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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사진/태국

2012 '만 리'의 방콕(끝)

by 장돌뱅이. 2013. 10. 26.

강변의 사판탁신역 근처 로빈슨백화점 앞을 가로지르는 큰길은
타논 짜런끄룽 TH. CHAREN KRUNG이다. 이날 아침 산책은 이곳이었다.
짜런끄룽에서 가지를 치듯 갈라진 작은 쏘이 SOI(골목길)을 들락거리면서
큰길을 따라 이리저리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매일 아침 산책길이 그랬던
것처럼 짜런끄룽과 그 주변도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가득했다.

손가방을 든 사람들이 골목에서 나오고 또 봉지를 든 어떤 사람들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등교를 하는 학생들의 재잘거림이 아침 햇살과 함께 큰길을 가득 채웠다.
오토바이들이 굉음을 쏟아내며 지나갔다. 노점상의 리어카엔 과일들이 쌓이고
식당의 솥에선 김이 피어올랐다. 탁발을 하는 스님과 시주를 하는 사람들은
두 손을 얼굴 앞에 모으고 ‘와이’를 나누었다. 선착장에 배를 댄 사공이 내렸다
무엇인가를 싣고는 다시 떠났다. 강물은 출렁이며 흘렀다.

나의 여행과는 상관없이 이 자리에서 숱한 날을 두고 반복되어온 일상일 것이다.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풍경에 나의 발걸음은 덩달아 느긋하고 편안했다.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저마다 책을 읽거나 인터넷을 하거나 게임을 했다.
수영을 하지 않기로 해서 한가했다.

점심은 (실롬의 르메르디앙호텔 옆 골목 안쪽에 있는) 로즈호텔의
부속식당인 르언우라이 RUEN URAI(TEL:02-266-8268)에서 했다.
호텔보다 식당이 더 유명한 것 같았다.

옛 태국왕실 주치의 집이었다는 르언우라이는 검은색 벽채의
아담하면서도 다부져 보이는 건물이었다. 수영장의 물빛과 초록의
나무들과 어울린 풍경이 산뜻해 보였다.
가정집 거실 같은 내부도 차분하고 깔끔했다.
음식과 직원의 서비스도 전통의 건물과 어울리게 흠잡을 데 없었다.
분위기가 좋아 식사시간이 길어졌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맛사지는 역시 아시아허브였다.
르언우라이에서 가까운 팟퐁거리에 아시아허브 지점이 새롭게 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리로 갔다.

마사지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팟퐁거리는 야간장사를 위한
천막설치 작업이 한창이었다. 매일 시설물을 설치하고 걷는 번거로움을 반복하는 모양이었다.

호텔로 돌아와 다시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이제부터 비행기 타기 전까지 할 일은 저녁식사 뿐이었다.
아무리 점심을 거하게 먹었어도 시간이 지나니 속은 다시
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여행 중에, 특히 태국에서는 그 신호가 반가움과 같다.

그에 대비하여 이름도 예쁜 따링쁘링 TALING PLING(02-236-4829/30)을
준비해둔 터였다. 태국음식점 따링쁘링은 방콕 시내 몇 곳에도 지점이 있지만
실롬점이 본점이다. 원래 미얀마대사관 맞은편에 있다가 최근에 지금의 장소인
실롬로드의 쏘이19로 옮겨왔다고 한다. 그걸 모르고 첫 아침 산책길에 혼자서
이 식당을 찾아보느라 여러 골목을 들락거렸었다.
나중에 호텔 컨시어지의 도움으로 이사 간 곳을 알게 되었다.

새로 옮긴 곳은 흰색의 육중한 느낌이 드는 건물이었다.
내부는 검은색 톤의 장식으로 고급스러우면서도 젊고 발랄한 분위기였다.
음식은 대만족이었다. 특히 (아쿠아 회원이신) MAYA님이 쓴 방콕여행서에
추천한 얌운센은 이번 여행 최고의 맛이었다.

얌운센은 “운센”이라는 얇은 당면에 새우, 토마토, 양파, 생강 등을 넣고 피쉬소스 등을
섞은 샐러드이다. 딸링쁘링의 얌운센은 새콤하고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맛이었다. 볶음밥이나 똠양꿍에 디져트인 망고밥까지 모두 만족스러웠다. 직원들의
군더더기 없는 싹싹한 서비스도 음식의 맛을 끌어올리는 요소가 되었다.

미국에 돌아와 아내와 샌디에고에서는 제법 유명한 태국식당에서 얌운센을 주문했다.
메뉴에는 없었지만  태국인 직원은 얌운센을 안다는 사실만으로 반가워하면서 잠시 후
음식을 내왔다. 가끔씩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아직 ‘태국여행물’이 덜 빠진
우리의 입맛에는 영 아니었다. 맛이 어떠냐는 직원의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지만.
따링쁘링 기준의 얌운센 맛을 설명하기에는 나의 영어가 부족했고
또 유창하게 설명한다고 해도 태국인2세쯤 되어 보이는 직원이 알아들을 것 같지도 않았다.
방법은 한 가지,‘본토’에 가보는 것뿐이겠다.

개운해진 입을 그래도 무엇인가 아쉬운 듯 다시며 식당을 나서는 것으로
이번 여행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짐을 꾸려 공항으로 향했다.
지난 며칠 아무 것도 한 일이 없다. 매우 단순하고 반복적인 시간을 보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고 여행을 왔으니 당연한데, 굉장히 많은 일을 한 것 같다.
복잡하지 않으려고 또 여행을 왔으니 그것도 당연한데,
매우 다채로운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동행들의 얼굴에도 만족함이 묻어난다.

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언제쯤 다시 오겠나 예상과 상상을 해보았다.
태국을 떠날 때마다 반복되는 나의 습관이다. 돌이켜보면 많은 경우에
계획보다 앞서서 돌아오곤 했다. 스스로에게, 가족에게,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나의 삶에, 그리고 태국에게 고마워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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