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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돼지국밥 송년회

by 장돌뱅이. 2023. 12. 29.

야니님과 좋아하는 돼지국밥을 먹었다.
마나님들은 마치 혐오식품이라도 되는 양 도리질을 치는 바람에 둘이서 만날 때만 먹는다.

국밥을 먹으며 나는 신뢰한다

국밥을 먹으며 나는 신뢰한다
인간의 눈빛이 스쳐간 모든 것들을
인간의 체온이 얼룩진 모든 것들을
국밥을 먹으며 나는 노래한다

오오, 국밥이여
국밥에 섞여 있는 뜨거운 희망이여

국밥 속에 뒤엉켜 춤을 추는
인간의 옛추억과 희망이여

어느 날 갑자기
수백 대의 이스라엘 폭격기가

이 세상 천지 곳곳을
납작하게 때려 눕힌다 해도
西베이루트처럼 짓밟아 버린다 해도

국밥을 먹으며 나는 신뢰한다
국밥을 먹으며 나는 신뢰한다
인간은 결코 절망할 수 없다는 것을
인간은 악마와 짐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노래하고 즐거워한다

이 지구상 어린 아기의
발가락이 하나라도 남아서

풀꽃 같은 몸짓으로 꿈틀거리는 한
오오, 끝끝내까지 뜨겁게 끓여질 국밥이여
인간을 인간답게 이끌어 올리는

국밥이여 희망이여

- 김준태, 「국밥과 희망」-

돼지국밥을 먹고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나는 손자를 이야기하고 야니님은 극진하게 아끼는 반려견 이야기를  했다. 나는 태국여행을, 야니님은 베트남 여행의 추억과 계획을 이야기했다.

이선균 씨와 이태원의 아픈 죽음을 이야기했다. 그 모든 원인을 제공하고 상황을 강제한 부패하고 뻔뻔한 권력과 정치권을 이야기하고, 거기 빌붙어 추임새를 넣거나 침묵하다가 이제는 위로를
가장하여 또 다른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황색 언론을 이야기했다.

간단 송년회를 끝낼 쯤 국회의 특검법 통과 소식이 전해졌다. 어디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인과응보이고 사필귀정이겠다. 하지만 국밥은 씩씩하게 먹고 뜨끈하게 몸을 덥힌 채 거리에 나섰어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희망은 여전히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다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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