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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철3

병실에서 9 이야기 하나, "호텔만 가야 호캉스인가? 우리도 호캉스(Hospital + Vacance)를 즐기는 중이야" 아내와 함께 웃었다. 이야기 둘, 간호사는 약을 주거나 혈압을 잴 때마다 침대에 붙은 이름표와 팔목에 찬 아이디 팔찌를 스캔하고 말로도 묻는다. "곱단이요." 아내가 대답하면 간호사는 재차 확인하고 약을 준다. 다른 환자의 약을 잘못 투여하는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생긴 바람직한 절차인 것 같다. 내가 약간의 불만스러운 투를 가장하여 간호사에게 물었다. "이름이 잘못되었는데 왜 안 바꿔주지요?" 간호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어떻게 잘못되었다는 ···?" 내가 말했다. "예, 아내 원래 이름이 송혜교거든요." 간호사가 웃었다. 아내는 나의 실없음에 눈을 흘기며 따라 웃었다. "아쉬운 대로 손.. 2022. 8. 24.
야트막한 사랑의 하루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 (CASPER DAVID FRIEDRICH), 「겨울풍경」, 1911년경 사내는 먼길을 걸어왔나 보다. 멀리 성당의 실루엣이 여명 속에서 어슴푸레 보이는 거로 보아 아마 밤을 새워 걸어왔는지도 모르겠다. 지치고 힘들어 한 걸음도 더 내디딜 수 없었는지 차가운 눈밭 위 바위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다. 목발인 것도 같고 지팡인 것도 같은, 그가 걸으며 의지했을 나무 막대기조차 함부로 눈 위에 던져놓은 채로. 자세히 보면 사내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기도를 올리고 있다. 초록의 전나무 앞에 십자가도 보인다. 무슨 이유로 여기까지 왔으며 어떤 간절함으로 기도를 하는 것일까? 성당의 종소리와 함께 어서 해가 떠올라 사내를 따뜻한 기운으로 감싸주었으면 싶다. 삶은 원래 견디는 것이라지.. 2020. 12. 24.
겨우 존재하는 것들 산 아래 모든 집들이 가슴 앞에 불 하나씩 단정하게 달고 있습니다. 앓아누운 노모가 자식의 손에 자신의 엷은 체온을 얹듯 세상의 어둠 위에 불들은 자신의 몸을 포갭니다. 땀보다도 그림자보다도 긴 흔적들 짚불보다 더 뜨겁습니다. 불빛 너머 손금처럼 쥐고 그댈 그리워하던 내 마음도 창호지 밖 그림자로 어룽입니다. - 강형철의 시, “겨우 존재하는 것들 3” - ‘세상의 어둠에 자신의 몸을 포개’던 불빛이 사라진 옛집들은 우리를 스산하게 합니다. 떨어져나간 문짝이며 버려진 세간들, 아직 벽에 걸린 낡은 달력과 구구단표, 빛 바랜 몇 줄의 낙서는 우리를 애처롭게 합니다. 울타리를 따라 하얗게 핀 찔레꽃도 더 이상 화사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잡풀 우거진 마당을 서성이다보면 아직도 흘러가는 시간과 싸우며 한 .. 2005. 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