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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그녀가 말했다.

by 장돌뱅이. 2023. 10. 8.

영화 <<그녀가 말했다>>

<뉴욕 타임스>의 탐사보도팀 기자 메건 투히와 조디 캔터는 할리우드의 감독이자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문에 대해 조사를 시작한다. 그는 오스카 작품상만 여섯 차례나 받은 영화계의 거물이었다. 와인스틴은 자신의 지위를 무기로 배우, 스태프 등 수많은 여성에게 성폭력을 저질렀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침묵했다. 기자들에게 증언을 하면서도 자신의 실명이 거론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강요된 합의서 속의 비밀유지 조항 때문이었고 두려움 때문이었다.

호소와 간절한 기다림 끝에 마침내 한 피해자로부터 동의를 얻어냈고 2017년 10월 5일자 신문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문을 기사로 실었다. 기자들은 보도 이후 세간의 무관심을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보도 이후 80여 건의 고소가 뒤따를 만큼 세상의 관심은 뜨거웠다.
그 결과 와인스타인은 2020년 2월, 23년형을 받아 수감되었다.
영화  <<그녀가 말했다>>는 이 실제 과정을 담은 영화다.

이 보도는 이후 미투(Me Too) 운동으로 이어져 미국 사회를 흔들었다.
또 우리도 몇 해 전 우리 사회 역시 같은 폭력이 만연해 있음을 목격할 수 있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자신이 저지른 폭력의 시간에 멈춰 선 채로 일생을 갇혀 지낸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 와인스틴 측은 '상호 합의' 라거나 '친밀함'을 이야기했다. 우리 사회의 '와인스틴'들도 비슷했다. 

개소리다.(···) 이건 욕구를 참지 못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욕구를 참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데서 발생하는 문제다.

영화 본 뒤에 읽은 강화길의 소설 『다른 사람』에 나오는 말이다.

폭력은 가정에서, 데이트에서, 길거리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어디서나 언제나 본질은 부당한 권력의 약자에 대한  부당한 공격이다.
그곳에서 약한 것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공격과 이용의 대상이 된다.
권력은 일시적이고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형성되어 온 논리와 문화의 체계다.

"She said!"
'그녀들이 말한' 이후에 세상은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듯이 잠시 수선을 피웠지만 권력은 여전히 견고해 보이고 시끄러운 잡음은 더욱 커졌다. 다만 이전보다 사회적 공감대는 확대되었다.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희미한 신음으로 눌려 나오는 그 말에 우리는 귀를 열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다른 사람"이 되는 연대의 시작이다.


어느 순간, 나는 마음을 바꾼다. 나는 돌아선다. 네가 내 눈앞에 있다. 나는 너를 바라보며 다시 걸어간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 속에서, 나는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람. 어디에서나 벌어지는 일을 겪은, 그렇게 대단하지도 엄청나지도 않으며, 언제나 존재해 왔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런 이야기의 결말에서 당연히 흘러나오는 말을, 가장 뻔한 대답을 한다. (···) 이야기를 끝낼 사람은 바로 너다.

- 소설 『다른 사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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