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과 단상

결혼 39주년

by 장돌뱅이. 2023. 10. 28.

39년이 되었네요.
저 혼자 흑심(?)을 품기 시작한 시간과 가슴 두근거리던 연애 시절까지 합치면 거의 5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는가 봅니다. 어느새, 벌써 말입니다.

'일 년을 시간 속에  넣으면 가을은 마법의 시간(If a year was tucked inside of a clock, then autumn would be the magic hour.)'이라는 누군가 말에 '뭔 뜻이야?' 하며 공감을 하지 못하다가도 우리가 새로운 약속을 시작한 계절이 가을이었다는 깨달음에 이르러선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당신을 향한 설렘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철부지였던 제게 당연한 일이라는 듯 기꺼이  손을 내밀어준 당신이나, 단칸 셋방에서도 씩씩하게 자라준 우리 딸 역시 마법의 가을, 혹은 가을의 마법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딸아이가 평생의 인연과 우리처럼 가을에 가정을 이루고, 다시 자신들을 똑 닮은 '저하들'을 낳았다는 사실 또한 제겐 그렇습니다.  

 39년 전 그날처럼 단풍이 물들기 시작한 남산 둘레길을 당신과 걸으며 저는 그동안 제 삶에 일어난 모든 마법의 원천이 당신에게 있음을 새삼 생각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 분명 당신은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며 지난 세월에 대한 저의 지분(?)을 후하게 챙겨줄 것입니다. 설혹 제가 그 말을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는 뻔뻔함을 가진다 해도 당신이  '더 좋은 반쪽(Better Half)'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돌아가신 어머님조차 생전에 "장돌뱅이야, 너는 아무 소리 말고 곱단이가 하자는 대로만 하고 살아라." 라고 말씀하셨을 리 없습니다.

맑은 가을 햇살이 닿을 때  단풍은 더욱 투명해지고, 억새는 더욱 희게 빛나며, 석양의 구름도 곱게 물들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가 나누는 일상에 저에게도 공치사라 할만한 어떤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과 함께라는 관계가 가져다 준 변화였음을  먼저 고백하고자 합니다.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Track : Nice Day

딸아이네가 마련해준 남산 기슭의 숙소에서 지난 39년을 반추해보는 오늘.
함께 창밖 단풍을 내다 보며 옛날 당신이 내게 그랬듯 가만히 당신 손을 잡아봅니다.

'일상과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태원 참사 1주기  (0) 2023.10.30
운동회  (0) 2023.10.29
저물녘  (1) 2023.10.20
달에 갈 수 있다는 듯이  (2) 2023.10.16
그녀가 말했다.  (0) 2023.10.0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