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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다시 그곳, 요세미티 YOSEMITE!

by 장돌뱅이. 2013. 8. 22.

8시간의 운전 끝에 요세미티 국립공원 남쪽 입구에 가까이 있는 작은 마을
피쉬캠프 FISH CAMP에 도착했다. 호수나 바다 근처가 아닌 산중 마을로선
좀 이상한 이름이었다. 상점과 우체국, 식당 등의 건물 몇 개가 성의(?) 없이
늘어서 있는 41번 도로 위의 작은 거리가 전부였다.


*위 사진 : 테나야 롯지

하룻밤을 묵어갈 테나야롯지 TENAYA LODGE는 도로에서 살짝 벗어난 숲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성수기에 가까운 데다가 주말이라 요세미티 국립공원내의
숙소는 여유가 없었다.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공원 입구에서 4마일 정도 떨어진
이곳이었다. 외진 곳이지만 테나야 롯지의 규모는 250개의 방을 가질 정도로 컸고
식당과 부대시설을 비롯해 직원들의 서비스도 준수했다.

계획상으로는 체크인 후 한 한 시간 정도 더 차를 몰고 들어가 공원 내
글래셔 포인트 GLACIER POINT를 다녀와야 했다. 해질녘에 그곳에서 보는 전망이
좋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래간만에 장거리 운전 탓인지 아니면
출발 전날 저녁에 이번 여행의 ‘출정식’을 빌미로 마신 와인이 과했던지 아내도
나도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우리는 해마다 다른 나이 체감을 핑계로 숙소에 주저앉고 말았다.
대신에 숙소의 주변을 가볍게 산책했다. 특별히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건장하게 치솟은 나무들로 우거진 숲의 풍경과 냄새가 여유롭고 평화로운 저녁을
느끼게 해주었다.

이튿날 아침 하늘은 파란 원색이었다.
바람도 없고 기온도 선선하여 여행자에게 더 할 나위 없는 날씨였다. 우리는 어제
달려온 41번 도로를 따라 북상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립공원 남쪽게이트에
도착했다. 입장료를 내려고 지갑을 들자 공원직원이 브로셔와 지도를 건네며
경쾌하게 소리쳤다.
“프리! 투데이!”
국립공원주간에는 입장료가 면제된다는 것이다. 내 인생에 드문 공짜의 ‘잭팟’이라
여행 분위기는 고조되었다. 아내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공원으로 들어갔다.

하늘을 찌르는 나무들 사이로 난 길은 아침의 싱싱한 기운을 머금고
지돌이, 안돌이로 휘어졌다. 요세미티는 바야흐로 봄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뭇가지 끝마다 연한 연두색 새잎들이 무수한 별처럼 반짝였다. 빽빽한 숲길 끝에
느닷없이 나타나기도 하는 개활지에는 초록의 풀들이 부드러운 비단처럼 깔려있었다.
숲에서 나온 맑은 개울물은 맑은 소리를 내며 들판을 흐르다 다시 숲으로 흘러 들어갔다.
사슴 무리들이 느릿한 걸음으로 찻길 옆으로 지나가 우리를 흥분시키기도 했다.
고도 2200미터의 글래셔 포인트로 다가 갈수록 길가에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눈에 띄었다.
길 끝에 보이는 산봉우리에는 한 겨울처럼 눈이 남아 있기도 했다. 아내는 미처 기대하지
않았던 눈 풍경에 보너스를 받은 것처럼 흥겨워했다.


*위 사진 : 글래셔 포인트에서 내려다 본 요세미티 밸리

글래셔 포인트는 요세미티 여행의 프롤로그이거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지점이다.
요세미티의 심장부에 해당하는 요세미티 밸리 YOSEMITE VALLEY 로 진입하기 전 주요 지점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이곳에서 요세미티에 대한 상상과 인식을 키울 수도 있고 여행을 마치고
공원을 떠나기 전 다녀온 곳 모두를 일일이 확인하며 정리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 사진 : 글래서 포인트에서 본 버널VERNAL 폭포(아래쪽)와 네바다 NEVADA 폭포(위쪽).
              맨 아래 사진은 2008년 9월에 찍은 것으로 물줄기가 거의 말라 있다.
              2008년에는 버널폭포까지 직접 갔었으나 이번에는 가지 않았다.

4년 전 아내와 나는 요세미티를 다녀간 적이 있다. 그때 글래셔 포인트는 여행의 마지막 순서였다.
이번에는 첫 기착지였다. 한번의 경험이었지만 공원의 곳곳이 인상 깊이 박혀있던 터라
글래서 포인트에서 보이는 풍경은 여전히 눈에 익었다. 웅장한 화강암 바위의 스카이라인과
깊고 짙은 계곡. 이번에 확실히 다른 점은 폭포였다. 예전엔 가을이라 물이 거의 말라 있을 시기였다.
개울은 바닥을 드러내거나 흐르기를 멈추고 고여 있었고 폭포도 역시 물줄기가 끊기거나 는개처럼
휘날릴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겨우내 쌓인 눈이 녹으며 만들어진다는 폭포는 곳곳에서 굵은 물줄기를
내뿜었다. 바람을 타고 폭포 소리가 거대한 공룡의 울부짖음처럼 들려왔다. 통설대로 글래셔
포인트는 오후나 저녁 무렵에 와야 했다. 특히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더욱 그랬다.
오전에는 해가 역광으로 비춰서 풍경을 제대로 잡아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위 사진 : 요세미티 밸리 여정의 개념도(출처:국립공원홈페이지).

글래셔 포인트 이후의 일정은 다시 한 시간 정도 차를 몰고 들어가야하는 요세미티 밸리 일대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사진과 함께 짧은 설명을 붙여보면 다음과 같다.


*위 사진 : 터널뷰에서 본 요세미티 밸리의 풍경

요세미티 밸리로 가기 위해선 GLACIER POINT ROAD를 돌아나와 다시 41번 도로를 타고
북상을 해야 한다. 계곡으로 진입하기 전 관문과 같은 터널을 통과하게 된다. 터널을 벗어
나자마자 유명한 터널뷰 TUNNEL VIEW 가 있다. 글래셔포인트와는 또 다른 각도에서
요세미티 밸리를 조망하는 곳이다. 위 사진의 왼쪽으로 보이는 거대한 바위 절벽은
해발 2300미터의 엘까삐딴 EL CAPITAN으로 지상에 노출된 바위 덩어리 하나로는 세계
최대라고 한다. 오른쪽의 폭포는 브라이들 베일 BRIDALVEIL 폭포이다.

브라이들베일 폭포는(위 사진) 터널뷰를 지나면 바로 만나게 된다.
주차장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브라이들베일 폭포는 그러나 이곳에서 접근하면 물안개가 날려 제대로 보기 힘들다.
요세미티 밸리 드라이브를 따라 돌다보면 좀더 완전한 폭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리본폭포 RIBBON FALL(위 사진)는 엘까피딴 서쪽에 있다.
바위와 숲에 가리고 거리가 멀어 잘 실감이
나질 않지만  세계 제 8위의 높이를 가졌다고 한다.


*위 사진 : 캐씨드럴 비치에서 점심식사.

머세드강 MERCED RIVER을 사이에 두고 엘까삐딴을 마주하는 캐씨드랄 비치 CATHERAL BEACH에서
점심을 먹었다. 계획에 없던 곳이나 우연히 샛길로 들어섰다가 풍경이 너무 좋아 비닐판을 깔고 앉아
집에서 준비해간 삶은 고구마와 과일을 먹었다. 강이라지만 폭은 좁고 물은 얕았다. 아내는 신을 벗고
개울을 건너 강 가운데에 있는 모래톱을 다녀왔다. 발이 아플 정도로 물이 차다고 했다.
풍경에 빠져 버너를 꺼내 물을 데워 커피까지 한 잔 하며 해찰을 부렸다.


*위 사진 : 미러레이크와 하프돔. 맨 위 사진은 2008년 사진으로 물이 완전히 말라있음을 볼 수 있다.
              맨 아래 사진은 멀리 서 본 하프돔의 전경이다.

하프돔(위 사진)의 발치에 있어 물속에 하프돔의 모습을 담아낸다는 미러 레이크 MIRROR LAKE는
지난 번 여행에서도 가본 곳이었다. 지난 번에는 물이 완전히 말라 이름에 값하는 풍경을
볼 수 없었고 이번에는 물이 세차게 흘러 역시 ‘거울’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때나 이제나 30여 분의 발품이 후회는 없는 곳이었다.


*위 사진 : 글래셔 포인트에서 본 요세미티 폭포

드디어 요세미티 폭포 YOSEMITE FALL이다. 요세미티 폭포는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윗 폭포 UPPER FALL(435미터)와 중간부 MIDDLE CASCADES(205미터), 그리고 아래폭포
LOWER FALL(98미터)이다. 전체를 다 합치면 미국에서 가장 높은 폭포가 되고 세계에서는
다섯 번째로 높은 폭포가 된다고 한다.


*위 사진 : 이곳저곳에서 바라본 요세미티 폭포. 맨 아래 사진은 아래폭포의 모습이다.

요세미티의 다른 폭포와 마찬가지로 요세미티 폭포를 이루는 물의 근원은 산 위쪽에 겨우내
쌓인 눈이다. 봄이 되면서 눈이 녹으면 곳곳에 폭포를 만드는 것이다. 밸리에서 보면 대부분의
폭포는 계곡의 일부가 아니라 산꼭대기에서 떨어지는 기이한 형상을 보여준다.
요세미티 폭포는 멀리서보면 윗폭포만 보이고 폭포에 다가서서 보면 아랫폭포만 보인다.
폭포의 위용를 가까이서 느끼기 위해서는 폭포의 꼭대기까지까지 올라가는 트레일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촉박한 일정과 아내의 체력을 고려하여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번엔  누구나 다녀가는
아래폭포까지만 가기로 했다. 아래폭포까지는 찻길에서 걸어 10분 정도면 충분히 닿는 거리지만
그래도 감동은 충분했다.

길 초입에서 윗폭포와 아래폭포를 합친 전경이 눈에 들어왔을 때 왠지 가슴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아내도 그랬다고 했다. 거대함과 기백이 넘치면서도 엄숙하고, 단순하면서도 정교한
폭포는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위엄이 있었다. 왜 이 폭포에 요세미티의 대표 이름을 붙여주었는지
마주하는 순간에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위 사진 : 드라이브 중 만나게 되는 밸리의 풍경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으로 밸리 드라이브를 따라 요세미티 밸리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머세드강의 남과 북쪽을 시계반대 방향으로 돌아보게 되는 이 길은 이제까지 보아왔던
바위와 폭포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여 주었다.

해가 설핏 해지면서 강 주변의 풀밭에는 사슴들이 물려나와 풀을 뜯었다.
지나가는 차들과 구경하는 사람들에 녀석들은 무심했다. 자신들의 일에만 열중했다.
자연과 인간이 평화롭게 그리고 평등하게 공존하는 모습이었다. 곰에 대비하여 차안에
먹을 것을 두지 말라는 숙소 직원의 충고도 염려나 공포가 아닌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기
위한 최소한도의 배려일 것이다.
야성을 잃은 자연은 자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날 숙소는 폭포 바로 아래에 잇는 요세미티 롯지 YOSEMITE LODGE AT THE FALL 였다.
5월1일 노동절 휴일을 4월30일과 바꾸어 쉬면서 이번 여행이 가능했고 또 이 숙소에도 묵을
수 있게 되었다. 일요일 저녁에는 아직 빈 방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저녁을 먹고 차를 끓여 숙소 베란다에 아내와 앉아서 어둠이 피어오르는 숲을 바라보았다.
밤이 깊어갈수록 폭포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4년 전 여행에서 요세미티의 정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면 이번엔 폭포의 소리와 움직임으로 계곡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을
만끽한 여행이었다.

   땅을 박차고 하늘을 뒤흔드는 천둥소리.            蹴地掀天聲如雷.
  
바다의 신이 일어나 춤추며 노니나니                海若起舞相徘徊
  
처음 물 나온 곳이 장대하고 우뚝함을 알겠도다. 固知出處壯且魁
  
푸르른 만 길 낭떠러지 어찌 저리 웅장한지!       蒼崖萬丈何雄哉
                                 -매월당 김시습의 시, 표연(瓢淵) 중에서-

                                   *표연은 “박연(朴淵)”(폭포)의 다른 이름

이튿날 아침 요세미티를 떠나기 전 다시 폭포에 가보기로 했다. 폭포와 요세미티에 대한 우리만의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다시 보는 풍경인데도 입구에서 가슴속에선 여전히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내려오는 길에 한 사내가 아내와 나의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덕분에 모처럼 여행 중에 아내와 찍은 사진이 남게 되었다.

(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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