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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2012 '만 리'의 방콕2

by 장돌뱅이. 2013. 10. 26.

새벽녘 잠깐 잠이 들었다가 깨니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호텔 주변 산책을 위해 옷을 갈아입었다.
아내는 여전히 곤하게 잠을 자고 있다. 창밖이 환해지기를 기다려 혼자 방을 나섰다.

이스틴 그랜드 호텔은 2012년 5월에 오픈하여 복도에서 새 냄새가 날 것 같이 아직
‘따끈따끈한’ 상태이다. 사람의 손때가 덜 묻어 깨끗하다. 그러나 5(4?)성급이라고
하지만 부대시설에 뚜렷한 특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내외관의 구조나 마감 등도
썩 고급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떤 특별한 결함이나 미비한 점도 눈에 띄지 않았다.
한마디로 무난했다.


굳이 인상적인 곳을 꼽는다면 건물 5층에 위치하여 도심의 빌딩을 바라보며 수영을
할 수 있는 인피니티풀을 들 수 있겠다. (나로서는 수질에 좀 불만이 있었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한 미국인 할머니는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어메이징”을 반복했다.)
한 가지, 수라삭 전철역과 호텔의 3층이 육교로 직접 연결되는 편리함은 이 호텔이 지닌 큰 장점이었다.

아침 산책은 수라삭역 3번 출구를 나오면서 시작되었다.
수라삭역 주변은 여행자를 모으는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곳이다.
그런 사실이 오히려 아침 산책을 더욱 느긋하게 만들어 주었다.
‘발 가는 대로’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게 오고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하며
노점상과 가게 등이 있는 골목길을 무심히 걸을 수 있었다.

일행이 잠에서 깨어났으리라는 확신이 드는 시간까지 한 시간이 넘게 여기저기
사톤로드와 실롬로드 사이의 골목길을 특별한 방향을 정하지 않고 돌아다녔다.

32층에 있는 EXECUTIVE LOUNGE의 아침식사는 가짓수는 많지 않았지만 깔끔했다.
우리 방과 문을 접하고 있어 편리한데다가 사람들도 별로 없는 한가로운 분위기여서 일행 모두 만족스러워했다.

식사 후의 일정은 수영장이었다. 수영장은 ‘얼마동안’이라는 시간 계획을 세워놓지 않았다.
몸이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보내올 때까지 일과 공부를 제외한 모든 활동 - 수영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잠을 자며 보낼 작정이었다. 시간이 길게 늘어지며 천천히 흘러
가는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버는 것’은 이번 여행의 주제이기도 했다.

풀바에 주문한 한두 잔의 칵테일을 마셔도 허전한 배가 달래지지 않을 때쯤
우리는 옷을 갈아 입고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되어 밖으로 나섰다.

목표는 탄잉레스토랑 THANING RESTAURANT(.02-234-4872) 아침 산책길에
이미 위치를 알게 된 터라 내가 앞장서서 안내를 했다. 아침 산책 때와 같이
수라삭 역 3번 출구로 나와 뒤로 돌아가면 이내 프라무안로드 PRAMUAN ROAD를
만나게 된다. 이 길을 따라 왼쪽으로 올라가면 큰 식당 간판이 보인다. 주변에 다른
식당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못 보고 지나칠 수 없다.

입구에 작은 대나무 숲이 있었다. 가정집 같은 식당 건물의 외관은 수수하지만
내부는 밝고 깨끗했다. 메뉴는 태국음식. 음식 맛은 말할 것 없고, 종업원도 자상하고
상냥하여 기분 좋은 식당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전철을 타고 두 정거장 떨어져 있는 살라댕역으로 갔다.
역 가까이 있는 바디튠 BODY TUNE에서 맛사지를 받았다. 바디튠은
아시안허브와 함께 아내와 내가 좋아하는 맛사지집이다. 좋은 맛사지사를
만나는 것은 운에 맡길 일이지만 두 곳에서는 이제까지 실망한 적이 없다.

이번 여행의 일정은 매일매일 모두 이 날과 같이 잡았다.
아침산책 -조식 후 배 고플 때까지 수영(장) - 점심 - 맛사지......
가끔 어쩔 수 없어 동선의 이탈은 있겠지만 가급적 호텔 가까이에서 모든 일정을 소화할 생각이었다.

맛사지를 마치고 나오니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근처에 있는 짐톰슨 본점에서 아내는
나에게 티셔츠를 골라주었다. 딸아이는 직장 동료들에게 줄 작은 기념품을 몇 개 샀다.

북적이기 시작하는 팟퐁로드로 돌아 나와 다시 BTS를 타고 두 정거장 떨어져있는
씨암역으로 갔다. BTS 씰롬선과 스쿰빗선이 만나는 씨암역은 방콕 쇼핑의 ‘메카’
지역이라 늘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이 날은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주말이라 그런지
더욱 많은 사람들로 혼잡했다. 딸아이는 방콕의 강남역이라며 웃었다.
백화점이
몰려있으니 명동역이나 을지로입구역이라는 표현도 있음직 했다.

씨암파라곤의 G층에 있는 MK골드에서 수끼로 저녁을 먹었다.
태국 여행을 할 때마다 한 끼는 수끼로 해결하게 된다.
죽까지 닥닥 긁어먹어 포만감으로 그득해진 배를 달랠 겸
씨암파라곤을 돌아보았다. 2층에 있는 아시아북스에서 책 두 권을
사고 밖으로 나오니 주변은 온통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으로 화려했다.
번쩍이는 조명 속 무대에서는 신나는 노래소리가 울려퍼지기도 했다.
“HAPPY NEW YEAR 2013”
전광판이 달린 트리 앞에 딸아이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행복한 새해... 해마다 이 맘 때쯤 사람들은 내년 어디에선가 그놈의 행복과 만나기를 기원해 보곤 한다.

그러나 우린 알고 있다. 행복은 소망이나 선택이나 권리만이 아니라
어쩌면 매 순간마다 지금 당장에 실현해야할 의무로서 온다는 것을.
진부한 표현이지만 그것은 늘 거창하거나 어렵기만 한 것은 아니다.
커튼을 활짝 열고 방콕의 밤 풍경을 내려다보며 가족과 함께 마시는 싱하 맥주에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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