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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기타

뉴질랜드 여행8

by 장돌뱅이. 2013. 8. 16.

 

아침에 일어나 날씨부터 살폈다.
마운트 쿡 MT. COOK의 후커 밸리 트레일 HOOKER VALLEY TRAIL을
다녀와야 하므로 날씨가 중요했다. 다행히 비는 그쳐 있었다. 하지만
두터운 구름이 낮게 내려와 있었다. 숙소 뒤편의 산은 구름에 잠긴 채
산자락만 드러내 보였다.

YHA 리셉션의 직원은 오늘은 개일 것이라고 희망적인 말을 하다가 끝에
“BUT WHO KNOWS?” 라고 덧붙였다. 하긴 날씨가 인간의 소관일 리 없다.
한국에서부터 먼 길을 왔으므로 맑은 날씨는 YHA의 책임이라고 했더니
“아하!” 하며 유쾌하게 웃는다.

빼꼼하게 밝아오는 동쪽 하늘에 기대를 걸고 출발을 늦추기로 했다.
왕복 네 시간 정도의 트레일이므로 아침부터 서둘 필요가 없었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천천히 준비를 하는 동안 다행스럽게도 날이 점점
밝아왔다. 드디어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배낭을 맸다. 후커 밸리 트레일은 고도의 변화가 크지 않은 평탄한
코스이다. 종착점은 후커 글래이셔 터미널 레이크 HOOKER GLACIER TERMINAL LAKE.
트레일 들머리의 왼쪽으로는, 처음엔 우리가 마운트쿡으로 착각했던  높이 3151미터의
마운트 세프톤 MT. SEFTON(3151M)이 웅장하게 버티고 서 있다. 세프톤 산 정상의 구름이
햇살에 밀려 견고했던 결속을 풀고 점점 밀려나고 있었다.
 

 

 

 

 

 

 

 

길은 노란 들꽃 사이를 지나 탁한 호숫가를 돌아서 출렁다리로 개울을 건너고,
다시 초록의 들길로 이어졌다. 장수처럼 우뚝한 산봉우리들은 길을 걷는 내내 어느
곳으로 고개를 돌려도 탄성이 나오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며 우리를 따라왔다.
 

 

 

 

 

트레일의 마지막 돌너덜길을 지나니 빙하가 떠 있는 호수에 다다랐다.
호수 옆에서 우리는 높이 3,754미터, 뉴질랜드에서 제일 높다는 마운트쿡을
바라보았다. 산 이름인 쿡은 뉴질랜드를 탐험한 영국인의 이름을 붙인 것이고
원래 원주민들은 ‘구름봉우리’라는 뜻의 아오라키 AO-RAKI 라고 불렀다고 한다.
산은 위엄을 부리듯 구름을 불러 자신을 꽁꽁 가린 채 모습을 드러내 보이지 않았다.
 

온전한 아오라키의 모습을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는 기다려보기로 했다. 딸아이는 아예 배낭을 베고 길게 누워 산을 응시했다.
날씨는 흐드러진 우리나라의 봄날이었다. 너덜겅 위로 퍼붓는 햇살은 눈부시고
강렬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청량한 기운의 공기는 깊은 적막을 품고 우리 곁에
조용히 머물렀다. 기다리는 동안 몸의 안팎이 산 기운에 정갈하게 씻기고
찌든 노폐물들이 짱짱하게 말라 증발이라도 한 듯 몸이 개운해져 왔다.
 

한 시간 넘게 기다렸어도 산은 끝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오래 있을수록 기쁜 시간이었지만 이쯤해서 어쩔 수 없이 돌아 나와야 했다.

 

 

 

 

 

산이 조금이나마 모습을 드러낸 것은 트레일 초입까지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이었다.
딸아이의 익살에 낄낄 거리고 짓궂은 장난에 깔깔거리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더니
뽀족한 산봉우리가 구름 위로 우뚝 솟아 있었다.
간결하면서도 도도한 위엄이 서린 산이었다.
 

 

   산이 눈에 들어갔을 때?

   묽은 탄산수소나트륨 용액으로 씻은 다음
   다량의 물로 세척한다

   과학실 창밖으로 오래도록 먼 산을 바라본다

   눈에 산이 들이칠 때
   머리 처박는 잡목 숲 마른 가지를
   하얀 억새꽃으로 쓰다듬는다
   간 아래 실핏줄의 계곡마다 피멍이 들면
   생풀도 짓찧어 마시고 칡뿌리도 캐먹는다
   새알을 훔쳐 눈망울도 갈아끼운다
   부화가 되기 전에 둥우리를 틀 만한
   푸른 가지를 점찍어둔다

   눈에 산이 들어와 앉을 때
   산정의 하얀 눈이나 차운 바람으로 씻은 다음
   묽은 구름을 안대처럼 두른다
   다량의 새소리로 온몸을 닦는다
                      -이정록의 시,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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