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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6

스승의 날 손자친구가 선생님께 쓴 반성문 같은 편지. 아무렴 친구야. 부디 스승의 날만큼이라도······ . 난 네가 장난치고 떠들어야 좋다고 하면 선생님께서 서운하실까? 그래도 넌 강지호는 아니잖니. 혼자서 샤워도 잘하니까. 김현우 : 1번 장난 했음 강지호 : 1번 장난 했음 강지호 : 창문에 올라갔음 강지호 : 선생님 의자에 안졌씀 강지호 : 오늘도 세수 안 했음 -김용택, 「2학년 교실 칠판」- 2023. 5. 16.
눈 오는 날 올겨울엔 눈이 뜸한 것 같다고 며칠 전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는 듯이 폭설이 내렸다. 어제저녁 늦게 아내와 눈을 밟으며 아파트를 한 바퀴 돌았다. 이웃들도 눈을 보러 나와 우리처럼 개구쟁이가 되어 서성거렸다. 손자 친구는 눈사람을 만들었다고 전해왔다 뒤이어 강추위가 왔다. 오늘은 올겨울 들어 가장 춥다. 양지쪽에 쌓인 눈조차 한낮이 되어도 거의 녹지 않는다. 밥을 먹으며 차를 마시며 내다보는 바깥 풍경이 흰빛으로 눈부시다. 내일은 더 추워진다고 한다. 매일 하는 산책을 며칠은 쉬어야 할 모양이다. 작년 이맘때쯤에 비해 3kg 정도가 늘어난 몸무게가 줄어들 이유가 없겠다. 아침으로 감자를, 점심은 비빔국수로 먹고 저녁엔 무얼 준비할까 생각한다. 장자(莊子)에 "재주 가진 자는.. 2021. 1. 7.
콩, 덕분에 잘 놀고 잘 먹었다 서울 인근으로 귀촌을 한 누님은 수 년 째 농사를 짓고 있다. 귀촌 전까지 농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살아왔음에도 누나는 특유의 열정으로 다양한 품목을 능숙하게 키우고 있다. 규모도 만만치 않다. 밭농사뿐이지만 가히 영농후계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덕분에 가끔씩 누나가 손수 지은 이런저런 농산물을 받게 된다. 이번에는 호랑이강낭콩이었다. 나는 콩 반 쌀 반을 넣고 지은 밥, 아니 콩이 더 많아도 좋아할 정도라 서둘러 콩을 깠다. 그 중 일부는 손자친구를 위해 까지 않은 채로 남겨두었다. 아이들에겐 로보카 폴리나 타요버스만이 아니라 모든 게 놀잇감이 된다. 기대했던 대로 친구는 신이 나서 콩을 깠다. 콩밥도 자신이 직접 손으로 만졌다는 재미와 자부심이 더해져서인지 잘 먹었다. 콩아, 덕분에 잘 놀고 .. 2020. 7. 29.
내가 읽은 쉬운 시 126 - 김용택의「비오는 날」 눈이 떠진 아직 캄캄한 새벽. 옆자리 잠든 아내의 고른 숨소리가 편안했다. 거실로 나가 창문을 조금 열고 소파에 누워 빗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파트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빗소리가 고요한 새벽어둠을 건너 방으로 들어왔다. 토닥토닥. 정원에 심어진 나무 잎에 떨어지는 소리이리라. 마른 장마 끝에 모처럼 내리는 빗물을 맹렬히 빨아들이는 나무들의 숨소리도 더해졌을 것이다. 그 나무에 둥지를 튼 새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몸을 웅크려 날개 죽지에 부리를 묻고 비를 견디고 있을까? 왜 새들은 둥지에 지붕을 만들지 않는 것일까? 『숫타니타파』의 게송(偈頌)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평안하라. 안락하라." 그러다 스르르 다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2019. 7. 11.
내가 읽은 쉬운 시 85 - 김용택의「나는 조각배」 직장을 그만둔지 2년이 되었는데 시간이 무겁지 않게 흐른다. 직장 다닐 때에 비해 특별히 책을 많이 읽거나 여행을 더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하루하루가 잘 지나간다. 완전 백수 체질인 것 같다. 물론 산다는 게 무슨 일이건 생기기 마련이어서 내가 백수가 안 되었으면 이런 일을 다 누가 처리했을까 싶게 늘 이런저런 일이 꼬리를 물긴 한다. 그래도 9시에서 6시까지라는 규정된 일과가 없으니 많은 시간을 아내와 보내는 게 좋다. 얼마 전 친구들과 모임을 끝내고 돌아온 아내가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내게 물었다. "백수 남편을 여자들이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뭐라고 하는데?" "젖은 낙엽. 킥킥킥. 부인한테 달라붙어 잘 안 떨어지니까." 나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심상히 대꾸했다. "그래? 하지만 뭐 .. 2018. 11. 20.
꽃산 솟다 워매, 저기저기 솟는 것이 뭣이당가 화이고 저것이 꽃산 아니라고 화이고 그렇구먼 꽃산이구만 글머는 저기 저 꽃산 뒤에 솟는 것은 또 뭣이당가 어허, 저것도 꽃산 아닝개비여잉- - 김용택의 시, 「꽃산 솟다」중에서 - 내 기억 속의 아름다운 내 나라. 나는 멀리 있을 뿐이고... (2009.6) 2014. 5.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