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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미국

그냥 시카고에 갔다3(끝)

by 장돌뱅이. 2013. 9. 12.

일요일이다. 오전에 시카고 대성당의 미사 참가와 성당 구경을 제외하곤 다른 일정을
잡지 않았으므로 아침이 느긋했다. 시카고의 시간은 샌디에고보다 두 시간 앞서간다.
지난 이틀은 아무래도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취침 시간은 샌디에고에
맞추고 일어나는 시간은 시카고에 맞추게 되다보니 잠자는 시간이 줄어든 탓이다.
여유로운 아침이 오래간만인 듯 감미롭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방안에서 시간을 보내다
성당으로 향해 나섰다. RED LINE 기차를 타고 시카고강 북쪽 STATE STREET의
시카고역에서 내렸다. 출구 바로 옆에 성당이 있다.

HOLY NAME CATHEDRAL은 1871년 시카고 대화재로 소실된 성당을 대체하기 위해
1875년에 지었다고 한다. 석재로 마감한 외관보다 내부가 더 웅장하고 화려했다.
2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일요일이 아니라도 일주일에 한번은 미사에 참석하기로 아내와 서로 약속했다.
미사 중 아내는 늘 진지한 모습으로 기도를 올린다. 나는 이런저런 분심(分心)이
가득한 채로 아내의 기도를 헤아려볼 뿐이다.

올해는 아내와 결혼한 지 28년째 되는 해이다. 동갑인 아내와 내게 결혼 이전과 이후의
시간이 같아지는 해이기도 하다. 아내는 우리가 함께 쌓아올린 시간을 자부하며 종종
그 정점의 자리를 내게 양보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앞선 시간은 부모님께, 나중 시간은
아내에게 부실한 응석받이뿐이었음을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낯 뜨겁게
깨닫고 있다. 그곳은 아내의 기도와 기다림이 있어야 할 자리다. 내가 특정 종교의 교인이라고
내세워 말하기를 쑥스러워 하면서도 아내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쯤 잘 알지 못하는 ‘그분’께
감사를 하게 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미사 후 성당에서 몇 블록 떨어진 PIZZERIA UNO에서 시카고 스타일 피자를 먹었다.
이곳이 이 독특한 피자의 원조라고 하는데 정확한 사실은 모르겠다. 시카고 피자는
우선 두께가 일반 피자의 두세 배는 되었다. 주문 후 (피자를 굽는데) 40여 분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도 두께 때문이라고 했다. 도우 DOUGH의 맛과 형태가 일반 피자와는 달랐다.
토핑 내용물은 비슷했지만 소고기 수육(?) 층이 있는 것이 달랐다.

형태가 어쨌건 맛이 중요한데.....아내와 나의 입맛엔 아니었다.
작은 사이즈를 시켰는데도 남기게 되었다. 맛 때문이기도 했지만 두께 때문에 커진 피자의
양 때문이었다. 그러나 식당을 나오다보니 LARGE 사이즈의 피자를 각자 한 판 씩 시켜놓고
먹는 위대(胃大)한 미국 아줌마들도 있었다.


*위 사진 : 1869년에 건축된 죤행콕 센터 근처의 워터타워. 옛 시카고의 상징물이다.

점심 식사 후 MAGNIFICENT MILE(환상의 1마일)을 걸었다. 매그니피슨트 마일은 강 북쪽의
미시간 애비뉴 일대를 말하는 것으로 대형 쇼핑몰과 이름난 브랜드 샾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

먼저 시카고 사람들이 ‘BIG JOHN’으로 부른다는 죤행콕센터 JOHN HANCOCK CENTER의
94층 전망대에 올랐다. 이틀 전 들렸던 시어스타워보다 높이는 낮았지만 전망은 더 훌륭했다.
날씨까지 맑아서 수평선과 지평선이 분명했고 미시간 호수의 푸른 물과 호수 주변의 빌딩들의
조화가 시원스러웠다.

죤행콕을 내려와 현대미술관을 향해 가는 도중 AMERICAN GIRL PLACE라는
이름의 큰 상점이 있었다. 아내는 이제까지 미국에서 보지 못한 상표인데(?)
혹 딸아이에게 줄만한 옷을 팔 지도 모르겠다며 들어가 보자고 했다.

그런데 예상 밖으로 그곳은 인형가게였다. 2층의 커다란 매장이 온통 인형과
인형을 꾸미기 위한 옷과 악세사리로 가득했다. 예전 딸아이가 좋아하던 바비인형을
한참 업그레이드한 버전이라고 해야겠다. 인형은 통실통실하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인형옷 한 벌의 가격은 아내가 입은 티셔츠 가격과 비슷했다. 종류도 다양했다.
수영복에 병원복, 운동복은 물론 중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복장도 있었다.
거기에 구두와 핸드백, 우산, 모자, 머리핀까지 실제 사람들에게 필요한 모든 종류의
악세사리가 있는 듯 했다. 인형을 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덧붙여야 놀이가 이어지게 만든 기발한 상술의 제품이었다.

가게 안은 아이들에게 끌려나온 어른들로 번잡했고 아이들의 옆구리에는 인형이
하나씩 안겨있었다. 아내는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은 진열품들의 모습에 아이들처럼
어쩔 줄 몰라했다. 끝내 브로셔를 한 권 얻어 가게를 나오면서 아내는 조만간 이 상품의
한국 상륙을 예감했다. 예전의 다마고찌처럼, 아니면 근래 청소년들 사이에 있었던
노스페이스처럼 어린 아이들 사이에 ‘아메리칸 걸’의 열풍이 불어 주머니 얕은 부모들의
주름살이 또 한 번 깊어지는 건 아닌지...

현대미술관 MUSEUM OF CONTEMPORARY ART은 이름처럼 1945년 이후의
조각, 회화, 사진, 비디오아트 등의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곳이다.
다양하고 복잡한 형태의 현대미술은 늘 내게 어렵지만 구태여 어떤 의미에 집착하기보다
작품을 보는 행위 자체를 휴식으로 생각하고 난 뒤론 편안한 마음으로 가보게 된다.

이날 “고층건물” 주제의 기획 전시는 편안함에 흥미로움까지 있던 전시였다.
여러 가지 소재로 표현된 도시 속 건물은 다양한 느낌을 주었다.
미술관의 계단도 우리에겐 예사롭지 않은 ‘작품’이었다.

미술관을 나와 매그니피슨트 마일을 남쪽으로 걸었다. 거리의 상점들은 저마다
호사스러운 상품을 내걸고 있었지만 들어가 보진 않았다. 가보나마나 대부분 가격으로
우리를 압도할 상표들이었다.
“미국에 사니 여행을 가도 쇼핑에 시간을 투자할 일이 없어 좋긴 하네.
샌디에고에도 있는 걸 구태여 여행 와서 살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묻지도 않는데 괜한 소리를 했다가 아내의 순발력 있는 카운터펀치를 맞고 말았다.
“문제는 샌디에고에서도 안 가거나 못 가는데 있지.”

미시간애브뉴 다리 근처의 선착장에서 시카고 건축재단 CHICAGO ARCHITECTURE FOUNDATION에서
운영하는 리버크루즈를 탔다. 크루즈는 한 시간 반 동안 시카고강의 남북을 따라 강변의 유명 건축물들을
해설과 함께 돌아보았다. 아내와 나는 언어 능력의 문제로 해설의 내용은 대충 이해하였지만 다양하고
화려한 건물들을 강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일정이었다.

개개 건물의 설명은 생략한다. 건물마다 공법이 다르고 내력이 있지만 구태여 자료를 뒤져
그것들을 늘어놓을 필요는 없겠다. 다만 서로 어깨를 맞대며 조밀하게 솟구친 마천루들이
집단군무나 합창으로 전해오는 어떤 느낌만은 전하고 싶은데, 그것을 제대로 전달하기에는
나의 사진이 너무 허접하여 아쉬울 뿐이다. 

 

배가 출발 했던 지점으로 돌아왔다. 날이 저물었다.
아내와 나는 배 난간에 서서 시카고의 강변 풍경을 돌아보았다.
서쪽 하늘 아래 빌딩들은 어두워가는 저녁빛 속에 검은 실루엣으로 스러지고 있었다.
더불어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도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시간은 거침없이 앞으로만 지나간다.
덧없이 사라질 삶의 어느 한 순간을 싱싱하게 현재화 할 수 있는 것이 추억뿐이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그것은 움직일 수 있는 동안 온 몸에 진하게 각인되는
짜릿한 감동의 순간들을 최선을 다해 만들어 내는 일이다. 출렁이는 배 난간을 내려오며
아내와 나는 통쾌한 승리를 거둔 운동선수처럼 의기양양하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위 사진 : 시카고 오헤어O'HARE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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