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결혼기념일8

결혼 39주년 39년이 되었네요. 저 혼자 흑심(?)을 품기 시작한 시간과 가슴 두근거리던 연애 시절까지 합치면 거의 5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는가 봅니다. 어느새, 벌써 말입니다. '일 년을 시간 속에 넣으면 가을은 마법의 시간(If a year was tucked inside of a clock, then autumn would be the magic hour.)'이라는 누군가 말에 '뭔 뜻이야?' 하며 공감을 하지 못하다가도 우리가 새로운 약속을 시작한 계절이 가을이었다는 깨달음에 이르러선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당신을 향한 설렘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철부지였던 제게 당연한 일이라는 듯 기꺼이 손을 내밀어준 당신이나, 단칸 셋방에서도 씩씩하게 자라준 우리 딸 역시 마법의 가을, 혹은 가을의 마법 아니면 .. 2023. 10. 28.
제주 함덕 11(결혼38주년) 아침에 숙소 주변, 해변이 아닌 중산간 쪽으로 걸어보았다. 평범한 마을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지 않았던 귤밭을 만났다. 사진을 찍다가 귤 수확을 준비하고 있는 초로의 사내와 말을 트게 되었다. 이제껏 커다란 귤밭은 서귀포 일대에만 있는 걸로 생각했다는 나의 말에 그가 말했다. "빌레는 제주도 말로 돌인데 빌레 위의 흙 층이 얇아서 조천의 귤이 서귀포 귤보다 당도가 높아요." 내게 물론 그 말의 사실 여부를 파악할 지식은 없다. 하지만 그가 맛보라고 건네준 귤은 적어도 하나로마트에서 사다 먹은 귤보다는 맛이 있었다. 그는 극조생의 귤이라 농협에 납품하기 위해 수확을 서둘러야 한다고 했다. 3일 정도는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귤밭 가운데 있으면서도 또다시 돌담에 둘러싸인 무덤이 편안해 보였다. 오늘.. 2022. 10. 29.
결혼 36주년입니다 *36주년 음식 : 태국 솜땀과 팍붕파이댕, 그리고 닭봉과 항정살 구이 당신과 함께 밥을 먹습니다. 당신과 함께 잠을 잡니다. 당신과 함께 커피를 마시고 음악을 듣습니다. 당신과 함께 청소를 하고 책을 읽고 강변을 걷습니다. 당신과 함께 시장을 가고 여행을 하고 손자를 보고 또 기도를 올립니다. 구태여 짜릿한 환호성과 기쁨의 어느 순간을 떠올리지 않아도,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일상만으로 생은 충만해집니다. 다시 높아진 하늘과 하얀 구름, 화려하게 물든 나뭇잎에 비춰드는 햇살과 바람의 이 아침도, 당신과 함께 바라보아 특별한 성취가 됩니다. 그 모든 꿈과 현실의 삼십육 년을 당신께 바칩니다. 2020. 10. 27.
결혼 35주년 입니다. 무교동 길을 걷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앞 쪽에 거짓말처럼 당신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우연이었습니다만 제겐 그것이 놀라운 우연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같이 활동하던 동아리 모임에서 유난을 떨던 평소의 치기를 접어둔 채 당신에겐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으니까요. 아무 낌새도 채지 못한 당신은 버스와 함께 떠나버렸고 저는 빈 보도블록을 발로 쓸며 정류장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바보 같은 경험에 대한 자책이 용기를 촉발시켰을까요? 얼마 뒤 망설임 끝에 저는 투박하게나마 저의 마음을 당신에게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결혼35주년을 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만남은 그날 무교동에서, 그보다 먼저 당신과 함께 하던 여름날의 농활이나 겨울철의 흰눈학교에서, 아니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 2019. 10. 28.
오키나와1 - 결혼34주년 오늘은 아주 작은, 깃털처럼 가벼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이 그저 재미있고 유쾌한, 내일이 되면 무슨 말을 나눴던가 잊어먹어도 좋은, 그런 이야기만을 나눠봅시다. 기억에 뚜렷이 남지 않는 시간이 많을수록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저는 믿습니다. 34년 전 우리가 함께 내딛은 첫 걸음의 떨리던 순간을 돌이켜볼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아니면 우리 젋은 시절의 옛 노래를 들으며 조용히 창밖을 내려다봐도 좋겠습니다. 말하는 것보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힘든 일이라고 합니다만 가장 가까운 친구는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라 어떠한 말을 나누지 않아도 편안한 사이임을 또한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함께 해온 34년은 늘 말과 침묵이 같은 의미였지 않습니까? 가을인데 먼 바다엔 뜻밖에도 거센 태풍이 지나간다고 .. 2018. 11. 2.
은혼(銀婚)의 당신에게 하루에 한번씩은 당신에게 전화를 했던 것 같습니다. 출근을 해서 오전 일과를 마치고 잠시 숨을 돌리는 점심시간이 되거나 하루일이 마무리 되는 저녁시간이 되면. 이젠 습관처럼 굳어진 오래된 일과이기도 합니다. 내 기억으론 우리가 함께 한 25년 전부터 시작된 것 같지만 기억이란 자칫 과장의 오류를 만드는지라 확신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설사 내가 잘못된 기억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당신은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당신에게 가까이 서있고자 하는 나의 '어리광'을 탓하지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날마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당신이 보낸 반나절이나 하루가 어땠는지 지금은 무얼 하고 있는지 등을 물어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별난' 일 없다는, 숨을 몰아쉬며 흥분할 필요도 없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2013. 4. 16.
결혼 24주년...다시 아내에게 24년 전 어느날, 결혼을 생각하고 통장의 잔고를 보니 17만원... 직장 생활 만 일년의 결과가 그것이었다. 원래부터 많지도 않았던 월급이었지만 인출 금액의 대부분은 날마다 이어지던 술자리를 위해 쓰여졌을 것이다. 시인은 바람을 이야기 했지만 아마 학창 시절 이후 '나를 키운(?) 것은 팔할이 술'었던가 보다. 결혼식이 끝나고 친구들과 또 술을 마시다 "그만 마시고 신혼여행을 떠나라"는 친구들의 말에 등이 떠밀려 막차에 가까운 고속버스를 타고 떠난 곳이 유성이며 속리산이었다. 그나마도 사전에 준비를 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주말 데이트를 하 듯 떠나 이틀인가를 떠돌다 돌아왔다. 노란 단풍잎이 깔려 있던 속리산과 법주사, 논산의 관촉사의 머리가 큰 미륵불에, 장급 여관방에서 맥주 몇 병을 놓고 텔레비젼.. 2013. 4. 11.
28번째 결혼기념달 10월은 아내와 내가 결혼을 한 지 28년 째 되는 달이다. 동갑인 아내와 내가 각각 처녀, 총각으로 산 햇수와 결혼을 해서 산 햇수가 같아지는 달이기도 하다. 8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생각할 무렵 공교롭게도 양가 집안에 예상치 못한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쳤다. 비즈니스 플랜을 짜듯 결혼에 대한 ‘사업 타당성 검토’를 했다면 한마디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아내는 강원도에서 교사생활을 하고 있었고, 남들과 차별성(?) 있는 학업성적서를 지닌 나는 숱한 입사지원서를 남발한 끝에 간신히 지방에 막 직장을 잡은 터라 생활을 합치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내가 군대를 다녀오는 사이 어느 새 교사 3년 차가 된 아내는 봉급이 나보다 높았다. 내가 빨래와 밥짓기를 배워 강원도로 가는 것이 내 집 마련의 지름길 아니.. 2012.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