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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기타

뉴질랜드 여행10

by 장돌뱅이. 2013. 8. 16.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거뭇거뭇한 새벽이었다.
2시간(156KM) 정도의 거리에 있는 크라이스트처치 CHRISTCHURCH 돌아보고
공항으로 가기 위해서 좀 서둘러야 했다.

원래는 느긋하게 쉬다가 공항으로 직행하여 이번 여행의 시점이자 마지막
기착지인 오클랜드로 가는 비행기를 탈 생각이었다. 그런데 전날 저녁에 잠시
크라이스트처치를 둘러보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모두가 찬성을 했다.
해글리공원 HAGLY PARK을 산책하고 난 뒤 성당 주변 광장에서 식사를 하고
대성당을 둘러보는 것으로 짧은 크라이스트처치의 일정을 잡았다.

얼마 남지 않은 부식을 정리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아직 새 것은 누구나
필요한 사람이 써도 좋다는 꼬리표를 달아 냉장고에 넣었다. YHA는 어느
곳이나 주방 시설과 식당이 있어 편리했다. 이제부터 한국으로 돌아가기까지
이틀은 사먹기로 한 것이다.

얼마 크지 않은 부피의 짐만 정리했을 뿐인데 기분이 한결 깔끔해졌다.
페달을 밟는 느낌도 가벼웠다. 높은 지대라 새벽공기는 몹시 차가웠다.
동이 터오면서 도로 주변의 풍경들도 깨어나기 시작했다. 산허리에는
걸쳐있는 구름과 골짜기에 드리운 골안개가 신비로운 아침 풍경을 만들어냈다.
끝에 대도시가 있다는 상상을 할 수 없을 만큼 길은 첩첩산중을 지났다.

해글리공원은 매우 넓다. 외곽 경계선을 따라 도는데 서너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아름드리나무들이 만드는 짙은 녹음 사이로 시냇물 같은 에이번 강 AVON RIVER이
흐르고 식물원, 미술관, 박물관, 운동장 등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두 시간여를 달려온 몸도 풀 겸 특별한 목적지 없이 발밤발밤 아침산책을 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조용했다. 맑고 깨끗한 기운이 곳곳에 가득했다.

공원에서 나와 대성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네비가 가리키는 성당으로 향하는 도로 곳곳이 막혀 있었다.
이곳저곳으로 우회를 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2011년 2월에 발생한 강진의
후유증이었다. 10개월가량이 자났으므로 많이 복구가 되었으리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도심으로 향하는 도로 곳곳이 폐쇄되어 있었고 건설장비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아직 한쪽이 무너진 채로 서 있는 건물도 있고 그 아래 상점들은
문이 닫힌지 오래되어 보였다. 주차를 시키고 걸어서가려고 해도 자꾸 막다른 길이
나왔다. 사람들이 성당에 접근하는 길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발걸음을 옮기다 우리는
포기를 했다. 아득바득 찾아간다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컨테이너 가건물로 지어진 한 카페에서 간단하게 브런치를 먹었다.
주변의 상가들도 모두 컨테니너 가건물이었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고
180여명의 생명이 스러진 참사 뒤에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남은
사람은 또 밥을 먹고 생활을 이어나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일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직후 크라이스트처치에 또 한 번의 강진이 있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얼마나 놀랐을까!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식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향했다. 나쁜 일을 당한 남의 집안을 구경하듯
기웃거리는 것이 찜찜했다.

차를 반납하고 짐을 부쳤다. 시간이 많이 남아 공항 근처의 국제남극센터
INTERNATIONAL ANTARTIC CENTRE 로 갔다. 남극의 강풍 체험이나 3D 영화 등이
좋다는 여행 책자의 안내가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별로’인 곳이었다.
해글리공원에서 좀 더 시간을 보내지 앉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왔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인 YHA로 향했다.
오클랜드에는 두 개의 YHA가 있다. 하나는 AUCKLAND INTERNATIONAL YHA이고
하나는 YHA CITY이다. 위치도 비슷한 곳에 있다.

우리가 묵게 될 곳은 INTERNATIONAL이었다. 딸아이는 어제 저녁부터 오클랜드의
숙소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이제까지의 여행 경험으로 보건대 아빠가 적어도
여행의 마지막에는 뭔가 깜짝쇼로 우리를 놀라게 할 것!“ 이라는 믿음도 표하며
고난이도로 나를 압박했다. 아니라고 오클랜드에서도 YHA라고 해도 믿지 않았다.

그 때문에 공항에서 택시 운전수에게 YHA로 가자고 말하며 딸아이의 눈치가 보였다.
고개를 돌리자 뒷좌석의 딸아이는 진짜야? 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언제 여행책자 속의 소개 문구를 읽어두었던 모양이다. 오클랜드의 YHA는
특별히 ’인터내셔널‘이라고 하니 틀릴 것이라고 다른 YHA가 있는데 굳이 ’인터내셔널‘을
택할 걸 보면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딸아이에게 말했다. 내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압박을
가하는 의도가 분명했다. 사실 여행안내서의 인터내셔널 YHA에 대한 평은 나쁘지 않았다.
옮겨보면 이렇다. 

  
CLEAN AND BRIGHTLY PAINTED, THUS 170-BED YHA HAS A FRIENDLY VIBE,
   GOOD SECURITY, A GAMES ROOM AND A LOTS OF LOCKERS.
                                                             
-LONELY PLANET -

   뉴질랜드 관광청에서 인증하는 퀄마크의 별 다섯개에 빛나는 호스텔. 비교적
최근에
   YHA에 등록된 곳으로, 시설이나 서비스, 위치 모두 나무랄 데가 없다.
3층 건물에
   168개의 침상을 갖추고 있으며, 건물 전체가 와이파이 존이어서
룸에서 무선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 24시간 리셉션을 운영하고 있으며,
체크 아웃 후에는 짐 보관
   서비스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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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 같은 방으로 주시라. 안 그러면 가족들이 나를 쥐어짤 것이다."
내 말에 YHA 리셉션의 직원이 웃으며 키를 내주었다.
방으로 들어서자 ‘나는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으로 아내와
딸아이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방은 이제까지 경험한 YHA 중에서 가장 작았다. 지금까진 그래도 외진
‘촌’으로 전전했기 때문에 넓이에서는 좀 후했으나 땅값 비싼 도시에 오니
그마저도 옹색하기 그지없었다. 텔레비전에서 가끔 보던 우리나라의
고시원 수준이었다. 딸아이의 첫 마디는 기발했다.
“....아마 안네프랭크가 이런 곳에서 일기를 썼을 거야.... ”


* 인터넷에서 본 노르웨이의 감옥

그러더니 인터넷으로 한 기사를 검색하여 내게 보라고 내밀었다. 최근에 개장한
노르웨이의 한 감옥에 관한 내용이었다. 수감자들의 인권을 최대한 배려하여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지었다는 감옥은 YHA에 비하면 가히 특급호텔 수준이었다.

방마다 최신형 텔레비전과 샤워실이 있고 도서관, 리코딩 스튜디오, 강의실,
최첨단 시설의 체육관까지....
2011년 7월 노르웨이에서 77명을 살해하여 충격을 주었던 엽기적 살인범도
이곳에 수용된다고 했다. 딸아이의 ‘사이버’ 공격에 아내도 가세했다.
“우리가 왜 뉴질랜드에 와서 살인범보다 못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걸까?”
곤경에서 빠져나가는 방법은 빨리 거리로 나가는 것뿐이었다. ^^



그러나 거리에서도 두 여자의 공격은 쉬지 않았다.
호텔 앞을 지날 때마다
“오클랜드에도 크라운호텔이 있구나!”
“어머! 힐튼 호텔도 있네.”
"....."

오클랜드는 전형적인 대도시의 모습이었다.
단 며칠이지만 한적한 곳을 떠돌다온 탓인지 혼잡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거리에선 놀랍게도 한국인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한국어 간판도 흔했다.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한국말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대부분 젊은 학생들이었다. 아마 영어공부를 하러 온 것 같았다. 공항에서
타고 온 피지 FIJI 출신의 택시 운전수가 이야기를 나누다 나에게 영어를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었다. 학교에서 배웠다고 하니 한국 학교에서도 영어를
가르치느냐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슨 뜻인가 어이가 없기도 하여 물론 그렇다! 고
힘주어 말했더니 그런데 왜 한국인들이 영어를 배우러 이곳에 많이 오느냐고 되물었다.
중심가인 퀸즈스트리트 QUEENS STREET에 가면 중국인과 함께 가장 많다는 것이었다.
영어.....우리 사회에서 그 이국의 언어가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를 그에게 자세히
설명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자리였고 또 그러기에는 내 영어가 너무 짧았다.
그저 나처럼 ‘깨진 영어’가 아닌 제대로 된 영어를 공부하러 오지 않았겠느냐고
말해줄 수 있을 뿐이었다.



거리를 돌아다니다 저녁을 먹은 곳은 앵거스 스테이크하우스 ANGUS STEAK
HOUSE (8 FORT LANE) 였다. 제법 이름이 난 곳이었다. 손님들이 진열대의
고기를 보며 고를 수 있고 스테이크 소스와 요리 정도를 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인 운영방식이 좀 무지막지했다. 일인당 무조건 한 가지를
주문해야 한다고 했다. 그건 괜찮았다. 맛도 괜찮았다. 문제는 일률적으로
정해놓은 양이었다. 고기 꽤나 먹는다는 나와 딸아이에게도 앵거스의 일인분은
둘이서 먹어도 남을 만큼 양이 너무 많았다. 우리는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미련한 사명감으로 사투를 벌였으나 끝내 반 정도를 남기고 말았다. 손님에 따라
나누어 먹는 것을 허용해도 충분히 이익을 남길만한 식당인데 왜 그리 악착 같은
지 아쉬웠다. 하긴 그걸 다 먹고 또 다른 것을 주문하는 옆 좌석의 사람들을 보았으니
양에 대해 함부로 말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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