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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그래서 간다

by 장돌뱅이. 2023. 12. 30.

이미 당신은 문밖에서 저문다
굳센 어깨가 허물어지고 있다

말하라, 어두워지기 전에
내가 가고 있다고

- 노혜경, 「말하라, 어두워지기 전에」 -

아직 작은 일.
 그러니까 아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유튜브에서 찾아 틀어준다거나 아침에 커피를 준비하는 일. 눈 오는 날 손자들의 썰매를 끌어준다거나 악당을 자청해서 경찰관 역할의 손자에게 기꺼이 잡혀주는 일.
백화점 출입문,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잠시 문을 잡아주는 일. 깜빡이도 넣지 않고 갑자기 끼어든 앞차나 하굣길 어린아이가 장난치며 가는 골목길을 빵빵거리지 않고 조용히 따라가는 일.

그래서 간다.
오늘 같은 날에는 무수한 머리 사이에 점 하나를 보태거나 작은 목소리 하나 실어 보내는 일.


*다녀와서 덧붙임*

머리 하나 더해주려고 나간 집회 옆에는 우리와 생각이 다른 한 무리의 사람들이 길 건너 편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우리를 향해 시종일관 똑같은 비난과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심지어는 행진을 할 때도 차량으로 따라오며 같은 내용을 방송했다.
최대로 올려진 스피커 볼륨은 집회를 향한 집중력을 흩트리고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저 소리에 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집회에 나와야겠다."
옆사람의 말은 그들의 의도가 실패했음을 증명했다.

집회는 세상에 대한 불만을 함께 표출하는 모임이며, 동시에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즐겁게 어울리는 '해원(解寃)'의 시간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단지 생각이 다른
상대에 대한 저급한 비방이외에 정작 자신들을 달랠 어떤 과정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아우성은 무례를 논하기 전에 너무 거칠고 메마른 소음일 뿐이었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송강호가 한 말이 생각났다.
"밥은 먹고 다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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