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과 사진/미국

그냥 시카고에 갔다2

by 장돌뱅이. 2013. 9. 12.

일어나자마자 날씨가 궁금했다.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빌딩 너머로 푸른 하늘이 가득 했다.
밤늦도록 내리던 비가 밤사이 거짓말처럼 물러간 것이다. 나는 선생님에게 생각지도 않은 칭찬을
받은 초등학생처럼 신바람이 나서 이제 막 선잠을 깬 아내에게 보여주기 위해 성급히 커튼을 열어젖혔다.
“와! 하늘 색깔 좀 봐!”
오늘은 사실 날씨와 무관한 일정이었다.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이하 AIC) 에서 미술 작품들을보며
하루를 보낼 작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화창한 창밖의 날씨에 감탄마저 아낄
필요는 없었다. 

호텔 밖으로 나오니 방안에서 보던 때와 달리 날씨가 냉랭했다. 바람도 제법 있었다.
우리는 미시간애비뉴를 따라 남쪽으로 걸어 AIC로 향했다. 어제 보았던 건물이었지만
맑은 햇살 아래 보는 모습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공원에서 아침 산책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건물만큼이나 상큼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오직 한 가지 우울한 풍경은 다른 도시에 비해 유난히도 눈에 많이 띄는 길거리의 노숙자들이었다.
도와달라는 팻말을 앞에 놓고 구걸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의자에 앉은 사람을 찾아다니며 손을
내미는 사람들도 있고 거리에 서서 무엇인가를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제 곧 혹독한 겨울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을 바라보는 마음이 더 편치 않았다.
번영의 높은 건물이 드리운 긴 그림자들이었다.

AIC 앞에는 개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우리도 그 대열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AIC에는 지역적으로 그리고 시대적으로 다양하고 방대한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하루를
잡았다고 해서 모든 소장품들을 돌아볼 생각은 없었다.
우리의 지적, 감성적 수용능력에 비추어
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우리는 한국관과 AIC에서 가장 인기 있는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보는 것으로 한정지었다.
점심도 미술관 안에서 해결할 생각이었다.


옛 중국의 명의(名醫) 편작(扁鵲)은 환자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환자의 병을 파악하는,
이른바 망진(望診)을 최고의 진찰술로 꼽았다고 한다. 병은 숨겨지지 않고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그림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아니 알지 못하는 초보이기에
오래 들여다보기로 했다.
그림을 통해 한 때 세상에 존재했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드러내는 뜻을
겸손한 마음으로 헤아려보고자 했다.
생각해 보면 오래 바라다보는 행위가 의술이나 그림 감상에만
필요한 것은 아닌 듯싶다.
여행에도 사랑에도 오래 바라보고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가.


AIC의 1층에 있는 소박한 크기의 한국관은 주로 자기(磁器)류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개중에는 현대 작품들도 섞여 있었다.
우리의 관심사였던 인상주의 IMPRESSIONISM 작품들은
2층 전시실에 있었다. AIC는 프랑스 루브르 다음으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모네 MONET 의 작품이 많다고 한다.

사진으로 찍은 몇몇 작품을 올려본다.

↑르느아르 RENOIR 의 “TWO SISTERS”.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책에 자주 나오는 르누아르 그림 중의 하나이다.




↑“수련” 연작으로 유명한 모네 CLAUDE MONET 의 “POPPY FIELD” 와 "ARRIVAL OF THE NORMANDY TRAIN"


↑고갱 PAUL GAUGUIN 의 "WHY ARE YOU ANGRY?"  제목을 보고 그림을 보면 재미있다.


↑쇠라 GEORGES SEURAT “A SUNDAY ON LA GRANDE JATTE”
전시실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이 그림은 가로 308센티미터, 세로 207.5센티미터 크기의 큰 그림이었다.


↑고흐 VINCENT VAN GOGH 의 “MADAME ROULIN ROCKING THE CRADLE”

생전의 고흐는 자신의 동생이자 경제적, 예술적 후원자였던 테오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냈다.
그 편지 중에 이 그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투박한 여인의 모습이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글을 읽고 보면 그 의도적인 투박함이 따스하게 읽혀진다.

전에 고갱에게 이 그림에 대한 아이디어를 말한 적이 있다. 아이슬란드의 어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지. 막막한 바다 위에서 온갖 위험에 노출되어 지내는 그들의 서글픈 고독을
생각해보자.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동시에 순교자의 모습을 지닌 그 어부들이 고기잡이 배의 선실
에서 바라보면
좋을 그림, 어린 시절 요람에서 흔들리던 때의 감각이 되살아나고 어릴 때 듣던
자장가가 떠오르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이 그림은 씨구려 가게에서 파는
서툰 판화처럼 보일
수도 있다. 오렌지색 머리카락에 초록색 옷을 입은 여인이 분홍색 꽃그림이
그려진 초록색 벽지를
배경으로 앉아 있다. 생소할 정도로 거친 분홍색, 거친 오렌지색,
거친 초록색이 눈에 거슬릴 정도로
부조화를 이루면서도 단조로운 빨간색과 초록색 덕분에 나름의
온화함을 회복한다. 

   -신성림 번역, “반 고흐, 영혼의 편지” 중에서 인용(이하 동일) -


↑고흐의 "THE BEDROOM"

1888년 10월16일 역시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흐는 이 그림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그린 작품은 나의 방이다. 여기서만은 색체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것을 단순화하면서
방에 더 많은 스타일을 주었고, 전체적으로 휴식이나 수면의 인상을 주고 싶었다. 사실 이 그림을
어떻게 보는가는 마음 상태와 상상력에 달려 있다.
벽은 창백한 보라색이고, 바닥에는 붉은 타일이 깔려 있다. 침대의 나무 부분과 의자는 신선한
버터 같은 노란색이고, 시트와 베개는 라임의 밝은 녹색, 담요는 진홍색이다. 창문은 녹색,
세면대는 오렌지색, 세숫대야는 파란색이다. 그리고 문은 라일락색.
그게 전부다. 문이 닫힌
이 방에서는 다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가구를 그리는 선이 완강한 것은 침해받지 않는
휴식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벽에는 초상화와 거울, 수건, 역간의 옷이 걸려 있다.
그림 안에 흰색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테두리는 흰색이 좋겠지.
이 그림은 내가 강제로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던 데 대한 일종의 복수로 그렸다. 내일도 하루 종일 이 그림에 매달릴 생각이다.
구상이 아주 단순한 그림인 만큼, 그림자나 미묘한 음영은 무시하고 일본 판화처럼 환하고 명암이
없는 색조로 채색했다.

그림을 비롯한 모든 예술 작품을 보거나 듣거나 읽는데 작가의 설명이 작품을 감상하는 전부거나 필수는아닐 것이다.
그냥 참고 사항으로 인용했을 뿐이다.
위 편지 중 고흐의 말대로
“그림을 어떻게 보는가는 (각자의) 마음 상태와 상상력에 달려” 있으므로.

이 작품은 모두 3개이다. 하나는 미국 시카고 미술관, 하나는 (이 곳) 오르세, 나머지 하나는
암스테르담의
반고흐 미술관에 있다. (...) 작품이 그려진 시기는 1988년이고, 암스테르담의 것이
첫 번째 작품이다.
나머지 두 작품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시기에 다시 그린 것인데, 첫 번째
작품이 물에 젖어 아랫부분이
훼손되었기 때문이었다. 
  -여행동호회 회원의 유럽여행기 중-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모든 화력을 최대한 압축하여 짧은 시간에 한 곳에 쏟아붓듯
폭발적으로 한 생애를 살다간 사람들. 고흐가 그랬다. 서른일곱 해의 짧은 일생동안 사랑의 실패와
가난, 병마의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그는 한 순간도 그림에 대한, 색채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나는 늘 두 가지 생각 중 하나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는 물질적인 어려움에 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색에 대한 탐구다. 색채를 통해서 무언가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서로 보완해주는 두 가지 색을 결합하여 연인의 사랑을 보여주는 일, 그 색을 혼합하거나
대조를 이루어서 마음의 신비로운 떨림을 표현하는 일, 얼굴을 어두운 배경에 대비되는
밝은 톤의 광채로 빛나게 해서 어떤 사상을 표현하는 일, 별을 그려서 희망을 표현하는 일,
석양을 통해서 어떤 사람의 열정을 표현하는 일, 이런 건 결코 눈속임이라 할 수 없다.
실제로 존재하는 걸 표현하는 것이니까.
 - 1888년9월3일자 편지 -

예정한 대로 인상주의 전시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AIC를 나오기 전 3층의 MODERN
WING에 들려 속보로 돌아 보았다. 아내와 내겐 늘 어려운 피카소와 칸딘스키 등의 작품 등이 있었다.


↑PABLO PICASSO "THE RED ARMCHAIR",


↑VASILY KANDINSKY "LANDSCAPE WITH TWO POPLARS"

AIC 밖으로 나오자 날은 더 없이 화창해져 있었다.

AIC의 맞은 편 SYMPHONY CENTER에서 CHICAGO SYMPHONY ORCHESTRA (이하 CSO)의 저녁 공연
티켓을 사고 어제 들렸던 밀레니엄 공원을 향해 걸었다. 공원의 조형물들을 보고 미시간호수까지 걸을 참이었다.

두 개의 대형비디오 스크린이 서 있는 CROWN FOUNTAIN이란 작품은 인상적이었다.
시카고란 도시의 현대적인 이미지와 어울려보였다.

그리고 어제 보았던 CLOUD GATE를 다시 보았다. 푸른 하늘과 주위의 건물들을 멋들어지게 담아내고 있었다.
어제보다 한결 상쾌하고 발랄해 보였다.

미시간호수는 호수라기보다는 바다였다. 미국의 5대 호수(GREAT LAKES) 중 세 번째 큰 담수호로
시카고가 속한 일리노이주, 위스콘신, 미시간주, 인디애나주의 4개 주에 둘러싸여 있다. 호수가의
의자에 앉아 요트가 정박된 호수를 바라보았다. 주말 오후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우리 앞을 지나갔다.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산책을 하고 달리기를 하고 자전거를 타고 보드를 타고...
어떤 긴박함이나 절박함이 없는 상태, 다양한 움직임...그것은 평화였다.

CSO의 연주회를 보기 전에 저녁을 먹기 위해 시내로 돌아갔다. RUSSIAN TEA TIME에서 먹은 저녁은 즐거운 식사였다.
경쾌한 목소리를 가진 웨이터의 추천을 
받은 CLASSIC STUFFED CABBAGE GOLUBTSI와 CLASSIC BEEF STROGANOFF는
양이 너무 
많은 것을 제외하곤 엄지손가락을 새울 만했다.

이날의 마지막 일정이었던 CSO의 연주회는 내심 기대가 컸으나 안타깝게도 새로운 단체교섭에
대한 노사 합의 실패로 노조가 파업에 돌입함으로써 감상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급여와 건강
보험료가 안건의 핵심이었다고 한다.
심포니센터의 직원들이 입구에 서서 파업으로 연주회가
취소되었다는 전단지를 나누어주며 사과를 하고 있었다.
저녁때까지만 해도 리허설이 진행되어
파업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 1991년 이후 21년 만의 파업이 하필 우리의 여행 일자에
일어난 것이다.
센터 직원들에게 항의를 하거나 노조를 비난하는 관객은 없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줄을 서서 다음 연주회로 표를 바꾸거나 우리처럼 돈을 돌려받고 있었다.

연주회 취소로 갑자기 텅 비어진 시간을 메꾸기 위해 다시 밀레니엄 공원으로 갔다.
CLOUD GATE에 비친 예쁜 시카고의 야경을 보았다.

그리고 밤거리를 걸어 호텔로 돌아와 어제처럼 맥주를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었다.

'여행과 사진 > 미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엘에이 공항의 변모  (0) 2013.10.26
그냥 시카고에 갔다3(끝)  (2) 2013.09.12
그냥 시카고에 갔다1  (0) 2013.09.12
샌디에고 식당27 - 베트남 식당 두 곳  (0) 2013.09.11
샌디에고 식당26 - CUCINA URBANA  (0) 2013.09.1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