
안내자는 동굴벽을 따라 매어놓은 줄을 이용하여 배를 이끌었다. 천장과 벽면에
무수한 별들이 보였다. 감탄이 나왔지만 반디들이 싫어한다고 소리를 내지 말라고
하여 마음속으로만 부르짖었다.

한가지, 이곳의 반디는 우리나라의 반디와는 다른 종이었다. 날아다니지 않고 벽에
붙어있었다. 우리나라 반딧불이들이 짝을 만나기 위한 사랑의 불빛을 내는 것이라면
이곳의 반디불이는 낚시줄 FISHING LINE을 드리운 채 먹이를 유혹하는 불빛이라고 했다.
두 가지 다 자연의 법칙 따라 사는 모습이라 우열의 가름은 무의미 하지만
사랑의 몸살로 불빛을 내는 우리의 반딧불이 더 예쁘다고 생각했다. 
 

반딧불투어를 마치고 다시 문제의 숙소 YHA로 돌아왔다. 아내와 딸아이의 공격이 재개 되었다.
숙소의 식당에서 우리의 하루를 마감하는 일정인 맥주를 마시면서도 ‘즐거운’ 공격은 쉬지 않았다.
 

'여행과 사진 >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질랜드 여행7  (0) 2013.08.16
뉴질랜드 여행6  (0) 2013.08.16
뉴질랜드 여행4  (0) 2013.08.16
뉴질랜드 여행3  (0) 2013.08.16
딸아이의 배낭여행 3.  (0) 2012.04.2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