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과 사진/미국

시애틀2 - 올림픽국립공원

by 장돌뱅이. 2013. 8. 24.

올림픽 공원의 첫 방문지는 허리케인 릿지 HURRICANE RIDGE.
해발 1600미터의 전망대까지는 산을 따라 27킬로미터를 올라가야 한다.
산을 오르기 전 차에 기름을 가득 채웠다. 미국의 국립공원의 크기는 매우 넓다.
공원에 진입하기 전 일단 기름을 가득 채워두는 것이 좋다. 
보통 공원 내 주유소가
많이 없고 있다고 해도 기름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주유소에서도 올림푸스산 능선이 올려다 보였다. 올림푸스산은 올림픽 공원내 최고봉(2430미터)이다.
 머리에 흰 눈을 얹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길은 한산했다.
공기는 신선했다. 비지터 센터를 지나자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되었다. 
초입은 동네의 야산처럼 평범했다. 그러나 몇 번의 미국 여행 경험으로 우리는 그 평범함이 특별한 절정을 드러내기 전에 효과를 
배가시키기 위한 공원의 어떤
의도적(?) 몸 낮춤 같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미국의 자연은, 특히 국립공원은
늘 우리의 기대나 상상 이상이었다.

가끔씩 풀을 뜯는 숲속의 사슴이(노루?) 평범함을 깨는 자극이 되었다. 어떤 놈은 유유히 찻길을 횡단하기도 했다. 
꺼릴 것 없이 당당하고 의젓한 자태였다.
그럴 땐 차를 멈추고 잠시 기다려주어야 한다. 
그들은 인간에 앞서 이곳에 살아온
토박이로서 누릴 권리가 있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 갈 길을 방해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도로가 그들의 삶의 근거지에 들어선 것이다. 
처음 미국 여행을 할 때
공원길에서 갑자기 속도를 늦추거나 이유 없이 한참을 정지하는 앞 차에 불평을 해댄 적이 있다. 
그것이 야생 동물들에 대한 배려임을 알고 아내는 나의 경솔함을 나무라기도
했다. 
대부분의 차는 ‘토박이’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오래도록 서 있어 주었다.

길은 산허리를 에돌며 고도를 높였다. 산모퉁이를 돌 때마다 풍경은 예상했던 대로 어떤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감탄과 함께 차를 세워야 하는 빈도가 증가 하였다.

어느 모퉁이에선가 중국인 예닐곱 명이 사진을 찍으며 큰 소리로 이야기하며 웃고 있었다.
중국인들을 만날 때 나의 일차적 감정은 존경과 부러움이다. 자신들의 힘으로 기적처럼 고난의 혁명을 현실화한 민족 아닌가. 
물론 지금의 중국 사회 역시 여러 문제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역사를 새롭게 한 혁명의 의미조차 퇴색 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의 문제는
그 이후의 문제일 뿐이다. 그것은 마치 학창 시절 우리가 치렀던 중간고사나 학기말 고사와 같다.
각 시대는 정리해야 할 저마다의 숙제를 갖고 있을 뿐이다. 잘 치룬 중간고사는 학기말 고사 역시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일 뿐이지 
그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글이 좀 샛길로 빠졌다^^)


한눈에도 그 중국인들이 지닌 카메라며 손가방, 의류, 신발 등의 상표가 예사롭지 않았다.
모두가 이른 바 ‘명품’들이다. 그런데 최고급 상품들만으로 치장을 했는데도 전체적으로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딘가 어색하다. 
촌스럽다고 하면 (동일한 표현으로 아내와 딸아이에게
자주 지적을 당하는 나로서는) 너무 심한 표현일까? 
주위를 개의치 않고 쉴 사이 없이 큰 소리로
떠드는 모습도 좀 그렇다. 존경과 부러움의 감정과는 별도로 세상의 곳곳에서 
목격하게 되는 많은
중국인들에게서 (단순 몸치장 이외의 면에서도) 받는 솔직한 인상이다. 왜 그럴까? 
급격한 경제발전
으로 구매력은 커졌지만 그 구매력에 걸맞는 행동양식이 아직 정착되지 못해 드러나는 부조화일까?
80년대 후반 여행 자유화 이후 세계 곳곳에서 악명 높았던 우리 ‘어글리 코리안’이 그랬던 것처럼?

길의 끝에 허리케인릿지 전망대가 있었다. 6월 말의 허리케인릿지는 호쾌하면서도 평화로운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겨울에는 시속 160킬로미터가 넘는 폭풍이 몰아치는 곳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만년설을 지닌 올림픽산맥들의 
가파른 준봉들이 배경을 두른 둥근
언덕의 풀밭에는 사슴들이 몰려나와 풀을 뜯고 있었다. 
도로를 건너다니거나 아예 차 가까이
다가오기도 했다. 인간의 출현이나 움직임에는 철저히 무관심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평화는 무관심이라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여기저기 짧은 트레일 몇 곳을 걸었다. 눈이 우리의 키를 넘게 쌓인 곳도 있었다.
그래도 햇볕에 드러난 풀밭에는 앙증맞은 모습을 드러낸 작은 야생화 무리가 번지고 있었다.
날이 좀 더 따뜻해지면 야생화로 뒤덮힌 이곳 풍경을 상상하며 앞장서 땅을 헤집고 나온 꽃떨기를 카메라에 담아보기도 했다.


*위 사진 : 리알토 해변으로 가는 101 도로 곁에 있는 초생달 호수 CRESCENT LAKE.

허리케인릿지에서 포트에인젤레스로 되돌아와  101번 도로를 탔다.
공원 서쪽의 리알토 RIALTO 해변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2시간 정도가 걸렸다.
산이 높고 골이 깊은 올림픽공원에는 산과 해변, 호수와 온천 등 다양한 자연 경관이 있다.
오직 이곳에서만 사는 동식물이 20종이 넘는다고 한다. 가히 생태계의 보고라 할 수 있겠다.

해안선의 길이는 90 킬로미터나 된다. 대부분 인공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해변이다. 
리알토비치는 커다란 통나무의 잔해들이 해변에 널려 있어 독특한 풍경을 만든 곳이다.

홍수로 산에서 떠내려온 나무들이 바다로 쓸려갔다가 다시 해변으로 밀려온 것이라고 한다.

해변을 걷기에 앞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해변의 나무들 사이에 식탁이 마련되어 있었다.
바다 바람을 나무들이 막아주어 안온한 공간이었다. 우리는 지상 최고의 식탁이라고 이름하고 코펠에 햇반을 데우고 국을 끓였다. 
입가심으로 커피까지 하고 나니 여기서 여행을 
마쳐도 될 만큼 흡족했다.

포만감 속에 해변을 걸었다. 나무는 살아 있을 때도 죽어 고사목이 되어도 아름답더니 홍수로 바닷가까지 떠밀려 함부로 버려진 듯 
흩어져 있어도 그러했다. 바닷가에 이토록 거대한 나무들을
그냥 그대로 놔둘 수 있는 나라, 미국 말고 또 있을까? 
아내와 리알토 해변을 돌아 나오며 괜히
만족이 넘쳐 불만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원, 나중엔 썩은 나무로 사람을 다 감동을 시키네.”

다시 101번 도로로 나와 남쪽으로 향하다 호우림 HOH RAIN FOREST 으로 갔다.
올림픽반도는 미국에서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곳이다. 연간 3,000mm이상 이다.
우리나라의 연간 강수량은 1,300mm 정도이고 세계 평균은 1,000mm 정도라고 한다.
온화한 겨울과 서늘한 여름, 그리고 풍부한 강수량은 올림픽공원에 원시의 밀림을 만들어 놓았다.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온대우림이라고 한다.
호우림은 그 진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101번 도로에서 벗어나 한참을 들어가는 HOH ROAD의 주변부터 예사롭지 않다.
햇빛이 들지 않는 컴컴하고 축축한 초록의 숲이 이어졌다. 
무슨 씨앗이 떨어지건
동화 속 재크의 콩나무처럼 빠르고 거세게 자랄 것 같은 외경의 풍경이었다.

호우림 비지터 센터를 둘러보고 일 킬로미터 남짓한 거리의 "이끼의 전당 트레일" HALL OF MOSS TRAIL을 걸었다. 
울창한 숲속의 나무들은 가지마다 길게 늘어진
이끼들을 걸치고 있었다. 마치 팔에 늘어진 두루마기 자락 같았다. 
파래 같기도
하고 긴 풀 같기도 한 이끼였다. 비지터 센터에서는 이곳의 이끼를 15가지로 분류하였다.
에스키모인들은 눈의 종류를 다양하게 분류하고 열대지방 사람들은 비의 종류를 다양하게 분류한다고 하니 
이곳에선 이끼도 그럴 수밖에 없겠다. 다른 곳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이 기묘한 자연의 공간은 바로 그 이유로 
1981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오늘 저녁 숙소는  올림피반도의 남서쪽 해안 도시인 오션쇼어 OCEAN SHORE에 있다.
호 계속 남진을 해야 했다. 가는 길에 잠시 루비비치 RUBY BEACH 에 들렸다.
일부러 찾아갔다기 보다는 101번 도로와 붙어있어 휴식 겸 들리게 되었다.

해변의 풍경은 리알토비치와 비슷했다. 흰색으로 탈색된 큰 나무들이 해변에 방치되어 있었고
바닷가 쪽으로 크고 작은 바위가 하나씩 서 있어 리알토비치보다는 좀 아담한 느낌을 주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별로 없어 한적하고 조용했다.

파도소리와 바람소리를 들으며 아내와 천천히 바위까지 걸었다.
“팔짱 한번 껴봐.” 내가 말하자 아내는 싫지 않은 표정으로 눈을 흘기며 팔을 잡았다.
함께 바닷가에 서서 한동안 말없이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연애 시절처럼 손을 잡거나
팔짱을 낄 때마다 우리가 만나고 살아온 세월이 바다 저편처럼 아득하게 다가오곤 한다.

사는 일은 자주 낯설고 먼 곳으로의 여행과 같았다. 예상하지 못한 요란스러움에 화들짝 놀라 방향을 잃고 허둥거린 적도 많았다. 
아내는 나의 서툰 행보와 그에 대한 세상의 어떤
소음도 함께 견디어 주었다. 언제나 내 편이었다. 
특별한 내일을 약속하거나 기대조차 할 수
없었던 시간에도 아내가 있어 든든했고 세상에 당당할 수 있었다.

그런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힘주어 아내의 손을 잡는다. 운전을 하면서 내가 한손으로 아내의 손을 자주 잡아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쪽 하늘에 비를 머금은 검은 구름이 번지고
있었다.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이 남았음에도 점차 날이 어두워졌다.
드디어 비가 긋기 시작했다. 하루 일정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알람과도 같은 비였다.
우리는 서둘러 발걸음을 돌려 해변을 빠져 나왔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