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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찐고구마

by 장돌뱅이. 2023. 12. 28.

고구마의 원산지는 중남미로 우리나라에는 영조 6년(1736년) 조선통신사 조엄(趙曮)이 일본을 다녀올 때 대마도에서 가져왔다. 이듬해인 1764년에 부산 영도의 바닷가 마을에서 첫 재배에 성공한 이래 고구마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부족한 식량을 대신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구황작물(求荒作物)이 되었다.

요즈음은 전남 해남과 경기도 여주 등지에서 대단위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1990년에 약 43만 톤에 달하던 우리나라 고구마 생산량은  2017년엔 약33만 톤,  2020년엔 약 37만 톤으로 줄어들었다. 참고로 세계에서 고구마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중국으로 2020년 기준 약 9천만이라고 한다.

어릴 적 부모님도 고구마 농사를 지으셨다. 대단위는 아니었고 골방 구석에 울타리를 만들어 쌓아두고 겨울 간식용으로 먹을 정도였다. 찐고구마는 김장 김치와 궁합이 잘 맞는 겨울 음식이다.
아내와 찐고구마를 먹을 때면 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게 된다.
좋아했던 아니던 고구마는 우리 세대의  기억의 한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음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내와 나는 어떤 음식을 먹을 때 자주 손자저하들이 좋아할까 안 할까를 추측해보곤 하는데, 피자와 양념치킨 같은 단짠단짠의 자극성에 어느 정도 길들여졌기 때문에 아마 찐고구마는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고 의견을 모은다.  하긴 그런 먹을거리가 존재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나도 찐고구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어른들이 찐고구마를  먹을 때 부득부득 우겨 혼자 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지를 좋아하게 되면 어른이라던데 고구마도 그런지 모르겠다.
(나는 떡국도 싫어해서 설날에도 밥을 먹는 밥돌이였다. 어머니는 집안 내력이라고 혀를 차셨다.)

(*이전 글 참조 : 

 

고구마 죽과 밥

앞선 감자 관련 글에 인용한 공선옥 작가의 책 『행복한 만찬』을 읽으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행복했다. 생각없이 대했던 흔한 먹을거리들에게서 작가는 가난한 지난 추억들을 더듬어 풍요

jangdolbange.tistory.com

새벽에 깨어 찐 고구마를 먹으며 생각한다

이 빨갛고 뾰족한 끝이 먼 어둠을 뚫고 횡단한 드릴이었다고
그 끝에 그만이 켤 수 있는 오 촉의 등이 있다고
이 팍팍하고 하얀 살이
검은 흙을 밀어내며 일군 누군가의 평생 살림이었다고

이것을 캐낸 자리의 깊은 우묵함과
뻥 뚫린 가슴과 
술렁거리며 그 자리로 흘러내릴 흙들도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 대책 없이 땅만 파내려가던 붉은 옹고집을
단숨에 불과 열로 익혀내는 건
어쩐지 좀 너무하다고

그래서 이것은
가슴은 퍽퍽 치고 먹어야 하는 게 조그만 예의라고

-  문성해, 「조그만 예의」-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나의 몸이 다른 생명을 받아들여 나의 일부로 만드는 행위다. 음식을 통하여 나와 내가 아닌 것의 구분이 모호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 모호함은 다른 생명의 이력과 교감하고 이해하는 일이  곧 나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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