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은 태평양 연안의 북쪽 끝에 있다.
샌디에고에서 시애틀까지는 비행기로 약 3시간 정도 걸린다.
차로 3시간은 가뿐한 거리이나 이상하게 비행기는 1시간을 타도 갑갑하고 지겹다. 차는 다양한 풍경을 실감나게 스치며 지나가지만
비행기 안에서 볼 수 있는 바깥 풍경은 좌석에 따라 제한되기 마련이고 창가에 앉는다 해도 현실감 없는 땅과 산,
흰 구름과 푸른 하늘뿐이라 단조롭기 때문일 것이다.
또 차는 필요할 때 쉬어가면 되지만 비행기는 한번 뜨면 도착할 때까지 좌석에 묶여 있어야 한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차는 예비 절차가 필요 없지만 비행기는 탑승까지의 번잡한 절차 - 국내선이라 해도 미국의 유별난 보안검사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책 읽는 것도 지겨워지고 좁은 의자에 납작해진 엉덩이를 자주 들썩이게 될 무렵 눈을 들어 창밖을 보니
하얀 눈을 꼭대기에 인 삿갓 같은 두 개의 산이 보였다. 짐작을 해 보건 데 먼 쪽은 레이니어 RAINIER 산인 것 같고
가까운 산은 1980년에 대규모 폭발이 있었던 세인트 헬렌스 ST HELENS 화산인 것 같다.
6월 하순에 눈이라니!
플로리다의 마이애미는 이미 본격적인 여름이고 동부도 전에 없던 폭염이 기승이라는데, 알래스카도 아닌 태평양 연안 북쪽에
눈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미국 국토의 광활함과 다양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미국은 수평적으로 혹은 수직적으로 언제나 사계절이 공존하는 나라라고 하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미국 여행을 하면서 아내와 자주 꺼내는 말이다.
같은 미국이라도 지역에 따라 기후가 확연히 다르고, 같은 지역에서도 특정 장소에 따라 온도와 날씨가 다르다.
모든 여행이 그렇지만 특히 미국 여행의 준비는 그곳의 현재 기후를 체크해 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시애틀 날씨의 주제는 단연 비다.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서 시애틀은 늘 축축하고 습하게 비가 내렸다.
사람들은 시애틀 날씨를 이렇게 재미있게 말한다.
“IT RAINS IN SEATTLE, AND RAINS AND RAINS AND RAINS...”
사실 시애틀의 강수량은 뉴욕이나 보스톤 보다 작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런 표현이 타당성 있게 들리는 것은 비의 양 때문이 아니라 비 내리는 날이 잦기 때문이다.
7월에서 9월을 제외하곤 거의 매일 비가 오고 여름에도 안심할 수 없다고 한다.
날씨에 대해 이와 비슷한 표현을 인도에서도 들은 적이 있다.
90년 대 인도 마드라스(지금은 첸나이)로 출장을 가기에 앞서 그곳 비즈니스 상대에게 날씨를 물었다.
그가 첸나이에는 세 가지 날씨가 있다며 유쾌한 목소리로 알려주었다.
“HOT, HOTTER, HOTTEST!”
항공과 숙소 예약을 마치고 인터넷 일기예보를 자주 들여다보았다.
건기에 다가선 6월말이니 좋은 날씨를 기대하면서. 10일 전쯤엔 예보가 좋았다.
시애틀은 강수확률 0%였고 일정에 있는 (미국에서 강수량이 제일 많은) 올림픽국립공원 OLYMPIC NATIONAL PARK 이나
레이니어산 MOUNT RAINER에도 “A FEW SHOWER”로 나와 있었다.
나는 의기양양하게 아내에게 컴퓨터 화면을 들이댔다.
“내가 원래 날씨 운이 좋거든!”
그런데 출발일이 다가오면서 서서히 강수 확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10%, 30%, 60%. 비의 형태도 SHOWER에서 RAIN으로 변해갔다. 지역에 따라선 “THUNDER STORM”까지 곁들였다.
나는 아내에게 아전인수의 해설을 해주었다.
“원래 시애틀 지역은 비가 주제거든. 비가 오는 많은 지역으로 여행을 가면서 비를 피하려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지.”
아내는 “누가 뭐라 그랬어?” 하며 그냥 웃었다. 그것이 나의 불안감을 위장하는 표현임을 아내는 알아보고 있었을 것이다.
기후가 급변하는 지역이니 다시 변할 수도 있을 거라는 바람은 출발 전 레이니어 마운틴의 강수 확률 100%이란 숫자에 무너졌다.
나는 상대도 없는 협상을 시도했다.
“시애틀에서 비가 오는 건 괜찮지만 올림픽마운틴이나 레이니어 마운틴에서는 안 돼!”
줄여서 씨택 SEA-TAC (시애틀 -타코마) 이라 부르는 SEATTLE TACOMA INTERNATIONAL AIRPORT는 시애틀에서 남쪽으로
21킬로미터에 있다. 하늘엔 높은 구름이 끼여 있을 뿐 예보와는 달리 비는 오지 않았다. 공항에서 중형 SUV를 빌렸다.
아웃도어 용품을 파는 레이 REI에 들려 버너용 가스를 사고 한인식품점에서 간편식과 김치, 과일과 맥주, 생수 등을
사서 짐칸에 실었다.
*위 사진 5장 : 올림픽국립공원
오고가는 날을 포함한 일주일 - 올림픽마운틴 2박, 레이니어 마운틴 2박, 시애틀 다운타운 2박의 여정의 준비를 완료한 것이다.
첫날은 올림픽반도의 작은 항구 도시 포트엔젤레스 PORT ANGELES에서 숙박하기로 했다. 올림픽마운틴을 오르는 관문 도시였다.
음악을 틀고 운전대를 두드려가며 노래를 부르며 아내와 신나게 두 시간 가량을 달려 숙소에 들었다.
*위 사진 6장 : 레이니어 마운틴
밤 열시에 가까운 시간인데도 아직 어둡지 않았다.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도 시각적으로는 늦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시나브로 날씨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다.
다시 예보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니라 여행까지 와서 내일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애초에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무엇보다 걱정을 앞당기는 짓은 ‘속세’(?)에 있을 때나 하는 일 아닌가.
우리는 즐겁고 행복한 축제, 여행의 첫날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걱정 대신 서로의 캔을 부딪히는 맥주가 어울리는 밤이었다.
*위 사진 : 이번 여행의 마지막 경유지인 시애틀 다운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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