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태4 돼지국밥 송년회 야니님과 좋아하는 돼지국밥을 먹었다. 마나님들은 마치 혐오식품이라도 되는 양 도리질을 치는 바람에 둘이서 만날 때만 먹는다. 국밥을 먹으며 나는 신뢰한다 국밥을 먹으며 나는 신뢰한다 인간의 눈빛이 스쳐간 모든 것들을 인간의 체온이 얼룩진 모든 것들을 국밥을 먹으며 나는 노래한다 오오, 국밥이여 국밥에 섞여 있는 뜨거운 희망이여 국밥 속에 뒤엉켜 춤을 추는 인간의 옛추억과 희망이여 어느 날 갑자기 수백 대의 이스라엘 폭격기가 이 세상 천지 곳곳을 납작하게 때려 눕힌다 해도 西베이루트처럼 짓밟아 버린다 해도 국밥을 먹으며 나는 신뢰한다 국밥을 먹으며 나는 신뢰한다 인간은 결코 절망할 수 없다는 것을 인간은 악마와 짐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노래하고 즐거워한다 이 지구상 어린 아기의 발가락이 하나라도 남.. 2023. 12. 29. 내가 읽은 쉬운 시 149 - 감에 관한 시 두 편 경북 청도가 고향인 친구가 유명한 청도반시를 보내왔다. 받고 난 후 며칠을 밀봉한 상태로 후숙을 시켜 홍시로 먹었다. 친구는 올 유난히 병충해가 심해 감 상태가 별로라고 했지만 충분히 맛이 있었다. 감을 먹으며 아내와 학창 시절에 자주 읽던 오래된 시를 떠올렸다. 올해 외식 문화의 한 특징이 뉴트로(NEW-TRO:복고풍) 감성이라더니 시도 그런가? 김준태며 김남주, 오래간만에 빛바랜 시집을 뒤적여 보았다. (하긴 요란스럽고 수상한 이즈음의 시절이 아내와 내가 학창시절에 보던 풍경을 닮지 않았는가. '그 시절'을 머릿기름 바르 듯 미끈하게 지나온 자들의 한물간 삭발 코스프레라니!)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2019. 10. 20. 김준태의 시집 『지평선에 서서』 김준태 하면 나는 그의 70년대 시집 『참깨를 털면서』와 광주민중항쟁 직후인 80년 6월 초 침묵의 세상에 절규하듯 외친 절창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를 떠올리게 된다.그는 『지평선에 서서』에서 우리 역사와 현실과 삶의 아픔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밭’을 다시 넉넉하고 절절하게 노래하고 있다.세월을 거슬러 오르려는 듯한 비도덕적, 시대착오적 무리들의 터무니없는 논리가 흘러넘치는 대선의 와중에서도 그의 시는 각별하게 읽힌다. 쉽게 투정하거나 절망하지 않으련다. 신동엽의 말처럼 껍데기는 저희들끼리 춤추다 그냥 저희들끼리 흘러갈 것이기 때문이다. 변함없이 남아있는 것은 ‘밭’이 될 것이다. 늘 그곳에서 시작해야 한다.길을 찾지 못해 밭으로 갔다저물녘, 호미를 들고.. 2013. 5. 30. 충주를 지나며. 어둠 속에서 누구나 부른다 행인이 있으면 누구나 손짓을 한다 아무개 아니냐, 아무개 아들이 아니냐 또랑물에 발을 담근 채 노래도 그친 채 논둑에 앉아 캄캄한 밥을 먹는 농부들 일찌기 돈도 빽도 없이 태어난 농부들 사람이 죽으면 지붕 위에 속옷을 던져 놓고 울던 농부들 정든 조상들이 죽어 묻힌 산줄기에 에워싸여 자식이나 키우며 감나무나 키우며 살아가더니 오늘은 어둠 속에서 누구나 부른다 가까이 가보면 젊은이들은 그림자도 없고 늙은이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 밥을 이고 나온 꼬부랑할멈뿐인데 아무개 아니냐, 아무개 아들 아니냐 덥석 손을 잡고 많이 먹고 가라 한다 수렁냄새 젖은 손가락으로 김치도 찢어주며 오동나무 잎새에 머슴밥을 부어 놓는다 밤길을 아니 걷는 게 영리한 것이여 밤엔 사람이 제일로 무서운 놈.. 2005. 4. 2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