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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기타

뉴질랜드 여행6

by 장돌뱅이. 2013. 8. 16.

테아나우를 떠나 와나카 WANAKA 로 향했다.
호수가 있는 와나카까지는 230여 킬로미터로 차로는 3시간 정도를 예상했다.
고속도로라 해도 왕복2차선의 좁은 길이었다. 게다가 개울이나 강을 건너는
모든 다리는 1차선의 일방통행의 길이었다.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길을
최소화 한 것이라고 했다. 가끔씩 양떼가 길을 막아 교통이 지체된다고 들었다.
우리는 은근히 그런 행운과 만나기를 희망했다. 뉴질랜드에 와서 양에게 부쩍
친근감이 더해진 탓이다. 좀 더 가까이에서 놈들을 보고 싶고 손을 뻗어 만져보고 싶었다.
수백 마리의 양들이 길을 건너는 모습도 장관일 것 같았다. 그러나 길가의 풀밭에 고정된
석상처럼 서서 조용히 풀을 뜯는 양들만 보일 뿐 도로를 건너는 무리들은 만나지 못했다.
대신에 여자 목동들의 인도를 받으며 우리 차를 마주보며 걸어오는 소떼와 만날 수 있었다.
 

 

 

날씨는 변덕스러웠다. 처음엔 구름이 드리운 찌푸린 날씨더니 차를 북쪽으로 향하고부터는
차츰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햇살이 비추는 초여름의 뉴질랜드 남섬은 어디를 가든
아름다웠다. 초록의 산과 들에 꽃이 지천이었다.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투명했다.
강물은 맑았고 호수는 푸르렀다.
 

그러나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화했다고 하지만 포장도로는 어쩔 수 없이 속도를 위한
것이었다. 길 위에는 자동차에 의해 ‘살해된’ 작은 짐승들의 시체가 매우 자주 눈에 띄었다.

로드킬 ROADKILL 이라고 하던가?
황윤이란 감독이 만든 로드킬에 관한 다큐영화 “어느 날 길 위에서(ONE DAY ON THE ROAD)” 를
본 적이 있다. 도로의 최소화라는 뉴질랜드만큼의 자연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는커녕 시행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중복 혹은 과잉 투자까지 서슴치 않은 우리나라의 도로는 길을 품고 살아가는
생명들에게 무척 폭력적으로 보였다.

영화 포스터의 문구처럼 인간의 길이기에 앞서 그곳은 짐승들의 집이었다. 그러니 어쩌라는 거냐고
묻는다면 잠시 대답이 궁색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를 인식하는 것과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것이다. 

  
림자처럼 검고 발걸음 소리 없는 물체 하나가
   갑자기 도로로 뛰어들었다.
   급히 차를 잡아당겼지만
   속도는 강제로 브레이크를 밀고 나아갔다.
   차는 작은 돌멩이 하나 밟는 것만큼도 덜컹거리지 않았으나
   무언가 부드러운 것이 타이어에 스며든 것 같았다.
   얼른 싸이드미러를 보니 도로 한가운데에
   털목도리 같은 것이 떨어져 있었다.
   야생동물을 잡아먹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호랑이나 사자의 이빨과 발톱이 아니라

   잇몸처럼 부드러운 타이어라는 걸 알 리 없는 어린 고양이였다.
   승차감이 좋은 승용차 타이어의 완충장치는
   물컹거리는 뭉개짐을 표나지 않게 삼켜버린 것이다.
   씹지 않아도 혀에서 살살 녹는다는
   어느 소문난 고깃집의 생갈비처럼 부드러운 육질의 느낌이
   잠깐 타이어를 통해 내 몸으로 올라왔다.
   부드럽게 터진 죽음을 뚫고
   그 느낌은 내 몸 구석구석을 핧으며
   쫄깃쫄깃한 맛을 오랫동안 음미하고 있었다.
   음각무늬 속에 낀 핏자국으로 입맛을 다시며
   타이어는 식욕을 마저 채우려는 듯 속도를 더 내었다.

                               -김기택의 시, “고양이 죽이기”-

꼭 로드킬 때문은 아니지만 나는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일단 자동차를 갖지 않을
생각이다. 자동차는 이미 편리한 도구의 의미를 넘어서 우리의 생활양식을 지배하는 존재가 되었다.
거대한 권력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자동차는 대량 소비를 촉진 시켰고 도로와 마을의 형태를
변화 시켰다. 그리고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도 바꾸어 놓았다.
어떨 때는 사람들이 자동차를 섬기며 사는 것 같기도 하다. 차는 우리를 먼 곳까지 손쉽게 데려다
주지만 그런 이동이 지역간의 활발한 소통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도로 위에는 차량의 숫자만큼의
단절된 공간이 있을 뿐이다. 이십 년 전 어느 저녁에 담배를 끊었듯, 내 이놈과 결별을 할 작정이다.
세상엔 어느 운동화 회사의 선전 문구가 필요한 일이 제법 있다.
“JUST DO IT!”
 

 

와나카에서 점심을 먹고 우리는 마운틴 아스피링 MT.ASPIRING 으로 향했다.
아스피링산의 롭로이 트랙 ROB ROY TRACK이 목표였다. 트랙의 끝에 빙하와
절벽과 폭포가 만들어내는 절경이 있다고 했다.

와나카를 벗어나 마투키투키 MATUKITUKI 강변길로 들어서자 비포장길이 이어졌다.
나중에 알았지만 보험약관에 이 길은 보험에서 제외가 되는 길이었다. 비포장이었을뿐
험한 길은 아니었다. 한 시간 가까이 들어가자 작은 개울 주변에 사람들이 차를 세우고
서성거리고 있었다. 롭로이트랙에 가자면 그 지점을 넘어 더 안쪽에 잇는 몇 개의 개울을
지나야 하는데 만약에 비가 쏟아져 물이 불어나면 돌아 나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늘엔 해가 드러나 있어 당장엔 비가 올 것 같지 않았지만 산행 3-4시간 동안의 변화는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주변엔 숙박시설이나 대피소는커녕 인가도 하나 없었다. 우리도
잠시 망설여야 했다. 불안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차를 몰고 개울을 건넜다.
차를 세워두고 걷기에는 길이 너무 멀었다. 트레일 시작 지점까지 무려 10킬로미터나
남아있었다. 개울은 폭이 작았지만 바닥이 불규칙했다. 비가 오면 금방 물이 불어나
차가 잠길 것 같았다. 특히 우리 차는 바닥이 얕은 승용차였다. 빗방울이 느껴지면 바로
되돌아 나오기로 했다. 서너 개의 개울을 건너 도로의 끝에 닿았다.
주차장이 롭로이트랙의 시작인 셈이었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 터무니없는 일로 아내와 잠시 다툼이 있었다.
나의 여행기를 읽은 사람들이 더러 나와 아내가 다투는 모습이 상상이 안 된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아내는 나의 글에 대해 ‘미필적 고의’의 과장이나 허위가 있다고,
진실은 자신만이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의 글에 거짓은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글로 쓰지 않은 더 많은 일이 있을 뿐이다.^^.

아내와 다툼은 늘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하긴 남북의 통일이라던가. 
중동전 종식 방안 같은 거창한 주제를 두고 싸우는 부부는 없을 것이다.
일테면 롭로이트랙에서처럼 늘 이런 식이다.

나   :“배낭 이리 줘.”
아내:“괜찮아 내가 메고 갈게.”
나   :“그냥 이리 줘. 산길 올라야 돼.”
아내:“내가 맨다니깐!”
나   :“아! 거 달라는데 왜 자꾸 고집을 피워.”
아내:“고집은 누가 피운다고 그래. 메고 가다 힘들면 줄께.”
나   :“힘들다고 느끼면 늦어. 그냥 줘.”
아내:“괜찮다니깐!”,
나   :“(슬슬 짜증이 나면서)거참 희한하네. 자기 생각해서 달라는데...”
아내:“(마지못해 배낭을 건네며 기어코 불을 붙인다.) 두 번만 생각했다간 어쩌구저쩌구”

잠깐 사이에 급변한 ‘국제정세’의 분위기를 미처 파악하지 못한 딸아이가 평소처럼
장난을 걸려고 접근했다가 머쓱해져서 저만치 앞서 갔다.

돌이켜보면 다툴 일이 전혀 아니다. 이런 일로 잠시나마 냉전에 돌입했다는 게
한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늘 이런 식의 충돌을 반복하며 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집에서는 좀처럼 화해모드를 먼저 내비치지 않는 아내가
여행 중에는 냉전을 오래 끌지 않고 자발적 수습모드로 돌아선다는 점이다.
 

 

 

롭로이트랙은 아름다운 길이었다. 초록이 지천인 산기슭에는 흰 양들이 자유롭게
흩어져 있었다. 겁이 많고 순하기 그지없는 녀석들은 산길을 오르는 우리들을 의식
하며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몰려 다녔다. 초록의 능선 넘어 멀리 산꼭대기에는 흰눈이 보였다.
아내와의 다툼 뒤에 오는 겸연쩍음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노래를 부르며 산을 올랐을 것이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에 파랄 거여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힌 속에서
파아란 하늘 보며 자라니까요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겨울엔 겨울엔 하얄 거여요
산도 들도 지붕도 하얀 눈으로  하얗게 하얗게 덮인 속에서
께끗한 마음으로 자라니까요.♬
 

화창하던 날씨가 산을 오를수록 구름이 몰려들더니 목표 지점 30분을 남기고 빗방울을 떨구었다.
한두 방울이지만 하늘에 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출발할 때 마음 먹었던 대로 돌아서기로 했다.
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개울을 건너야 했다. 이미 1시간 반정도를 올라온 터라 내려가는
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트랙 초입의 계곡을 건너는 출렁다리를 지나자 다시 하늘이 개어오기 시작했다.
이런! 아쉽지만 그렇다고 다시 올라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양들이 있는 산기슭을 본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딸아이는 양들을 따라다니며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그런데 차를 몰고 개울을 건너 산을 빠져나왔을 무렵 다시 먹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비가 쏟아졌다. 중도포기를 하지 않고 마지막 30분을 올라 빙하를 구경하고
내려왔다면 개울을 건너 무사히 산을 빠져 나올 수 있었을까? 장담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조금 전까지 성급한 판단을 했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현명한 판단을
했다는 자부심이 생겨났다. 자부심은 빗줄기가 굵어질수록 커져갔다.
한번 시작한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저녁까지 계속됐다.
 

숙소는 와나카의 YHA.
짐을 풀자 이번 여행의 최고 아킬레스건인 YHA(를 결정한 나)를 비아냥거리는
아내와 딸아이의 공세가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롭로이트랙에서 현명한 판단력으로
‘회군’을 결정하여 식구들을 안전하게 귀가시킨 공을 감춘 채 말없이 식사 준비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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