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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단상

메리 크리스마스

by 장돌뱅이. 2023. 12. 26.

할아버지가 온다는 사실을 알면 2호 저하는 오는 길목을 내다보며 망부석이 된다고 한다.
딸아이가 보내준 사진을 보면 매번 마음이 조급해져 발길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다.

 두 저하는 나이 차이가 있어 공통의 놀이를 가지고 함께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정해  공평하게 교대로 노는데 이것도 어렵다. 

누구하고 놀아도 다른 한 저하의 아쉬움과 불만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긴 하다.

딸아이는 옛날부터 '인생은 이벤트'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나는 딸아이의 말에 동의한다. 흔히 말하 듯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두 아이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하느라 피곤할 텐데도 딸아이는 의욕적으로 무슨 일인가를 자주 벌인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기까지 며칠을 두고 온 집안 곳곳을 장식하는 한편, 저하들도 참여하는 이런저런 작은 행사를 여럿 기획하고 실행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아내는 손도 못대게 하고 철저히 딸아이 혼자 준비한 자못 화려한 장식의 식탁에서 여러 코스로 나오는 저녁식사를 했다. 재롱을 부리고 개인기를 자랑하던 저하들이 잠이 들자 딸아이는 산타클로스의 선물들을 주머니와 양말에 담아 트리 앞에 내놓았다.
1호 저하가 평소에 원하던 책과 게임기, 2호저하가 최근 들어 부쩍 관심을 보이는 공구류 등이었다.
산타클로스가 두 저하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었다.

눈 오는 밤하늘
불 켜진 십자가,

선물상자를 묶은
붉은 리본 같다.

메리 크리스마스
십자가 예수님,

선물 자루를 지고
끄응 끙 내려오신다.

- 이정록, 「메리 크리스마스」 -

아침에 일어나니 밤새 내린 눈으로 세상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저하들이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풀고 좋아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또 다시 눈이 내렸다.
온식구가 밖으로 나가 눈사람을 만들고 나는 저하들의 썰매를 끌어주었다.
저하들은 똑같이 '더 빨리, 더더더더 빨리! ' 달리라고 외쳤다.
나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등에 땀에 흠뻑 젖도록 달려야 했다.
때 맞춰 눈까지 내려준 하늘 덕분에 즐거움과 수고로움이 배가 되었다.

🎵Music provided by 브금대통령 🎵Track : 크리스마스 타운 -    • [귀여운 겨울왈츠] 크리스마스 타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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